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밤의 여행자들』
무엇이 재난일까
‘재난이란 무엇일까’라는 문장과 ‘무엇이 재난일까’라는 문장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앞의 문장은 재난 하나만을 생각하게 하고, 뒤의 문장은 많은 ‘무엇’들 가운데서의 재난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재난일까. 정글에서 퇴출 위기에 처해 있었던 요나의 상황일까. 폴의 말마따나 ‘아무 일도 없는’ 무이의 현재일까, 폴과 요나가 조작하던 짜고 치는 재난 여행일까. 결국 그 일요일에 무이를 집어삼킨 쓰레기 더미 해일일까. 과연 이 세계에서는 무엇이 재난일까.
럭은 요나에게 “아무것도 없을 뿐이지, 그게 재난인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아무 일’이 있어야 재난이다. 그런데 그 ‘아무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그래서 만들어낼 수도 없다. 폴과 요나는 재난을 조작하려 했지만 오히려 재난은 뜻밖의 곳에서 왔다. 설령 재난을 만들어낸다 한들 언제 어디서 재난이 발생할지 알 수 있고 대처할 수 있는 한 재난이 아닐 것이다. ‘일요일의 무이’는 계획을 알고 살아날 방도를 마련해 둔 사람들에게는 재난이 아니었지만 ‘악어들’에게는 재난이었다.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한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임계점을 초월하는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 “하나의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고 작은 수백 가지 징조가 미리 보인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재난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틀렸다.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예상도 못 하고, 그래서 물러설 자리도 마련해 두지 못했는데도.
재난과 사람의 감정은 어딘가 맞닿은 부분이 있다. 소설은 지금 요나에게 가장 큰 재난은 자신의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요나의 감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처럼 불안했다고. 사람의 마음은 재난과 같아서 만들어낼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이라고 회고하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러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밀물처럼 밀려온다.
예측할 수 없어서 재난이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하게 될 것을 미리 알고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으니까, 나와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하면서 단념할 수 있었다면 결말이 그토록 비극적이었을까. 요나가 무이에 남기로 결정했을 때 여기 더 있다간 럭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그래서 자신이 죽고 말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무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사랑은, 그걸 안다 해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예측할 수 없는 마음은 재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난에서 살아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