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쥬스 Jun 15. 2020

예단과 예물, 그 허례허식 사이에서

결혼식 전에 맞닥뜨리는 지상 최대의 난제. 바로 예단과 예물 그리고 함입니다. 예비부부가 이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이제 결혼준비 과정에서 싸움의 절정에 다다랐다고 보면 됩니다.  


어릴적 사촌언니 결혼식 전 함이 들어온다며 우르르 이모댁에 몰려간 날, 오징어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커다란 봇짐을 맨 아저씨(?)들이 온 동네가 떠나가라 "함 사세요" 고함을 지르고 길에 깔아둔 지폐를 주워 담으며 이모집 대문을 넘던 광경. 참 웃기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한 풍경이었습니다.


얼굴에 오징어 쓴 함진아비를 포함, 동네가 떠나가라 떠들던 사람들은 형부와 형부의 친구들이었고, 모두들 두둑히 주머니를 채우고 거나하게 취해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랑 동생은 주방에서 잔치 음식을 주워먹고 있었고요.  


지금이야 '함 사세요'라는 외침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소음 때문에 경찰을 부른다더군요.


어릴적이야 재밌었지만 막상 내 일이 되고나면 고민에 빠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혼식장 선정이나 웨딩드레스 선택 이런것들은 예비부부들이 얼마든지 선택하고 바꾸고 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예단과 예물은 부모님의 영역이다 보니 쉽게 정리할 수 없어서 더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은 많이들 생략하려고 하지만 부모님들 성화에 예비부부들까지 싸움나게 하는 이 것들. 각 단어의 뜻 한번 알아볼까요?


예단

신부집에서 신부 시집살이를 걱정해 잘 봐달라는 의미로 신랑집으로 보내는 비단을 뜻합니다. 옛날에는 비단이 귀했기 때문에 이걸로 옷을 짓고 친척들 옷도 해 입으라고 넉넉히 넣어 신부가 시집가는 집안에 선물로 드려 예를 표했던 것인데 요즘은 현물과 현금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예전에 드라마에서인가? 예단 목록을 좌르륵 적어서 며느리 될 사람에게 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예단 상위랭킹 밍.크.코.트. 요즘은 이런 경우 별로 없지않나요...


현물 예단은 은수저, 반상기, 이불 입니다. 현금 예단은 보통 남자쪽에서 주택을 많이 준비해 오므로 그 주택 가격(대출을 제외한)의 10%+a를 현찰로 보내는 것이 암묵적인(?) 공식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금액 관련해선 부모님과 상의해야겠죠. 요즘은 여자쪽에서 집을 해오는 경우도 많아졌고 양가 도움 없이 부부끼리 모은 돈으로 시작하는 경우들도 많아져서 이 경우는 보통 예단을 생략합니다.


여기서 받은 현금예단은 신부댁에 봉채비로 50프로 정도 되돌려보내는 것이 관습입니다. 주고 돌려받고 이걸 왜 하는지 1도 모르겠습니다. 이걸 덜 돌려줬니 안 돌려줬니 해서 많이들 다투기도 합니다.


이 때 예비부부 앞에서 현금 예단 봉투에서 돈을 꺼내서 돌려주는 행동은 하면 안됩니다. 미리 돌려줄 예정된 금액을 마련해뒀다가 줘야합니다. 때문에 얼마가 오갈건지 양가 부모님들은 예비부부를 통해서 조율을 미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애교 예단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저도 했습니다. 애교의 '애'자도 없는 제가 시부모님한테 잘봐달라고 애교라도 부리라는 것인지 싶어 저 기상천외한 예단은 뭔가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업체에서 해주는 경우도 있고 별도로 사야되는 경우도 있는데 따로 사면 비용이 15만원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안에는 손거울, 귀이개, 잡곡 주머니가 있습니다. 저는 그냥 업체에서 해주길래 이 박스에 현금예단 봉투를 넣어서 갔습니다.


게다가 압화편지 같은 것도 넣어야 한다는 둥 그러길래 전 이 희한한 애교 예단까지만 하고 안했는데 동서 들어올 때 어머님이 저한테 한마디 하시더군요. 동서는 예단에 편지까지 써왔다고..... 그저 웃지요.  


요즘은 부부들끼리 집값을 같이 내고 같이 갚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단을 많이들 생략합니다. 그런데 예단 생략하려 하면 꼭 친정어머니가 난리가 납니다. 내 딸 책 잡힐까봐 예단은 해야 한다고. 왜 똑같이 준비해서 결혼하는데 왜 내 딸만 책 잡힐까봐 걱정을 하시는 것일까요?


저희도 굳이 예단 안해도 될 상황이었는데 엄마가 니들 양가 첫 결혼인데 그래도 예단 안했다가 괜히 한마디 나올까봐 걱정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간소히 하려다 보니 할거 다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예단 했다고 책 안잡지 않던데...)


그리고 시댁의 '예단은 간소히 해라.' 라는 얘기는 여태까지의 살면서 봐온 바론 '간소하게라도 할 것은 해라' 니깐 이거저거 빼고 해서 나중에 말듣지 말고 아예 깔끔하게 생략하기로 합의된거 아니면 그냥 다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옆집 며느리가 뭐 해왔다더라'는 어머니들 핫토픽이니까요.


집값을 반반 하는 경우에는 예단은 생략합니다. 그런데 굳이 시댁에서 예단을 받겠다 하면 함으로 다시 돌려받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여자쪽에서 집해왔다고 남자쪽에서 예단 보냈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참 이상하죠?


예물

예비 부부에게 양가에서 주는 보석, 시계 등등의 귀금속입니다. 비용 대비 비용으로 가기 때문에 이건 사바사에요. 저희는 결혼 반지만 주고 받았습니다. 결혼할 때 남편 명품 시계라도 하나 해줄걸 그랬네요. 결혼하고 나니 큰 돈 쓸 엄두가 안나더라는...


대부분은 보통 처갓댁에서 남자에게 고급 시계/시댁에서 여자에게 보석 3종 세트(다이아,진주,유색 보석). 각자 결혼반지 준비 이렇게 하는 것 같던데 이것도 요즘은 간소화 추세라서 저희처럼 결혼반지만 나눠끼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측에 보내는 혼서지와 예물을 넣어가는 상자입니다. 상자는 사실 쓸 일이 없기 때문에 함을 하는 경우 보통 여행 캐리어로 많이 보냅니다. 예단이 가면 함이 와야되는 것이 공식이라 합의하에 예단을 생략했다면 함도 생략합니다.


예전에는 사촌언니 함 받던 날처럼 저렇게 신랑 친구들이 떼로 몰려와서 한바당 잔치판을 벌렸지만 지금은 신랑이 혼자서 캐리어 끌고 신부집으로 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 둘이 너무 좋으니 이제 같이 살자! 라고 했는데 간략하게 하려고 해도 이렇게나 난관이 많은 결혼준비.

진짜 결혼준비 중 트러블의 끝판왕은 집 준비랑 예단, 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 예단, 예물은 사라져도 될 문화인데 계속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가 뭔지 참 궁금합니다.


결혼준비 과정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하소연이 '반반 결혼이라 합의 하에 예단, 예물, 함을 안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예랑이네서 예단은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시네요' 입니다. 예단의 의미 자체가 사실 며느리들에게는 불공평한 부분인데 친척들이 어째서, 남들 보기가 어때서 등등의 이유로 예단 요구를 하는 경우들도 상당히 많이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 현명한 분들은 그냥 각자 집안에서 알아서 친척들한테 이불 정도를 돌리고 정리하는데 기어코 예비신부에게 예단을 해와라 해서 예비부부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예단 보냈으니 너네도 그에 맞춰서 봉채비, 꾸밈비, 예물, 함 다 가져와라가 됩니다. 생략하자고 해놓고 다시 말 나오면 서로 기분 상하는 것은 시간 문제더라고요. 예단, 예물, 함 같은 것은 옛날에 여자가 시집가면 그 집 귀신 되는거라는 얘기가 통용될 때나 하던 문화이기 때문에 이제는 현대식으로 허례허식은 바뀌어야 되는 것이 맞겠습니다.

이전 03화 너의 재산이 궁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