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M의 기록

2025년 PM의 연말 회고

프로덕트 전략, 실행, 커뮤니케이션, 커리어, 관계에 대한 이야기

by 경민 Product Guy

올해 5월, 패션 플랫폼 회사의 CBP 조직에 합류했다. Customer Data Platform(CDP)를 담당하는 Product Manager로 합류했지만, 당시 회사에는 CDP를 전담하는 조직과 체계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CDP를 구축하자’는 목표만 존재했을 뿐, 왜 지금 필요한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어디까지를 CDP의 책임 범위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부재한 상태였다.


목표와 범위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문제 정의부터 하나씩 만들어가야 했다. 유관부서를 직접 찾아다니며 맥락을 맞추고, 동료들과 늦은 시간까지 논의를 반복하는 하반기를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개인화 된 유저 경험을 위한 Platform 제공을 위한, Data Activation Platform으로서의 과제들을 하나씩 수행해갔다.


그 과정에서 하나둘씩 의미 있는 성과가 쌓이기 시작했다. 3분기는 거의 인프라만 구축하다가 끝났는데, 이제는 전사 채널에서 공유할 수 있을 만큼의 비즈니스 결과물과 지표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물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아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처음 입사했을 때와 비교하면 상황은 분명 크게 나아졌다. 함께 일한 개발팀, 디자이너, TPM을 포함한 Tech Staff 분들의 도움이 무엇보다 컸다.


이 시기를 지나며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반성과 자기회고를 토대로 2025년에 얻은 다섯가지 배움에 대해서 공유해본다.



모든 관계는 노력의 산물이다


나는 완벽한 내향인이다. 스스로 만남을 만들거나 네트워크를 넓히는 일에는 늘 어려움을 느껴왔다. 그러다 전 직장에서 좋은 선배를 만났다. 업무 역량도 뛰어났지만, 회사 내 동아리 활동이나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형적인 ‘인싸’였다. 그 선배는 점심 자리를 만들 때마다 나를 자연스럽게 초대해 주변 동료들에게 소개해주었고, 그 작은 배려들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새로운 후임이 들어왔을 때 나도 비슷한 노력을 해보았다. 혼자 점심을 먹고 개인 시간을 보내는 편이지만, 함께 협업할 가능성이 있는 부서 사람들과 자리를 만들고 후임을 소개하려 애썼다. 몇 번 그런 시도를해보고 깨달은 점이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먼저 연락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또한, 모든 관계는 상호작용이며 아무런 Input 없이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 배움을 계속 실천하고 있다. 협업 부서 동료들이나 조언을 구하고 싶은 시니어·리더들에게 먼저 식사나 티타임을 요청한다. 관계로 일을 해결할 수 없지만, 관계가 좋으면 해결을 위한 소통이 조금 더 부드럽게 흘러간다는 느낌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돌이켜보면, 연말이 유난히 바빴던 탓에 주변에 충분히 연락하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한 해를 만들어가고 싶다.



커리어의 성장은 내 도메인을 넓히는 과정이다


입사 후 우연히 레벨과 직함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서야 내가 Sr. Specialist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카*24부터 지금까지 줄곧 팀 내 막내였다보니, 시니어라는 표현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커리어 성장은 단순히 역할이나 직함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과거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유퀴즈’에서 했던 이야기처럼,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단순히 시각적 결과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대중에게 어떻게 인식될지를 고민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작업을 설계했던 사례가 이런 케이스일 것이다.


이전에는 다음 분기에 해야 할 과제가 비교적 명확한 상황에서, 주어진 일을 잘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그 범위를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 26년도 제품 로드맵을 수립하기, 개별 태스크가 아니라 프로그램 단위로 실행되도록 관리하는 일, 그리고 프로덕트 기획 단계에서 비용과 ROI를 함께 고려한 정책을 세우는 등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 밖에 회사에서 진행하는 20P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존 도메인과 다른 도메인의 일들도 참여하고 배우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을 잘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많고, 판단을 놓친 순간들도 있었다. 다만 시도를 했기에 시간이 지나서야 무엇을 놓쳤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년에도 범위를 넓히면서, 진정한 의미의 커리어 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많이 부딪히고 깨지는 한해가 됐길 바란다.



좋은 프로덕트 전략은 프로덕트 마케팅을 포함해야 한다


그동안 정육각 런즈, 유튜브 쇼핑 등 여러 0 to 1 프로젝트에 참여해왔지만, 이번 플랫폼 신규 구축은 유독 난이도가 높게 느껴졌다. 무신사는 이미 Databricks, Amplitude와 같은 업계 표준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었다보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명확한 비교 대상이 존재했다. 우리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습이 필요하거나, 기존에 잘 세팅해 둔 툴을 버려야 하는 전환 비용이 분명히 존재했다.


고민과 관련해서 ‘Loved’라는 책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이 책은 프로덕트 마케팅을 다룬다. 읽는 내내 세그먼트, 포지셔닝 그리고 GTM(Go-To-Market)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프로덕트 전략에서 프로덕트 마케팅 요소가 결여되면, 아무리 기능을 잘 만들어도 사용자의 선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단순히 “우리 제품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미 자리 잡은 선택지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니즈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가를 명확히 해야 했다. 특히,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정의하는 것에 있어서, 단순 인구통계학적 속성이 아닌 문제 단위 집단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세그먼트 분석이 중요했다.


또한 아마존이 제품 개발 전에 PR 문서를 작성하듯, 이 제품이 실제로 출시되었을 때 어떤 언어로 사용자에게 설명될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해야 했다. 사용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그 필요에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각각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 이후로는 신규 기능을 만들기 전에,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될지를 먼저 그려본다.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기보다, 구체적인 사용 시나리오를 사용자와 함께 상상해보고, 대체 가능한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도 검토한다. 만약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보인다면, 왜 사용하지 않을지를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 3분기 동안의 뼈아픈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배움이었다.



실행을 잘한다는 것은 해상도를 높이는 과정이다


돌아보니 4분기에는 7개의 6-Pager와 9개의 PRD를 작성했다. 당연히 여러 과제들을 병렬로 관리해야 했다. 문서를 잘 쓰는 것도 좋지만,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 ‘실행’ 마스터 TPM님께 수 차례 점심 미팅을 통해 조언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놓치던 것들을 하나씩 보완해 나갔다.


‘실행’이라는 단어는 자칫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내가 느낀 실행을 잘한다는 것은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다. 결과물을 위해 A부터 Z까지의 단계를 그리고, 각 단계의 담당자는 누구인지, 작업 간 의존성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과제별 헬스체크와 무엇을 기준으로 완료를 판단할 것인지 등 서로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애매하게 남아 있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해상도가 올라가면,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실행이 안되는 일들을 보면, 각 유관부서에서 내 일이라고 생각 안하다가 뭉개지고 흐지부지 되거나, 뒤늦게 해당 조직에서 진행이 어려움을 파악하거나 애매하게 존재하던 문제들이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실행이 안된다.


내년에는 이런 업무들을 최대한 시스템화 시켜보고 싶다. 올해는 Jira 관리 자동화까지는 시도해봤다. 완성도 높은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반복되는 관리 비용을 줄이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직접 처리하는 것들이 많다. 내년에는 이 부분을 더 정리해서, 업무 관리와 시간 사용 측면에서 한 단계 더 효율적인 상태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서로 잘 알아들어야 한다


내가 속한 CBP(Core Business Partner) 조직은 무신사, 29CM 등 여러 플랫폼과 긴밀하게 협업하며 일을 풀어가야 하는 환경이다.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상황을 이해하고 방향을 얼라인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요구됐다.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얼마나 잘 말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내가 전달하고자 한 의도가 상대방에게 정확히 이해되고, 상대방의 역시 나에게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한다. 보통 커뮤니케이션이 틀어지는 경우는 서로 용어, 개념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거나, 사전 배경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잘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까지 고려해야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매주 진행 중인 과제와 주요 현황을 유관 부서에 메일로 공유한다. 이 작업은 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가끔씩이라도 구성원들이 읽어보면서 “지금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싱크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춰준다는 점에서 효과가 컸다.


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아키텍처 리뷰나 주요 미팅 전에 개발팀이 공유해 준 문서는최대한 이해하고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GPT를 개인 교사처럼 활용해, 낯선 용어나 문장을 쉽게 풀어 설명해달라고 요청하면 비유를 곁들여 이해를 도와준다. 내가 PRD 문서를 작성할 때도 “너가 개발자라고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하면, 스스로 놓친 부분이나 표현을 개발팀이 읽었을 때도 조금 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쉽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더 전략적이고, 더 실행도 잘하고, 더 소통도 잘하는 PM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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