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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Sep 18. 2020

딩크 부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다.

우리는 딩크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전 우리는 아이에 대한 의견이 일치했고 결혼해서 둘이서'만' 즐겁게 살면 매우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 후 상황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마주칠 때 마다 인사치레로 아이 소식을 물었고 우린 딩크라고 하면 왜 애를 안낳느냐며 애가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고 다들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게다가 둘이 결혼해서 애 하나를 안낳았으니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 인구감소의 주범이라는 이야기까지. . 이 나라에서 딩크부부로 사는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걸까. 시부모님께선 남들 다 있는 손주가 나 때문에 없다 하셨고 얼른 애 하나 낳고 일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가슴속에는 응어리가 졌다.


만일 우리가 생각을 바꿔서 아이를 낳아도 우리 부부가 낳을 일이고 키워도 우리 부부가 키울 일이었다. 왜 아이가 없냐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선택을 부정 당하는 것같아서 더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말들 속에서 우리 부부의 관계도 서서히 악화되어갔다. 아이 없이 둘이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줄 알았던 우리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상황이 나빠진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아이 타령에 질려가던 중 갑자기 남편이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너까지 왜 이래!'라고 했지만 갑자기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니고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하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싶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지금 남편과 둘이 사는 생활이 참 편하고 좋은데 왜 이 사람은 갑자기 나와 자기 사이에 아이를 만들어 넣고 싶어 하는 걸까.




딩크 부부에게 아이 이야기가 나온 순간 그 이후의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아이를 갖거나, 이혼하거나.


아, 세 번째 선택지가 있다. 난임이 아닌 진짜로 불임이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이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니깐 두 가지로 일단 보는 것이 맞을 듯싶다.


아이 이야기가 나온 순간 전과 같은 둘만의 부부생활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없던 일로 무르면 되지 않느냐고? 한쪽에서 말이 나온 순간 그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어느 한 사람이 이미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이상 상대방이 아이 낳기를 거절하면 아이를 원한 사람 쪽에서는 '상대방 때문에 나는 아이를 갖거나 키울 수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이 경우 먼저 아이를 욕망한 사람이 느끼는 '결핍'이 반대쪽에 굉장한 부담을 주게 된다.


나 역시 내가 아이 낳기를 거절하면 남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질까. 혹시 남편이 나 때문에 아이 없이 살 수밖에 없었다고 늙어서 내 탓을 할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 둘이 사는 게 이제 심심해졌다는 남편의 멘트에 심한 배신감으로 부들부들.


6년이나 둘이서만 놀아서 이제 지루하다니.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나도 너랑 노는 거 이제 별로 재미없거든?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어떤 날은 나름 지성인답게 토론도 하면서 과연 우리 둘 사이에 정말로 아이가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와인 한 잔 기울이던 주말 저녁 이제는 우리 닮은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남편 말에 흔들렸다. 젠장.




그렇게 우리도 아이 하나를 낳을까? 싶어서 피임을 하지 않은지 6개월.


아이 소식은 없었다.


둘 다 건강한데 뭐, 다음 달에 생기겠지.


1년째.

안 생겼다.


나는 산부인과에, 남편은 비뇨기과에 갔고 둘 다 정상이라는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일까?


산부인과 선생님은 나에게 한시라도 빨리 난임 병원에 가서 '시험관'을 하라고 하셨다.

원래 자연임신 - 인공수정 - 시험관 시술 순서 아니냐고 했더니 나보고 지금 노산인데 인공수정 같은 소리 하고 있다고 하셨다. 하하. 쿨한 걸 넘어서서 되게 무례하시네.( 라고 생각했지만 앞으로 당할 일들에 비하면 먼지같은 일이었다.)


내 동생 말로는 조리원에 마흔도 수두룩 하다던데 왜 나보고 노산이래?


나는 노산이 맞았다. 여자 나이가 만 35세가 넘으면 노산이라고 한다. 난 이미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정말 슬픈 현실이지만 난임을 여자 문제로 치부하는 데는 이 여자 나이가 중요하긴 했다. 수많은 난임 병원들에서는 여자 나이 만 35세를 기준으로 가임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팍팍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의학적인 팩트였으니까.


여하튼 시험관이 얼마나 여자 몸만 힘들고 돈이 많이 든다는데 나보고 시험관을 하래?? 진짜 웃기는 병원이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한약 먹으면 아이가 생긴다던데....

유명한 한의원을 소개받아서 우리 둘 다 침을 맞고 약을 한 달치 넘게 먹었다.


그래도 아이는 안 생겼다.




계속 임신 실패 결과지를 받아 들자 나는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나는 매 달 주기가 일정하고 배란이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런데 내 생각과 달리 일년이 넘게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다시 둘이 즐겁게 살자 라고 생각하던 찰나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 여파로 인해 내가 다니던 회사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결국 권고사직 사태가 벌어졌다.


달려오던 인생에서 갑자기 시간이 생겼다.


남편에게 물었다.

시험관까지 해서라도 아기가 갖고 싶어?

남편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 기다려도 아이가 안생기니까 시험관 시술이라는 것을 해보자. 이 기회에 겸사겸사 둘 다 건강검진 받는다고 치지 뭐.


그렇게 우리는 난임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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