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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an 22. 2021

시험관 신선 2차 시작

유산 후 기나긴 3개월이 지났다.

그간 시험관을 해야한다는 것도 잊고 그냥 맘 편히 살았다. 12월에 오라는 선생님 얘기에 내 연말을 망칠 수 없다는 의지로 한달간 몸 만들고 오겠다는 뻥을 치고는 1월에 오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나온 병원이었다.


사실 자연임신을 기대했다. 다시 시작될 진료대기와 주사와 질정들이 너무 싫고 귀찮았다. 자연임신이 되면 그 모든것들이 한방에 끝날텐데! 나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자연임신은 안되었다. 배란초음파를 보고도 왜 안되는걸까 대체!


안되니까 시험관 환자가 저리 많겠지...   


오지 않을것 같았던 1월은 결국 와버렸다.

몸을 만들겠다는 한 달 동안 나와 남편은 연말을 핑계로 와인을 1일 1병씩 마셨다. 그리고 1월이 시작되자 불안함에 떨었다. 이제 어쩌지?


그래도 꾸준히 자락길 걷기를 했다. 최소 7천보에서 1만보씩. 전에는 안먹었던 아르기닌도 먹었다!


라면서 마음의 위안을...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병원 안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보호자는 입장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람이 많았다. 


신규로 안내받는 사람들은 뭐 이렇게 많은지. 다들 새해를 맞아서 아이를 갖고자 시술을 결심하고 몰려온 것 같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12월에 시술할걸 그랬나. 그땐 사람이 좀 적었던 것 같은데.


그 시장통같은 병원 속에서 난 이제 경력자였다. 신선 2차니까.


초음파실 대기 인원 47명을 보고도 그러려니했고, 원무과에는 정부24에서 미리 받은 난임비 지원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번 임신때 남은 바우처 금액이 있어서 오늘 병원비가 20만원에 육박했는데 바우처로 처리가 됐다. 재빠르게 채혈을 하고 주사제를 받았다. '2차니까 다 아시죠?' 로 설명은 끝났다.


선생님은 현재 상태로는 난포가 10개 이상 클 것으로 기대가 된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제대로 성공해보자고. '글케 놀았는데도 몸 상태가 좋네'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두시간 반만에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설차의 악명높은 대기는 지긋지긋하다. 9시 반에 오래서 9시에 갔는데 병원 밖에 나온건 11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지난 임신 때 막 자란 근종이 크기가 덜 작아진게 좀 걱정지만 '샘이 별다른 이야기를 안하는건 문제가 없으니 그렇겠지' 라며 혼자 위안을 했다. 근데 난임병원은 하도 문제가 큰 사람들이 오니까 내 문제를 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일반 산부인과에 가면 이건 문제될 것 같은데... 에휴. 모르겠다. 알아서 되겠지. 

2차가 되니까 모든 것들이 빠르게 체념이 된다. 안달복달해봐야 어차피 될건되고 안될건 안될테니. 다 경험한 일들 아닌가.




병원에 다녀오고부터 계속 뭘 먹으면 체하기 시작했다. 나는 배탈은 자주나도 체하는 체질은 아닌데 그만큼 시술이 심적으로 부담스러웠나보다.


손가락을 따고 좀 나아진 듯 해서 저녁을 먹었다가 다시 체해버렸다. 진짜 별일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고 시작하는 건데도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가? 아마 구정에 시댁을 가야한다고  남편 때문도 있을거다. 마음이 편안하다 못해 안정적이어도 잘될까말까한 시험관인데 왜 거기에 스트레스를 얹는건지. 누구보다도 내가 힘든걸 잘 알아야될 사람이 저러니 화가 나서 한바탕 싸우고 난 뒤였다.


나 이번엔 제대로 시험관 유세 할테니 두고보자. 흥. 저번엔 내가 많이 참은거라고! 성질난 김에 시험관으로 인해 생길수있는 여자 몸의 데미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낭독해줬다. 근데 읽다보니 내가 무서워진... 유방암, 난소암, 난소석회화, 근종 증가, 각종 부작용 등등...  


시술하는거 정말 괜찮은걸 ㅠㅠ


눈치가 보였는지 나 아직은 괜찮은데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ㅋ




1차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닥치면 닥치는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금은 다 알아서 오히려 편한 맘 반, 걱정 반이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아는게 나은 것 같다. 마음이라도 미리 준비가 되니까.


그땐 아주 생 유난을 떨면서 밀가루도 끊고 커피머신까지 싹 정리해서 넣어놨었는데 지금은 그냥 다 먹는다. 술, 담배, 마약만 하지말라며. 어제는 밤에 아이스크림도 퍼먹었다.


그래도 다시 놓는 주사는 무섭고 아팠다. 크녹산을 그리 맞았으니 주사는 이골이 난줄 알았는데도 다시 과배란주사를 놓으니 아팠다. 그리고 두꺼워진 뱃살을 보고 한숨이 나왔고. 내 똥배는 다시 주사자국으로 엉망이 되겠지. 크녹산으로 생긴 멍은 흉터로 남았는데.


다시 기나긴 한 달의 여정이 시작됐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마음이 좀 덜 불안하다. 시험관 카페를 들락거리며 종일 글을 읽는 짓도 이젠 하지 않는다. 전에 너무 고생을 하고 많이 내려놔서 그런가보다. 이제 안되면 그냥 우리 팔자에는 애가 없나보다 하고 살기로 했으니까.


남편이랑 둘이 사는 것도 편하고 재밌는걸.

이래놓고 잘 안되면 또 굴파고 들어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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