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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Apr 28. 2023

작은 변화를 기대하며

" 고생했어"

" 이제 집에  가자"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수업을 마치자마자 지저분한 것만 빗자루로 쓸고 얼른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새 학년 시작하고 한 달여 동안 참고 기다렸는데 더는 안되겠단 생각에 샤샤 부모님을 뵙기로 했습니다. 조금 있다 오신다 합니다.

 

통역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샤샤 부모님께 전화해 주세요."

" 학부모 상담 날짜도 잡아주세요, 오늘이라도 오시면 좋겠어요”

오늘 체육 전담 시간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체육관 바닥에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수업 마치고 오는 길에 여자친구에게 러시아어로 욕도 했다고 합니다. 기분이 나빠지면 한국 친구, 러시아 친구, 남자 친구, 여자 친구 가리지 않고 욕을 합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핸드폰을 들고 사라지기도 잘합니다. 수업 시간에 화가 나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기도 하지요. 

해마다 문제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지만 다른 친구들을 위협하는 행동은 수업을 방해할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교실 분위기가 아주 나빠집니다.

다행히 샤샤의 아버님이 오늘 쉬시는 날이라 오신다고 합니다. 다문화 친구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공장 근로자로 취직을 하시기 때문에 낮에 시간을 내시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오실 수 있으시다니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샤샤라는 친구는 지금 5학년입니다. 우리나라에 입국한 지는 벌써 4년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한국어 실력은 '화장실','급식' 같이 생활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어만 말하기가 가능한 정도입니다. 

대부분 한국에 입국하여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2년 동안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교실 수업을 받게 됩니다. 하루에 2시간씩 한국어 수준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해 주십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2년 정도 수업을 받으면 간단한 대화는 가능해집니다.  물론 언어감각이 있는 친구들은 6개월만 배워도 일상 회화가 가능해지는 친구도 있습니다. 작년 저희 반 여자 친구는 6개월 밖에 안되었지만 친구들의 통역까지 해주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샤샤는 미술 수업 시간에만 간신히 수업에 참여하고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육도, 음악도 참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일 연필로 죄 없는 지우개만 구멍을 내고 있습니다. 필통에 제대로 된 연필도 없습니다.

저도 언어 감각이 없어 오랫동안 배운 영어도, 고등학교 때 배운 제2외국어 일본어도 거의 못합니다. 그나마 읽기만 가능한 수준입니다.  저도 외국에 이민을 갔더라면 샤샤처럼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어려운 외국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을 하루 종일 교실에서 듣고 있는 샤샤를 생각하면 샤샤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엔 샤샤는 공부머리가 있는 친구입니다. 아마 자기 나라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즐겁게 친구들과 지내며 공부도 잘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오게 되면서 언어감각이 없는 샤샤는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겠지요. 한국어가 안되다 보니 학교생활이 쉽지가 않습니다. 모든 교과에서 손을 놓게 되고 결국 무기력증에 걸린 것 같아 보입니다. 모든 것에 의욕이 없어 보입니다. 얼굴도 어둡고 웃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초등학생의 얼굴이 보이질 않습니다.

2시 30분, 교사인 저와 통역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님까지  셋이서 상담을 시작합니다. 일반 학부모 상담과는 차이가 나지요. 교사인 저도 통역 선생님을 통해 전달되는 저의 의도가 잘 전달이 되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가뜩이나 러시아어는 한국어와 정말 다릅니다. 

지금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처음 전입했을 때는 통역하는 친구들을 오해하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이 친구가 잘했데. 잘못했데 물어봐 줘"라고 했는데 통역하는 친구가 너무 길게 말하는 거예요. 한국어는 말 몇 마디 안되는데 러시아어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길게 말하지 말고 간단히 물어봐" 해도 너무 길게 물어보고, 길게 대답하고 말입니다. 우리 한글이 과학적인 언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샤샤의 부모님과 샤샤의 학교에서의 문제적 행동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한국어가 안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태도의 문제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려는 의욕, 의지가 없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샤샤가 부모님의 말을 아예 듣지 않는다고 하시며 작년 4학년 때부터 손을 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교사인 제가 함께 샤샤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야 하는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선 필통을 보여드리며 연필 3자루씩 매일 깎아서 보내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니 운동을 매일 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태권도를 다녀도 좋고 부모님과 자전거를 타도 좋고 말입니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 친구들은 부모님의 태도가 바뀌면 친구들의 태도도 많은 변화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친구 샤샤도 내일부터 한 가지씩 작은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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