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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아지 Mar 23. 2017

존재냐 소유냐

서미싯 몸,『달과 6펜스』


이상과 현실이 마찰음을 낼 때가 있다. 가슴 한켠에 간직해온 꿈이 있기는 하지만, 내게 재능이 있다는 확신이 없어 전부를 걸기가 두려울 때. 현실을 직시하면 당장 스펙 하나라도 더 쌓아야 할 것만 같을 때. 배고픈 모험가냐 안정적인 생활이냐, 기로에 서서 머뭇거릴 때 고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다니던 증권 거래소를 돌연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중개인 시절에는 꽤나 부유했지만, 파리에서 그는 가난한 화가였다. 그리고 마침내 타히티 섬으로 떠나 원주민 아타와 사랑을 나누며 예술혼을 실현시킨다. 그의 작품은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인정받는다. 작가 서미싯 몸이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소설의 주인공으로 그려냈던 사람은 바로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이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


달과 6펜스’라는 제목에서 ‘달’은 존재 혹은 이상을, ‘6펜스’는 소유 혹은 현실을 은유한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달을 쫓은 사람이었다. 예술을 위해 가진 것들을 전부 버렸다. 그러나 그는 도덕과 예의를 외면하기도 했다. 흔히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에서 현실을 택하면 타협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면 열정적인 것으로 오역되곤 한다. 그런데 현실은 과연 6펜스밖에 안 될까? 6펜스는 우리나라 돈으로 겨우 10원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가치로 간과하기에 현실의 무게는 꽤나 무겁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다. 이 책임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윤리와 사회적 규범까지도 포함한다. 스트릭랜드가 버렸던 모든 것들이다.    


좋아하는 일이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이라면 취미로 하는 것만큼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게 된다면 그 일이 미워질 수도 있고, 직장에서 서류 뭉치들을 보는 것만큼 악보나 도화지를 보아야 한다면 지겹기는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달을 쫓는 사람은 이러한 불안과 권태를 넘어서야 한다. 흔들림을 견딜 수 있는 확신과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배고픈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동경만 할 것인가, '해본 일' 만들 것인가


스트릭랜드의 예술혼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실현되지 못하고 원시적 본연의 타히티 섬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모든 문명과 규범을 벗어난 세계만이 그의 예술혼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꼭 이처럼 극단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현실과 이상은 결코 시소의 양 끝이 아니다. 현실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이상을 실현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인생은 짧다. 동경만 할 것인가, ‘해본 일’로 만들 것인가. 선택은 젊은이의 몫이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 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한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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