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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Sep 22. 2020

과배란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

기대했던 자연임신 시도가 전부 실패한 나는 노산이라는 후려침을 당하면서 인공수정도 아닌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임 병원에서는 내 난소 나이가 내 나이와 동일하다는 진단을 내려줬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 나이에 20대 난소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던데 내 난소는 왜 내 나이랑 같은 나이일까. 실망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본인 나이보다 난소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도 많아요' 라며 대부분이 자기 나이랑 난소 나이가 같거나 한두 살 차이 나는 수준이라고 나를 위로해주셨다. 난소 나이가 어리단 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뿐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라면서.  

 

여자의 몸은 일정 주기에 맞춰서 난자를 생성한다. 그 난자는 배란기에 약 24시간 정도 여성의 자궁에서 살아있다가 소멸하는데 이 기간에 남성의 정자를 만나서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되면 임신으로 이어진다. 수정이 안되면 생리가 시작되는 것이고. 요렇게 심플한 과정인데 난 왜 그리 임신이 안되는지.


이때까지도 나는 남편이 술 담배를 끊지 않아서 정자가 오래 살지 못해서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이라 굳게 믿으며 남편을 마구 갈구고 있었다. 보통 일반 남성의 정자는 여자의 자궁에서 3~5일간 생존하는데 네 건 하루도 못 사는 거 아니냐고. 아니면 니 정자는 술 담배에 취해서 내 난자랑 결합이 안 되는 걸 거라고. 그러자 남편은 내 자궁 환경이 산성이 강해서 자기의 불쌍한 정자를 다 죽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실 이유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벽이 두꺼워서 정자가 난자를 파고들지 못할 수도 있고 정자가 활동성이 떨어져서 난자를 찾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간혹 기형정자는 도리도리 뱅뱅을 하다가 직진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이건 정자검사에서 대부분 판별이 나며 남편은 이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분비물이 산성이 강해서 정자를 다 죽이는 경우도 있고 여성 몸의 면역력이 너무 높아서(요즘 신나게 광고하는 NK 수치) 수정란을 바이러스로 인식해 계속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 외에도 임신이 안 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배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몇만 개의 유전자가 정확하게 제대로 한 번에 결합을 해야 되는 것이라고. 

 



시험관 시술의 첫 번째 과정은 과배란이다. 사실 기승전 과배란이다. 질 좋은 난자를 많이 뽑아내야 시술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과배란 처치는 매 달 난자를 생성해 내는 난포 호르몬을 과다하게 자극해서 한 개의 난자가 아닌 꽤 많은 수의 난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난임에 대해 무지했던, 그리고 애를 왜 낳아야 되냐며 남편과 피 터지게 싸우던 그때 내가 남편에게 들먹인 이유는 난임 시술을 하면 과배란을 해야 하는데 내 난소에서 난자를 몇십 개씩 뽑아대면 폐경이 빨리 올 텐데 내가 빨리 늙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네가 책임을 질 것인가 였다. 그 무서운 갱년기 모르냐면서.


남편은 무리한 시술로 내 갱년기가 당겨지는 것은 싫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무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난임 병원 선생님은 과배란과 폐경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난소 기능은 배란과 관계가 있는 거지 난자 개수와 하등 관계가 없다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난 여태 신나게 남편에게 잘못된 사실로 협박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폐경이 당겨지는 게 아니고 그냥 여자 몸이 많이 힘들 뿐이란다. 이것도 억울하다. 왜 난임시술은 여자 몸만 많이 힘들어야 하는 건가. 


난임 병원에 오기 전에 산부인과에서 한번 과배란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물론 산부인과에서 시도하는 과배란과 시험관 시술에서 시도하는 과배란은 차원이 다르다.


산부인과에서는 과배란 약을 처방하는데 당시 먹었던 약은 클로미펜 저용량이었다. 첫 시도이고 무작정 높은 약을 쓸 수 없다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5일간 약을 먹었는데 약은 전혀 듣지 않았고 오히려 그 미미한 호르몬 부작용으로 짜증만 계속 났으며 그 칼 같은 주기의 내 생리주기는 이 약 복용 후 생리를 4일이나 늦게하는 깜짝 놀랄 효과를 가져왔었다. 그 부작용을 겪고 과배란도 제대로 안되고 내 난자는 한 개만 배란되어 있었다. 물론 그달도 자연임신에 실패했다.


아마 인공수정을 하면 이 약을 고용량으로 먹는 것 같은데 시험관은 먹는 약이랑 하등 상관없고 기승전 '주사'이다. 내가 간호사도 아니고 마약쟁이도 아니고 내가 내 몸에 주삿바늘을 꽂을 일이 여태 뭐가 있었겠는가. 병원은 친절하게 나에게 자가주사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배에 내 손으로 주삿바늘을 찔러 넣은 그 날. 간호사 선생님은 나에게 용감하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지만 내 이마와 등짝은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 짓을 이제 집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해야 한다는 거지???


처음엔 과배란 주사 두 개가 나왔다. 며칠 뒤 방문한 병원에서는 내 난포가 거의 안 컸다며 주사 용량을 두 배로 늘리고 배란 방지 주사까지 추가처방을 했다. 주사는 세 대가 되었다. 그리고 새로 처방 나온 배란 방지 주사는 정말 아팠다. 맞고 나면 뻐근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땐 이 주사가 너무 아파서 징징거렸는데 시술 후에 맞는 주사가 더더더더 아프다. 과배란 주사는 진짜 껌이었던 것.


보통은 남편이 주사를 놔주면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니 어쩌니 해서 주말에 남편에게 주사를 놔달라고 했다. 남편도 매번 나 혼자 주사 맞게 해서 미안하다고 주말엔 본인이 주사를 놔주겠다며 의지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주삿바늘을 내 배에 반만 넣고 손을 벌벌 떨질 않나(매우 아팠다) 주사기 뚜껑 열으랬더니 주삿바늘을 부러뜨려먹을 뻔하질 않나 (결국 지 손가락을 찔러서 피를 봤다. 난 주삿바늘이 오염되었을까 봐 심각하게 걱정했다) 바늘을 제대로 찌르지를 못해서 내 배를 계속 바늘로 찔렀다 말았다 하는 통에 집어치우라고 하고 알코올 솜이나 잘 들고 있으라고 했다. 그냥 내가 놓는 게 낫지. 자기 딴엔 주사 놓는 동영상도 보고 한 것 같은데 실전에 저리 약해서야 원... 그렇게 남편은 종일 내 눈치를 보면서 쭈구리가 되었다.


그 난리통을 겪으며 병원을 주기적으로 가서 내 난포가 얼마씩 크는지 초음파를 계속 보고 어느 정도 난포가 컸다 싶으면 난자 채취 이틀 전 난포 터지는 주사를 처방해준다. 이 주사는 병원에서 맞으라는 시간에 딱 맞춰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 주사를 맞으면 36시간 정도 후에 배란이 일어나고 그때 병원을 방문하면 수술대 위에 올라 두 팔을 묶고 전신마취 후 과다하게 키워낸 내 난자를 채취한다.


나는 매일 과배란 주사를 내 배에 찔러 넣으면서 기도했다. 이 힘든 과정이 제발 한 번으로 끝나길.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시험관은 진짜 과배란 과정이 끝판왕인 것 같다. 너무 힘들다. 그리고 진짜 비용이 많이 든다. 주사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며칠 간격으로 계속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내 난포를 체크해야 한다. 이쯤 되면 산부인과의 굴욕 의자 따위는 거부감조차 안 든다. 


주사를 내 스스로 내 배에 찔러 넣어야 해서 힘든 건 일도 아니다. 그 주사는 고용량 호르몬제이며 전에 두 알씩 먹었던 클로미펜 따위의 약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과배란 약제인 것이다.


사람마다 부작용은 다르게 온다. 나는 그나마 과배란 부작용이 약하게 온 편에 속하는 것 같았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 저용량으로 주사가 나왔을 때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서 '이거 좀 할만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약이 누적되고 난포가 안 커서 주사약 용량을 올리고 난 뒤부터 말 그대로 지옥문이 열렸다.


1. 우울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남들은 호르몬이 널을 뛰어서 화가 났다 말았다 한다는데 나는 계속 너무너무 우울하기만 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고민하며 심각하게 우울했다. 남편은 내가 너무 우울해하면서 기운 없어하자 차라리 짜증을 내는 게 괜찮을 것 같았다고 했다.

2. 가슴이 너무 아팠다. 생리 전 증후군은 저리가라로 가슴이 너무 뻐근해서 움직일 때마다 아팠고 잘 때 몸을 뒤채면 악소리가 나서 자다 깨다 했다.

3. 식욕이 뚝 떨어졌다. 속이 뒤집혀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식을 하고 나면 음식을 가려야 하니 채취 전에 많이 먹어두라고 하는데 도대체가 뭘 먹을 수 없었다. 과배란 진행 기간 중에 내 생일이었는데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서 너무 서러웠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가 하나도 맛이 없었다.

4. 온몸의 염증반응이 심각해졌다. 하다못해 잇몸까지 염증이 올라와 치통이 너무 심해서 밤새 울다가 긴급하게 치과에 가서 잇몸을 째고 염증 제거를 해야 했다. 임신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과배란 중에는 치과 시술이 가능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5.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졌다. 머리를 한번 감을 때마다 수챗구멍이 안 보일 정도로 머리가 빠졌다.  


대부분은 식욕이 폭발해서 살이 찌고 호르몬이 널을 뛰어서 화가 났다 말았다 하는 정도의 부작용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정반대의 부작용을 겪어야 했고 남편은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찾아본 증상과 내 증상이 다르자 매우 당황했다.


과배란 과정이 끝나고 주사를 끊으니 거짓말같이 증상이 사라졌다. 마치 뱃멀미 같았다.

정말 인체는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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