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쥬스 Sep 18. 2020

난임 병원에 첫 발을 디딘 날

내 인생에 아이는 없다고 외치던 내가 난임 병원까지 오게 될 줄이야.


난 평생을 아이 생각이 딱히 없이 살아왔고 아이에 대한 의견이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기 때문에 산부인과는 간혹 검진을 받으러 가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내가 '난임 병원'이라는 곳에 오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남편과 난임 병원을 가기로 결정을 한 후에 해야 할 일 중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난임 병원들 중 어디를 가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에는 난임 병원들이 정말 많았고, 그 많은 병원들이 미어터진다고 한다.

대충 친구들, 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ㅊ병원 ㅁ병원 ㄹ병원 ㅇ병원 등등이 있었다.


이중 난임 병원 양대 산맥은 ㅊ과 ㅁ 병원이었는데 ㅁ병원은 애초에 리스트에서 뺐다. 왜냐고? 시어머니는 매번 나한테 신설동 그 병원에 가서 빨리 시험관 하라고 노래를 하셨으니까. 난 죽어도 거긴 안 갈 거다.

본인 아들 몸에 시험관 시술을 해야 된다면 그렇게 쉽게 병원 가서 시험관 하라고 하셨을까. 시험관은 그렇게 힘들다던데. 당신이 딸이 있으셨으면 그렇게 아무렇지않게 그 딸 몸에 시험관을 하라고 했을까.

 

정작 우리 부모님은 그냥 살던 대로 편하게 살지 뭔 시험관까지 한다고 난리냐면서 하지 말라고 뜯어말리셨다. 몸이 얼마나 상한다는데 왜 그걸 하냐며.


친정과 시댁의 차이는 이런데서도 참 크게 느껴진다.


어쨌든 난임 병원 선택 기준은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는 검색 결과에 따라 서울역에 있는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워서. 우리 집은 서울역 가는 버스가 5분에 한 대씩 오는 곳이고 버스 전용차로로 달리면 도어 투 도어로 30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다.  


병원을 선정하고 나니 다음 미션으로 선생님을 골라야 한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니 A샘과 B샘이 유명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나 난임 병원이 처음인데 저 두 선생님 중에 한 분한테 진료받고 싶다고.


상담직원은 친절하게 나에게 말했다. "원하시는 선생님으로 진료 보실 거면 지금 예약하시고 5개월 뒤에 초진 보실 수 있습니다."


예?? 뭔 병원 예약을 지금 하고 5개월 뒤에 오래???


그럼 어느 선생님이 예약이 되냐니까 나보고 봐 둔 교수님이 있냔다. 찾아보겠다고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병원 홈피를 뒤져서 당장 예약이 안된다는 분들을 제외하고 그중 제일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선생님으로 선택했다. (그래 봐야 다들 비슷비슷해 보였다) 난임은 너무 젊은 선생님한테 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고른 병원은 워낙 유명한 병원이니 의료진들은 다 최고급으로 구성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정도로 나는 난임 병원에 대해서 무지했다. ㅎㅎ

 

그렇게 예약된 진료 첫날, 병원을 마주한 첫인상은 '와 여기 엄청 고급지게 해 놨네.'였다.

병원은 엄청나게 컸고 내부는 번쩍번쩍했지만 왠지 모르게 어둑어둑한 느낌이었다. 난 이 병원에 처음 온 사람이기 때문에 초진 상담을 하고 상담실 간호사 한분이 나에게 병원 내부 안내, 말 그대로 병원 투어를 해줬다. 병원 투어 안내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만큼 병원이 넓다. 게다가 병원 내에서 돌아다니면서 사용해야 하는 어플도 있다. 이 병원에 처음 오면 어플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어렵진 않다.


처음 마주하는 광경에 어리바리 얼떨떨 함도 잠시. 여기는 일반 산부인과와 달라서 초음파실과 료실이 따로 있었다. 초음파실에서는 계속 환자들이 초음파를 보러 들어가고 거기서 촬영된 영상들은 진료실로 넘어가는 시스템이다. 일반 산부인과는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면서 설명을 해주시는데 여기 초음파실에는 질문이 금지다. 물어도 진료실에서 들으라면서 대답을 안 해준다. 아. 왜 여길 공장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이 생각은 앞으로 수술실에서 한번 더 하게 된다)


몸도 불편한 생리 둘째 날에 병원을 오라고 해서 피가 줄줄 흐르는 상태로 초음파를 보고 7개나 되는 진료실 중 내가 예약한 교수님 방 앞에 가니 내 진료실에만 대기가 24명이다. 하하하하. 24명이라니? 도대체 병원 예약 시간은 나에게 왜 말해준 걸까? 아무짝에 의미 없는 예약시간. 물론 난 예약시간보다 일찍 갔고 초음파실에서도 한 20명쯤 기다렸다가 들어갔으며, 이제 교수님 얼굴 한번 보려니 내 앞에 24명이 지나가야 내 차례가 온단다.


이 병원 안에는 지금 같은 시간에 백 명쯤의 난임 환자들이 나와 함께 대기 중이다.


우리나라에 난임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게다가 이 병원은 분위기가 정말 특이하다. 엄숙하다.

병원에 오는 대상자들이 공통 질환인 난임 때문에 왔으므로 대부분 나이대가 30대 초반 - 40대 중반 사이의 여성이 대부분이고 부부끼리 온 사람들도 종종 보다. 아무도 대기실에서 떠들지 않고 간호사들이 환자 찾는 소리만 분주한 그런 괴괴한 느낌의 대기실이었다. 꽤 넓고 크고 고급지게 해 놨지만 분위기는 너무 묵직했다.


그렇게 멍하니 하나씩 호출되는 사람들이 진료실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구경하면서 한 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드디어 대기 창에 내 이름이 떴다.


처음 만난 교수님은 온화한 분이셨다. 교수님 한 명에 간호사 한두 명이 붙어서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간단한 질문 후 교수님은 나에게 난임 검사 후 자연임신을 시도해볼지 아니면 바로 시험관을 할지를 물으셨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난임 검사 후에 자연임신을 한두 번 시도해보겠다고 했다. 어디서 또 주워들은 이야기로 난임 검사인 나팔관 조영술을 하면 나팔관이 깨끗해져서 임신이 된다더라 하는 카더라를 들었기에 혹시라도 시술 없이 자연임신이 될까? 기대했던 부분도 있었기에.


남편도 검사를 새로 해야 했다. 정자검사 유효기간은 6개월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나팔관 검사는 평생 한번 하면 된단다. (처음 안 사실이었다) 여자들은 태어날 때 이미 난소 기능이 결정되어서 태어난다고. 남편은 '여긴 어떤 영상을 틀어주려나?'라고 했다. 나는 '여긴 큰 병원이니깐 좋은 거 틀어주겠지'라고 대답해줬다. (야동 얘기다 ㅋ)


그렇게 남편 정액검사 날짜와 나팔관 조영술 날짜를 맞춰서 예약하고 피를 왕창 뽑고 병원을 나섰다. 시험관 과정을 이미 거친 친구 이야기로는 앞으로 피 뽑는 일은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했다. 그땐 몰랐지. 한 번에 채혈통 8통씩 피를 뽑아대는 과정이 뒤에 있는 줄은...

이전 01화 딩크 부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