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여행사들이 야심차게 FIT(Free Independent/Individual tour) 상품을 내놓고 활성화시키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투어 여행박람회에서 FIT 부스를 아예 따로 둘 정도로 이 개별여행 시장에 심혈을 기울였고 광고도 엄청 했는데 왜 잘 안됐을까요? FIT 투어가 개별/자유여행인데 패키지에 특화된 일반 여행사들이 이 여행에 필요한 고객들의 니즈를 정확히 짚지 못한 부분도 있고, FIT 여행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지 않은 채로 그냥 패키지 안가는 손님들이 찾는게 개별여행이지~ 이러면서 상품군을 제대로 정하지도 않았으니 뻔한 결과가 나온겁니다.
애초에 FIT투어의 개념을 여행사에서 잘못 잡은 것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이 패키지 여행의 단점을 깨닫고 자유롭게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하자 패키지 여행사들은 일정에서 자유랍시고 한두시간 정도 여유시간을 줍니다. 이것도 손님들이 별로 안 만족스러워 하자 필수 일정만 넣고 나머지는 자유시간인 세미패키지(세미팩) 유형의 상품이 나타납니다. 이게 한동안 엄청 잘 팔렸습니다. 그런데 패키지에 익숙한 손님들은 일정중에 자유시간을 주면 뭘 해야 할지를 잘 몰라합니다. 전부터 패키지를 열심히 다녀봐서 여행은 많이 다녀봤지만 차려놓은 밥상만 받은 사람들이다 보니 스스로 여행은 못하는 사람들인거죠. 이 사람들이 세미는 좀 불편하더라 불평을 하자 '그럼 당신들이 싫은건 우르르 다니는거야? 그럼 인원을 좀 줄여줄게' 라는 형태도 나타납니다. 개별고객은 돈이 안되는 뜨내기로 생각하고 충성파인 패키지 고객을 구워삶으려 한거죠.
이러다보니 여행사 FIT 카테고리에는 세미팩, 2명만 가는 여행(거의 허니문), 4명만 가는 여행, 반나절투어, 데이투어, 호텔, 티켓 이런 것들이 막 뒤섞여서 올라갑니다. 단독여행이면 단독여행이고 현지패스면 현지패스인 것을 그냥 패키지 안가는 사람의 반대를 몽땅 개별여행 손님으로 규정지었더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여행사의 상품판매 구조는 대부분 박리다매인데 서너명 가는 상품의 견적을 만들려고 보면 2~30명이 갈 비용을 서너명이서 나눠서 내는 꼴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단체 금액과 개별 이용자의 금액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단체요금이 저렴합니다) FIT 여행 상품의 경우 가격이 비싸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어떤 경우는 손님들은 자기가 일정짜기 귀찮으니깐 여행사에서 견적/일정 받아서 그대로 자기가 예약하면 더 싸게 갈 수도 있으니(여행사 견적은 핸들링 피가 붙어서 견적가가 나갑니다.) 견적만 받아보는 손님들도 엄청 많았습니다. 때문에 여행사에서는 개별견적요청이 오면 응답 잘 안합니다. 일부 여행사들에서는 견적 받는것도 돈을 받아야 된다 뭐 그런 말도 있었는데 아마 크몽 같은데서 여행 일정 컨설팅 해주고 돈받는 형태가 이런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FIT 시장이 열리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르는 게 값이었던 여행상품은 결국 원가를 거의 오픈한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덩어리로 팔면 더 받을 수 있는 요금을 분해해 놓으니깐 대략적인 원가가 공개되어버린거죠.
예를 들면 만약 여행사가 현지에서 에이전트 가격으로 이과수 국립공원 입장권을 100원에 받습니다. 공급사는 수많은 여행사에 납품을 하니까 그냥 다 입장권을 100원에 팝니다. 그럼 여행사들이 패키지로 가격을 뭉뚱그릴 땐 이걸 얼마를 붙여 팔든 상관이 없는데 이걸 단품으로 분해해서 팔려다 보니 원가 100원짜리 입장료를 120원에 파는 사람, 150원에 파는 사람, 110원에 파는사람... 이러니까 이윤은 거의 못 남기고 원가는 오픈되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손님 입장에선 싸게 사니까 좋지만 여행사는 이윤을 남기기 힘든구조로 바뀌게 됩니다.
개별여행을 다니는 세대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5~60대 보다 아래의 나이들입니다. 소위 MZ 세대라고 칭해지는 그들. MZ세대는 유학,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가 활성화 된 시기 사람들이라 이미 여행을 현지투어나 배낭여행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는 패키지 투어보다 현지 가이드투어나 반나절 관광, 현지 티켓, 패스 이런 단품들이 더 매력적인 상품입니다. 영어사용도 자유로우니 현지의 저렴한 상품도 이용이 가능합니다. 마이리얼트립의 성장배경에는 이 MZ세대가 있었습니다. 이 플랫폼은 외국의 Getyourguide 를 모델로 한게 아닐까 싶은데 외국은 예전부터 개별여행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이런 여행 단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이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행 상품 중에 패키지의 위력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늦게 들어온 판매 구조이기도 합니다.
개별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패턴은검색을 통해 여행지의 정보를 수집 -> 대강의 일정 구성 (패키지 일정 참조함) -> 스카이 스캐너나 항공사 홈피에 들어가서 항공권 구매 -> 호텔스컴바인이나 에어비앤비 가서 숙소 구매 -> 마이리얼트립에서 입장권, 시내투어, 비자 등 단품 구매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패키지 여행사를 본건 초반에 일정을 참고할 때 빼고는 없습니다.(그나마도 안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패키지사에서 파는 여행일정이 제일 기본적인 동선을 갖고 있으니 이걸 바탕으로 대강의 일정 틀을 짜는거죠. 그리고나면 다 각자 주력분야의 플랫폼으로 흩어져서 개별 구매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 따로 예약을 하니까 여행사에서 파는 FIT 상품이 가격적으로 매력있거나 그 어디에도 없는 상품이 아닌 이상 안팔립니다. 좋은가격인 경우는 플랫폼 가격비교에서 눈에 띄면 팔리긴 합니다. 그런데 개별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패키지 값보다 비용이 비싸고 싸고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일정대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쇼핑이 왕창 들어가있는 여행은 하기 싫은게 가장 크기에 좀 더 비용을 내더라도 내가 편하게 여행을 다니겠다는 생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이유로 패키지 여행사들은 FIT 시장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패키지랑 FIT 상품 운영 구조 자체가 다르고 상품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패키지야 정해진 상품을 대량 모객해서 팀을 계속 띄워서 돈을 버는 단순한 구조인데 FIT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나눠놓은 상품이니 아예 출발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손도 많이가는데 그렇게 손 간 것에 비해 돈은 안됩니다. 그리고 랜드사에서 패키지 상품을 납품받아서 모객만 했던 여행사들이 랜드사 들들 볶아서 개별상품 달라 해봐야 원가가 공개될 판인데 해줄 리 없습니다.
패키지 여행사가 FIT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개별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항공따로, 호텔 따로, 티켓 따로 구하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맞춰 저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도 매력적인 가격으로 한 사이트 내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카이스캐너, 호텔스컴바인, 에어비앤비, 마이리얼트립 등등으로 각자 필요한 것을 찾아 그것이 특화되어 있는 채널로 돌아다니면서 상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익스피디아가 오랜기간 용을 썼는데 쉽지 않았고중국에서 야심차게 씨트립이 스카이스캐너도 인수하고 트립닷컴으로 이름도 부킹닷.. 스럽게 바꿨는데 코로나로 주춤합니다. 진정한 FIT 여행사가 되려면 항공/호텔/티켓/투어/가이드 예약 등등 까지 다 한 채널에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손님들이 만족할만한 퀄리티와 가격으로 셋팅이 되어야 되고요.
글로벌 종합 OTA로 변신하지 않으면 FIT시장은 절대 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투어가 이렇게 하려고 노력중이지만 글쎄요...우리나라 대형 패키지사들은 워낙 대리점체제로 왔던 터라 체질개선이 될지...?
그래도 부모님과 같이 떠나는 여행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패키지가 제일 편한 건 사실입니다. FIT 여행으로 어른들과 함께 가려면 그 여행의 주최자는 이건 어떻니 저건 왜 저렇게 예약했니 여기는 왜 뺐니 일정이 왜이러니 밥이 이상하다 등등 오만가지 잔소리에 시달리다가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아마 '다시는 내가 주도해서 여행 가나봐라' 하면서 이를 갈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이런 걸 보면 아직까지는 부모님 세대는 밥주고 재워주고 차태워서 관광지 보여주는 패키지가 제일 잘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