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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Sep 04. 2023

21번째 생신

"이번에는 나가서 먹자?"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내줍니다. 다행입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결혼하고 20년 시어머님 생신을 집에서 차렸습니다. 매번 다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님은 저희가 유일한 자식입니다. 외동인 남편을 만나 당연히 그렇게 해온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조금 꾀를 부리고 싶어 남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꺼내도 되는데 먼저 하지 못했습니다. 괜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 맞지요. 며느리인 제가 미역국을 끓여 드리지 않으면 미역국 끓여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끓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생신 때마다 끓여드렸어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어머님 생신 때마다 저는 죄인이 됩니다. 막상 저를 낳아주신 저의 엄마에게는 미역국을 끓여 드린 적이 없습니다. 결혼 전에는 바빠서 그랬고 결혼 후에도 바빠서 그런 것이지요. 엄마는 저에게 미역국 이야기를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아무도 안 끓여주면 엄마가 끓이시니까요. 저도 그런 엄마를 닮아 다행히 미역국에 미련이 없습니다. 사실 엄마는 미역국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수시로 미역국을 끓여 드십니다. 하루는 형부가 그러더라고요. "어머님 미역국을 이렇게 자주 먹는 음식인 줄 몰랐어요. 저는 생일날에만 미역국을 먹는 줄 알았어요" 자주 먹으니 생일날 안 먹어도 섭섭한 것이 없습니다. 엄마의 큰 그림이었나 봅니다.


우리 어머님은 "우리 며느리가 미역국 끓여줬어"라고 친구들에게 꼭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미역국을 꼭 끓여드렸지요. 이번에는 나가서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미역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습니다. 외식인데 끓여야 하나? 한번 안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한 수 거듭니다. "엄마 미역국은 어떻게 하지?" 내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한마디 하니 괜히 속이 불편해집니다. '이제 아들이 한번 끓여드려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한 그릇 퍼서 식당에 가지고 가라 합니다.  찜찜하게 그러지 말고 그냥 끓여드리라고 합니다. 친구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라 생각하면 어려운 게 아닌데 참 어렵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끼리도 만남이 어려울 때 엄마의 생신이었습니다. 낮에 혼자 친정집에 갔습니다. 김밥 30줄이 쌓여 있었습니다.

 "엄마, 웬 김밥이야?" 

"며느리가 김밥 싼 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 음식 만들어 준 거야"

나도 며느리이지만 동생부인이 참 고맙다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을 저리 만들었구나. 생일에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저리 해주는 걸 보니 다른 섭섭한 것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걸 알고 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도 딱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말씀하신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제가 만드는 잡채를 제일 좋아하십니다. 그 이후로 어머님께 한 번 물어보야지 생각만 하고 묻지를 못했습니다. 21번째 시어머님 생신에는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시는지 여쭈어야겠습니다. 이젠 그 음식만 만들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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