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선 1차 시술 때는 그냥저냥 시험관이 할 만했었다. 남들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들고 그렇지는 않았었다. 힘들다는 사람들은 몸이 많이 약하거나 약이 안 맞아서 부작용이 심하거나 그렇겠지라며 혼자서 쓸데없는 건강 부심까지 부렸다.
우울하고 식욕이 떨어지고 하는 것들도 아주 못 견딜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기에 선뜻 2차를 하겠다고 했겠지... 아프고 힘든 것보다는 그냥 단지 주사가 좀 따갑고 약이니 질정이니 그런 것들 시간 맞추기가 귀찮았던 것이 더 컸다. 특히 질정은 너무너무 귀찮고 싫었다. 왜 프로게스테론은 주사로 주지않는걸까!
시험관 신선 2차를 시작할 때 남편에게 말했다. "너 내가 1차 때 너무 편안하게 해 줘서 고마운 줄을 잘 모르나 본데 2차 때 두고 봐, 없던 엄살도 만들어서 피우면서 너 괴롭힐 거야!"
이때까진 몰랐다.
말이 씨가 된단 말이 왜 있는지...
오비드렐은 공기를 빼지 말고 그냥 주사를 놓으라고 한다. 기포가 배에 보그르르 들어가는 느낌이 난다.
2차 시술도 여전히 과배란 주사의 부작용은 두통과 식욕 없음으로 찾아왔고 소화제는 왜 파는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자 태어나서 체해본 것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내가 뭐만 먹으면 체해서 손가락을 계속 따야만 했다.
피검사 결과 난소 기능은 1차 때 보다 떨어졌다고 했다. 운동하고 약 챙겨 먹고 했는데도 떨어졌다니 (물론 와인을 좀 마셔대긴 했지만 1차 때도 술은 꽤 했었다) 황당했는데 해가 바뀌어서 나이도 한 살 먹었고, 시험관을 한차례 한 데다가 유산도 했으니 난소 기능이 회복되기에 3개월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채취 날이 잡히니 다시 난포 터트리는 주사 오비드렐 두 대가 처방 나왔다. 오비드렐을 맞으면 강제로 배란을 일으키니 몸이 성할 수가 없다. 이번 과배란은 신선 1차 때보다 몸이 더 힘들었다. 시험관을 하면 할수록 힘들다던데 내가 그 케이스인가??
1차 때와 주사 용량도 동일했는데 느껴지는 부작용은 더 심한 것 같았다. 남편을 괴롭히려고 엄살을 부리려는 게 아니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축축 처졌다. 괜찮다고, 해봤으니 다 겪었던 거라고 생각했지만 약이 누적되면 될수록 부작용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나는 주사랑 뭐가 안 맞는 것 같다. 오비드렐을 맞고는 기운이 없어서 종일 기어 다녀야 했다. 난포는 오른쪽에서 거의 다 자라고 있는 중이어서 오른쪽 배와 다리까지 뻐근했다.
난자 채취 전날 자정부터 물도 못 마시는 금식을 하면서 괜히 긴장이 돼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난자가 많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조기 배란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이번에도 냉동이 안 나오려나 등등의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선잠을 자다 깨서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1차는 찌는듯하던 열기가 여전하던 8월 말이었는데 2차는흐린 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1월 말이었다.
12개의 난자가 채취 되었다. 1차 때보다는 3개가 적게 나왔다. 그래도 10~15개 사이면 정상범주니... 이제는 병원에 맡겨야 한다. 수정란이 잘 나와야 하고 냉동도 나와야 할 텐데. 내 옆 베드에 있던 사람은 난자가 3개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나 속상할까.
지난번엔 마취에서 깨어날 때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계속 비상벨이 울리고 난리더니 이번에는 그런 것 없이 좀 빨리 깨어났다. 이번엔 좀 괜찮네?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꽤 불편한 하복부 통증에 원무과에 가서 수납을 해야 하는데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배가 왜 이리 아프지?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도대체 왜 도로는 이렇게 울퉁불퉁하고 방지턱이 있는지 차가 흔들릴 때마다 화가 났다. 괜히 남편에게 운전 살살하라고 성질을 부리고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도로관리 안 하는 것에 대해 클레임을 하겠다며 화를 내면서 왔다. 그 정도로 배가 점점점점 아파왔다.
이렇게 배가 불편하면 복수 찰 수도 있다는데...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냉동이 잘 안 나오니까 신선 이식을 해야 하는데 혹시 뭐가 잘못되어서 신선 이식을 못하게 되면 배아를 또 다 버려야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 사태만은 막아보겠다면서 먹히지도 않는 이온음료를 계속 마시고 항생제 부작용으로 배탈이 계속 나서 화장실을 수십 번 들락거리면서 복통이 너무 심해서 거의 반 기절 상태로 좀비가 되어갔다. 너무 아파서 타이레놀도 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병원서 진통제도 좀 놔달라고 할걸...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먹지 못하는데 약을 먹어야 하니 뭘 먹어야 했고 물만 마셔도 배탈이 나는 네버 앤딩 수난시대가 열렸다. 항생제 부작용보다 감염이 더 두려운 것이라 탈이 나도 항생제를 먹어야된다고 했다.
난소가 부어서 배는 계속 뻐근하게 아프고 불룩 나와있었으며 오른쪽 배가 불편해서 그쪽으로는 돌아눕지도 못했다. 허리를 펴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 지난번엔 정말 멀쩡한 편이었던 거구나. 그랬으니 글 쓰고 통화하고 별 짓을 다했지... 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시험관 할만하더라, 그냥 좀 힘들더라 같은 개소리를 시전 했을까. 다들 1차보다는 2차가 훨씬 더 힘들다고 그랬는데 나는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한 걸까.
배가 너무 아파서 기침도 재채기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까 통증은 미미하게나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남편을 제대로 괴롭힐 거라는 내 말대로 진짜로 괴롭힐 수밖에 없었다. 거의 남편은 프로수발러 수준으로 내 눈치를 보면서 손에 물마를 새 없이 집안일을 했다. 그런데 그냥 쟤가 내 수발 안 들어도 되니깐 내 몸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백번쯤 했다.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 신선시술이라고 생각했으니 이제 더 이상 여한은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된통 아프고 보니 여한이고 나발이고 다시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8차, 10차 이상씩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는 걸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은데... 그만큼 다들 몸 생각 안 하고 성공만을 위해서 달리는 건가.
카페 글에 시험관 10년 하고 난소암으로 죽은 사람 이야기가 있었다. 대체 아이가 뭐길래 목숨을 걸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어느 커뮤니티에는 와이프가 마흔에 셋째를 가져서 입덧 유세하는데 꼴 보기가 싫다는 개XX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저런 병신 같은 놈한테도 애가 셋이나 생기는데 왜 나는 안 생기나. 부자 언니로 유명한 연봉 6억의 유수진도 남편과 시댁의 등살에 시험관을 하고 있다고, 남편은 네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후려치고 본인은 자책한다는 방송 기사를 봤다. 하, 진짜... 그리고 '시험관 시술중인데 구정에 시댁에 가야될까요' 같은 고구마 백만개 글들도... 왜 이런 글들만 눈에 띄는 건지 짜증스러웠다.
시험관을 그만두면 이제 저런 이야기들에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내가 진짜 애를 갖고 싶은건지, 안되니까 오기부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시험관은 할 짓이 못된다. 특히 신선 시술은 절대로. 1차 때 시험관 할만하다 했던 나는 미쳤던거다. 내가 비록 복수가 차서 응급실에 실려가서 배에서 물을 3리터씩 뽑아대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사람을 아프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술은 이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