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기 시작하는데 하늘이 깜깜합니다. 6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해가 지려나? 생각하는데 밖이 시끄럽습니다. 비가 쏟아집니다. 여름도 아닌데 폭우입니다. 나무 가지들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쓰러졌다 일어납니다. '이게 원일이래?' 갑자기 창문 밖과 창문 안쪽의 세상이 다른 세상 같습니다.
"엄마, 저 영어학원 데려다주세요?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가요?"
"학원 다닐 때 약속했잖아. 학원은 스스로 알아서 다니는 거야"
둘째는 가끔 저에게 학원을 태워다 달라고 떼를 씁니다. 분명 영어학원 다니기 시작할 때 둘째와 약속을 했는데 말입니다. 영어 공부를 혼자서 할 마음도 없고 그렇다고 저와 형에게 배울 마음도 없는 둘째입니다. 영어 시험을 보면 성적이 정말 형편이 없습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2학년 되어서 영어학원을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 다니는 학원에 같이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결정한 학원은 셔틀이 없습니다. 버스를 타고 혼자 다녀야 하는 곳입니다. 둘째가 이 학원을 다닌다고 했을 때 반대를 했습니다. 학원도 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 친구인데 버스까지 타고 가야 한다면 분명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귀찮아서 분명 저와 남편에게 태워다 달라고 부탁을 할 것입니다. 저는 둘째와 약속을 했습니다.
"네가 친구 따라 이 학원을 다니고 싶으면 절대 태워다 달라고 조르면 안 돼!"
"네 "
이렇게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 늦었다고 태워다 달라고 했지만 저는 늦게 가서 선생님에게 꾸지람 듣는 것도 너의 행동의 결과라고 모른척해왔습니다. 이런 제가 오늘 약속을 어기고 태워다 주었습니다. "학원 가기 전까지 비가 오면 태워다 줄게"라고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학원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비가 계속 쏟아집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아들, 비가 온다고 엄마에게 이러면 안 돼. 오늘만이야"
"네 알았어요"
"엄마,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학원 안 가려고 선생님에게 연락했었어요. 선생님이 오늘 꼭 오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저도 가는 거예요. 저도 웬만하면 안 그러죠"
"그래 그런 사정이 있으면 오늘은 엄마가 태워다 주지. 알았어"
"그리고 제가 학원 늦은 적은 있어도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잖아요"
생각해 보니 둘째가 학원을 가기 싫어한 적은 많지만 결석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학원도 안 빠지고 열심히 다니는 둘째입니다. 매일 구시렁구시렁 말이 많아서 안 빠진걸 여태껏 몰랐습니다.
둘째는 영어학원을 다녀도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영어성적은 다닐 때와 안 다닐 때 차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학원비를 대주는 저만 돈이 아깝다고 느끼지 둘째는 눈치를 안 봅니다. 이걸 계속 다니라고 하기엔 학원비가 너무 아까워서 하루는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아들, 엄마는 네가 영어학원을 안 다녔으면 좋겠어"
"왜요?"
"엄마가 보기엔 네가 학원을 안 다녀도 지금 이성적 받기에 충분한 것 같아. 혼자 공부하는 것은 어떨까?"
고민하던 둘째는 저에게 협상을 합니다.
"엄마 2학기 기말고사 결과 나오면 그때 결정하는 것이 어떨까요?"
바로 학원을 안 다니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엄마, 이 정도 성적이면 계속 학원 다녀도 되죠?"
성적을 보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거의 30점이나 점프를 했습니다. 이 녀석이 공부를 정말 했나 봅니다. 공부를 할 줄 아는 녀석이라 다행이기도 합니다. 8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곱게만 키운 둘째입니다. 곱게만 키워 중학생이지만 또래에 비해 늦은 게 하나둘이 아닙니다. 가끔 남편과 둘째를 1년 늦게 학교를 보냈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합니다. 1년 늦은 친구들과 비교하면 발달 수준이 비슷하다 느껴지거든요. 조금 천천히 가지만 꾸준히만 가보자고 오늘도 주문을 외워봅니다.
'아들, 오늘은 어쩔 수 없지만 또 그러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