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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맘혜랑 Aug 01. 2024

자아실현의 마라톤

창업의 길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인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자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이는 내가 끊임없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이성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포기할 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또다시 창업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나를 보면 

난 참 창조적인 인간임에는 확실하다. 

창업은 이러한 나의 본성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발휘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과정은 나의 저 깊은 내면의 본성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잠시의 휴지기인 지금도 쉼 없이 나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36세에 대학을 졸업한 나. 당시 나는 셋째 아이를 막 출산하고 몸조리 중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나는 전공을 살려 어린이집을 창업하려 했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리고 창업 방법도 알지 못했다. 겨우 백일 지난 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고 오후에는 8살과 6살을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다행히 똘똘한 아이들 덕분에 학생 모집에는 어려움이 없었고, 반은 곧 가득 찼다. 마을에서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인정받았고, 수익도 월 400만 원 이상으로 넉넉하게 벌 수 있었다.




어린이집 창업에 대한 꿈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원을 운영하기 위한 실무를 배우기 위해 오전에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을 했다.

실무를 쌓으며  유아발달단계를 더 깊게 공부를 했다. 

그리고 놀이학교에서 3년 동안 교사와 원감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6년여의 시간들이 꿈 속으로 들어갔다.

창업 계획과 준비를 단단히 했다. 

교구준비와 프로그램을 셋팅을 했고 드디어 놀이학교를 인수했다.

그 때 내 나이  43세 

드디어 놀이학교원장이 되었다. 

어린이집원장자격증을 사용해보지는 못했지만 어찌되었던간에 원장의 닉네임을 가질 있어 어깨에 뽕이 들어간 기뻣던 순간임은 부인 없는 실화다.당시 유행하던 놀이학교였다. 셋째 아이가 7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게 되자 나는 놀이학교 운영에 전념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숲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하여 남들이 시도하지 않던 숲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며 유아 잡지에 기사를 실을 만큼 주목받았다. 놀이학교는 잘 성장했고, 원생 수는 50명을 넘어서며 안정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었고 나는 만족스러운 결과에 꿈꾸던 업을 실현 시킨 기쁨을 만끽했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천성 덕에 나는 놀이학교 운영을 더욱 창조적으로 했다.




'자기 발전의 자유'는 개인이 자아실현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언급된 것처럼 창업은 자기 발전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창업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할 수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창업은 나의 성장을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로 인해 매일 밥을 먹듯 꿈을 꾸고 자아실현을 위한 목표 설정을 하고 꾸준히 계속 자라고 있다. 창업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와 경제 상황은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업의 타당성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함바식당 운영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아이들만 가르치던 내가 나이가 많은 남자 어른들과 관계를 맺고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방에서 일하는 이모님 세 분과 함께 새벽밥을 준비하며 동탄에서 원주까지 매일 75km를 출퇴근했다. 힘든 여정이었만, 최선을 다해 운영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월 7-8천의 매출을 일으키며 30% 이상의 수익을 내며 사업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최소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매장을 창업했고 실적 좋았다.




2017년,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겠다는 일념으로 베이커리 카페를 창업했다. 

그러나, 창업은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빵에 대해 일도 모르면서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파리 땡땡을 운영하는 친구의 권유로 아무 준비도 리스크에 대한 대비도 없이 선택한 베이커리카페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나의 자영업 경험은 다양한 실패와 성공을 통해 이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서는 시장 조사, 철저한 계획, 유연한 대처 능력이 필요하다.


나의 자영업 역사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다. 다양한 업종을 경험하며 쌓은 노하우로 매장을 인수하고 접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창업은 예측 불가능한 외부 요인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창의성과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중요한 행위다. 나의 자영업 경험은 이러한 인문학적 근거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창업의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게 한다. 지금도 나는 자아실현을 위한 마라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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