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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Sep 19. 2020

난임 판정의 시작, 나팔관 조영술

우리나라는 난임의 기준을 피임하지 않은 건강한 남, 녀가 1년간 임신 시도를 했을 때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를 1차적 허들로 본다. 여자 나이가 만 35세를 넘으면 임신 시도 기간이 6개월로 줄어든다.  


난임 병원에서 건강보험을 적용받으려면 혼인신고를 한 지 1년이 지나야 한다. (요즘은 사실혼도 적용을 해준다. 난 해당사항이 없어서 패스.) 생각 외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다가 난임 병원에 와서 혼인신고 안 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을 접수처에서 꽤 많이 봤다.


오랜 기간 동안 시험관 시술을 겪어온 여성들이 꾸준히 정부에 청원을 해서 난임 건보 지원이 진짜 많이 확대되었다. 예전엔 시험관 하는데 고급 차 한 대 값이 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건보가 적용되는 부분들이 꽤 많이 늘어났다. 진료비 영수증을 보면 공단부담금이 꽤 있다.(그래도 여전히 시험관 시술 비용은 너무나 비싸다...)


난임 시술을 시작하기 위해서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바로 나팔관 조영술과 정액검사이다.

이 두 가지 검사를 통해 남, 녀에게 문제가 있는지 기본 검사를 하는 것이다.

일부 남자들이 정액검사하기 싫다고 난임 병원에 오기 싫어한다는 말을 들으면 뒷골이 뻐근하다. 남자들은 정액만 검사하면 되잖아. 여자는 얼마나 검사할 것들이 많은데!


다행히 우리 남편은 조용히 잘 따라와서 비뇨기과 진료를 받고 피검사를 받았다. 물론 남편도 나만큼이나 머릿속이 복잡했겠지.


나팔관 조영술은 자궁에 조영제를 투여해서 나팔관 양쪽으로 잘 퍼지는지를 체크하는 검사이다. 이 검사에서 조영제가 양쪽 나팔관으로 잘 퍼지지 않으면 나팔관이 막혀있다고 본다. 이는 곧 배란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 간혹 이 조영제를 쏘는 과정에서 살짝 막혀있는 나팔관이 청소가 되면서 자임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해서 나도 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이 조영술... 진짜 악소리 나게 아팠다. 자궁은 통각이 없다더니 개뿔. 소리 질렀다. 진짜 너무 아파서.

나팔관이 막힌 사람들은 통증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난 막히지 않았는데도 눈앞에 별이 번쩍 했다. ㅠ


난 다행히 조영제가 잘 퍼져서 나팔관엔 문제가 없고 생뚱맞게 용종이 몇 개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용종 제거술을 권했다.


나팔관 조영술 하면 애기가 생긴다던데, 이번 달에 아기 생기면 용종 수술 안 해도 되죠? 그랬더니 그렇단다. 종은 착상을 조금 방해할 뿐이고 출산할 때 제거가 되기도 한다고 하니.


조영술 이후에도, 내 나팔관은 깨끗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아이는 안 생겼다.


렇게 우리 부부의 난임 원인은 '원인불명의 난임'으로 진단서에 명시되었다. 꽤 많은 난임부부들이 원인불명의 난임 진단서를 받아 든다고 한다.  




난임 병원은 부부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서 임신이 되도록 하는 최적의 수치로 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때문에 모든 수치를 굉장히 타이트하게 잡는다. 


남자에게도 좀 타이트하게 압박을 줬으면 좋겠는데 병원에선 남자한텐 별 말을 안 한다. 정자 운동성 떨어지는 문제 때문에 금연을 권고하는 정도? 때문에 술, 담배를 끊지 않는 남편과 진짜 오랜만에 피 터지게 싸웠다.


난임 병원에서 잡는 수치는 일반적으로 건강하다고 보는 수치와 다르다.


덕분에 난 정말 애매하게 오버되는 수치 때문에 갑자기 고혈압약도 먹어야 하고 갑상선 약도 먹어야 했다. 그리고 용종은 일상생활하는 데는 하나도 이상이 없는 위치고 크기지만 임신 시도 시 용종 때문에 내막에 착상이 안될 수 있으니 일단 떼고 보자고 하길래 수술을 해야만 했다.


난임 병원에 오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 하고 몸을 만들고 난 뒤에 시험관을 하는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시험관을 시작하기 전에 자궁경 시술로 용종을 제거했고 약 일주일간 회복하느라 굉장히 몸이 아팠다. 다행이라면 시험관 시술 전에 한 번 수술방을 체험해본 것이랄까. 시험관 시술이 용종 제거랑 절차가 같다고 했다. 물론 용종 제거가 더 아프고 회복이 힘들더라.....


내가 용종을 떼겠다고 한 이유는 설마 내가 시험관까지 가겠어?라는 자만감이 90%였다.

용종을 제거하고 난 뒤에는 몸을 회복하는 기간을 가다. 그 기간에 내벽이 깨끗해진 자궁에 착상이 잘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용종 수술 후에 아이가 잘 생긴단다.

이번에 아이 생기면 시험관 안 해도 되겠지?


나의 자만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용종 제거를 한 후에도 아이는 안 생겼다.

난 왜 이렇게 김칫국을 퍼마시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먹고도 아직도 모자란가 보다.


선생님은 이제 시험관을 시작할 것인지를 물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병원에선 우리 부부는 나이가 있어서 인공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환자가 원한다면 인공부터 한다고. 인공수정은 자연임신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배란과 정자 선별과정이 추가되는 것이고 비용도 시험관에 비해 훨씬 적게 든다. 다만 우리 나이는 한시가 바쁘니 시험관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단다. 


험관 시술을 위해서 준비해야 되는 것들에 대한 안내를 받고 병원을 나서는데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난임 지원 비용 신청을 하기 위해 보건소를 찾아가는 길에 우산을 써도 쫄딱 젖을 만큼의 폭우가 퍼부었다.

내 마음에도 폭우가 퍼붓는 것 같았다.

 



임신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 만감이 교차한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희망적이었다가, 기대했다가, 안되면 슬펐다가 다시 또 기대했다가... 매 달 생리가 시작되는 것에 맞춰서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남들의 그랬다더라 이야기들이 다 내 얘기인 것만 같고, 잘못된 케이스들의 이야기는 왜 이렇게 많은지. 난 주위에 시험관 실패한 사람들이 몇 있었기에 사실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들 낙관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다들 내가 난임 병원에 간다고 했을 때 시험관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얼마나 힘든 과정이라는 건지. 본인들이 너무 힘들었으니 나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했을 것이다. 오히려 시험관의 ㅅ 도 모르는 사람들은 남들 다 시험관으로 쉽게 애 가진다더라라며 가볍게 이야기를 내뱉었다.


난임 병원에 온 사람들은 1차적으로 마음이 다쳐서 온 사람들이다.

1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그 기간 동안 실망을 여러 번 하고 난 뒤 병원에 고심 끝에 찾아왔을 테니. 나 역시 이제는 이유라도 좀 알자고 절박하게 찾은 병원에서 이유 없음. 원인 불명의 결과지를 받아 들지 않았던가.


난임부부에게는 이 결과지가 또 다른 지옥을 선사한다. 차라리 어디가 문제라고 나오면 그 이유를 제거하면 아이가 생기겠지만 이유가 없다니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그동안의 부부 생활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이유를 찾아내며 나를 괴롭힌다.


그간 술을 너무 마셨나? 운동을 너무 안 했나?? 이건 다 애 낳자며 남편이 술 담배를 안 끊어서 그럴지도 몰라 등등 나 혼자의 억지 주장을 펼치며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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