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식당 오픈합니다
보글보글. 작은 거품들이 표면 위로 숨 쉬듯 튀어 올라왔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누가 나 좀 알아줘요,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기이한 고요였다. 그녀의 팔은 무릎에 감은 채 턱을 밑으로 쳐져있는 상태로 쪼그려 앉아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 다니지 않을 조용한 가게 주방에서 달콤한 듯 새콤한 잼 향이 그 주변에 퍼졌지만 그녀의 코에는 닿지 않는 듯했다. 가스불의 작은 소음만 들릴 뿐, 이곳은 세상에서 동떨어져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손을 확 잡아끄는 느낌에 심장이 세게 펌프질 했다. 오늘도 그 꿈이야. 꿈이었지만 유난히 선명했다. 실제로 누가 나를 깨운 것 같았다. 끔찍한 악몽에서. 불 위에서 끓는 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 속에서 그녀는 허리를 피고 일어났다. 꿈에서 깨어나라고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두 번 쳤다. 탁탁. 얼얼하지 않을 정도의 뇌를 깨우기 적당한 세기였다. 잼은 마침 적당하게 끓어있었다. 스테인리스 냄비의 손잡이를 잡고 손목을 살짝 돌려 휘휘 저었다. 잼 속에서도 서로 엉킨 과일이 싸우고 있는 듯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달그락.
“누구세요?”
몸이 기억하는 시간, 숨도 생각도 움츠러드는 8시 정각. 벽시계가 딱 8시를 가리켰다.
“우편이요.”
시계를 봤다. 늘 그렇듯 8시였다. 집 주소는 그 이의 집, 정확히 말하면 그 이의 어머니의 집이었다. 희미하게 젖은 채 접힌 종이봉투의 모서리는 그녀의 손끝을 스쳐 떨어졌다.
“현숙아, 한국에 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길게 말 안 하마. 너도 집으로 들어와라. 아이들은 어찌할 거니, 이제 고등학생이다. 어미아비 없이 크는 아이들은 불쌍하지도 않니? 핸드폰 꺼놓지 말고 연락받아라.”
뒤엉킨 과일들이 풀어져 녹았을 그 시각, 그녀는 조용히 종이를 바닥으로 던졌다. 아니, 던졌다는 표현보다는 내려놓았다. 던질 힘도 없었다. 그럴 힘도, 욕망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잼 냄새가 뜨거운 공기와 함께 식어져 갔다. 어머니의 편지가 그녀의 머리를 미치게 만들었다. 분노, 좌절, 두려움 그 모든 감정을 느낄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저 죄책감 하나만 느끼면 충분했다. 그녀의 속눈썹은 미세하게 떨리다 눈을 감았고 그녀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자기감정에 못 이겨 해외로 도망쳐서 3년 만에 돌아온 엄마를 뭐라고 생각할까, 그녀는 겁이 났다. 아이들의 반응이 아닌 부끄러운 나 자신으로부터.
그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거야. 차도 앞 유리문을 통과해 식당 앞에 섰다. 햇볕의 내리쬠을 받는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늘이 첫날이었다. 후. 숨을 고르고 “CLOSED”의 팻말을 “OPEN”으로 뒤집고 어색하게 웃어보았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마저 포기하면 나는 끝까지 아이들을 버린 사람이 되었다.
“어서 오세요.”
바람도 안 부는데 문은 왜 그리 세게 닫혔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의 남자는 문 앞을 기웃거리다가 들어왔다.
“원래도 식당이었는데 주인이 바뀌었나요? 인테리어가 다르네요.”
남자의 시선이 가게 안을 훑었다. 그의 시선은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에 비친 크로와상을 비롯한 여러 빵들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네, 이번에 새로 오픈했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가게가 신기하다는 듯 남자는 한참을 카운터를 기웃거리다가 창가 바로 옆 2인 자리에 앉았다. 화창한 여름이었다. 바깥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햇살이 창을 통해 가게 안을 가만히 데우고 있었다.
“주문 준비 되시면 불러주세요.”
남자는 노트북을 꺼내며 말했다. 이 가게에서 첫 주문이었다.
“브런치 세트 주십시오. 버터 추가해 주시고요.”
첫 주문을 받은 그녀는 아침에 구운 크로와상을 잘라냈다. 사각사각. 그 위에 햄과 토마토, 양상추를 넣고 오늘 아침에 끓인 잼을 발라 덮었다. 버터도 잊지 않았다.
음식을 남자에게 주고 카운터로 돌아와 앉았다. 숨 쉬는 것조차 눅눅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밖에서는 차들이 쏜살같이 달렸고 식당에는 그 남자와 그녀 둘 뿐이었다.
달그락. 다시 누군가가 왔다.
“덥다 더워. 이러다 태양까지 녹아버리겠어 아주. 오픈했다던 가게가 여기에요? 잘 찾아왔구먼.”
또랑또랑하고 맑은 목소리의 소유자가 등장했다. 지금 여기서 유일하게 눅눅하지 않은 목소리랄까.
“아가씨,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아직 에어컨 킬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또 장사라는 게 참 키게 되더라고요.”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나에게 아가씨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가게 차린다는 게 식당이었구나. 언니 혼자 한다길래 기대 안 했는데 인테리어 너무 예쁘네요. 자두빛 조명인가, 오렌지 같기도 하고요. 빵은 직접 만든 거예요? 좀 있다가 가도 되죠? 커피 한 잔만 주세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다리를 꼬고 카운터와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했다. 그 무렵 창가에 앉은 남자가 그녀를 찾았다.
“잼이 독특하네요. 사과 맛도 나고 딸기 맛도 나고요. 맛있어서 그런데 따로 구매할 수는 없나요?”
은은한 장밋빛을 띄는 잼이 유난히 예뻐 보였다.
“외국물을 마시는 기분이에요. 처음 느껴보는 맛이랄까요.”
아차, 외국에서 배워온 잼이긴 하지. 그녀는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어머, 외국에서 요리를 배우긴 했습니다. 알아보다니 신기하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제가 작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이 맛과 똑같은 잼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역시나 맞았네요. 설마 이탈리아?”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그녀의 과거를 들킨 기분이었다. 얼른 넘어가고 싶었다. 누군가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더 기분 나쁜 건 그녀를 생각해 줬다는 점에서 생긴 안도감이었다. 내가 안도할 자격이 있나.
“곤란하시면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 일손 필요하시면 연락해주세요.”
그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명함 한 장을 남기고 가버렸다. 아가씨는 커피를 받은 후에도 가게 조명이 어쩌고 커피 맛이 어쩌고 빵 색깔이 어쩌고를 하나하나 얘기하고 갔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명함에 팔려 있었다. 테이블에 살포시 내려놓던 남자의 손이 잊히지 않았다. 나에게 왜 명함을 줬을까. 벌써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다. 미적지근한 더위 위에는 어두운 밤하늘이 펼쳐져있었다. 낮에 날아다니던 잠자리들은 보이지 않고 날씨에 맞는 민소매를 입은 여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녀는 자연스레 여자에게 시선이 끌렸고 여자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앞을 지나갔다.
<미소식당 오픈합니다> 연재 시작한 한겨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