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연탄값 만오천원

나 홀로 미운 오리 새끼

by 꼭두

사라진 연탄값 만오천원

나 홀로 미운 오리 새끼


낯선 시댁 설 풍경


시골에서 혼례 후, 시댁 시집살이 삼 년 만에 서울로 살림을 났어요.


가진 것 하나 없이 단둘이 몸만 올라와 시작한 객지 생활. 오직 남편 박봉으로 꾸려나가야 하는 참 어려운 신혼살림이었죠.


몇 년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 없는 시골 시댁에서 어린 시동생들과 지내시게 됐어요.


서울 올라온 이후부터 매월 남편 월급날마다 시댁에 생활비를 송금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 남편이 시어머니한테 따로 15,000원을 송금해 드렸어요. ‘연탄 300장 값입니다. 이 돈으로 겨울 따뜻하게 지내고 계시면, 설에 찾아뵐게요.’ 하는 편지와 함께요. 그때가 60년대 중반이었고 연탄 한 장에 5원 하던 시절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 사실을 몰랐어요. 남편이 제게는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251122「엄니」사라진연탄값9.jpg


설이 됐습니다.


고단한 귀향길을 따라 시댁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아주 이상합니다.


원래대로면 정류장에 딱 기다리고 계셨다가 아들과 며느리를 맞아주고, 손주들 껴안으며 기분이 날아가셔야 하는데 아예 마중도 안 나오셨고요. 집도 적막강산처럼 쓸쓸합니다.


아들이 절을 올리는데 우십니다. 놀란 저희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물었지만, 그저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리며 별일 없다고만 하십니다.


부엌에 가보니 장만한 설 먹을거리가 전혀 없습니다. 시동생, 시누이들 방을 살펴보니 새 옷도 눈에 보이지 않아요.


당시에는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이면 설비심, 추석비심이라 하여 아이마다 새 옷을 한 벌씩 해 입히고 온갖 먹거리를 미리 준비해 놓던 시절인데 말입니다.


분주히 밥을 지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으며 어머니께 다시 물었죠.


“아직 설비심 안 하셨나봐요?”


역시나 답이 없으십니다.


밝혀진 시댁 풍경의 속 사정


참 이상하다 싶었지만, 상을 치운 후 서둘러 읍내 장에 나갔습니다.


시동생, 시누이마다 지어 입힐 설비심 원단과 부속을 사고, 설 차례상 제수거리, 먹거리도 장만했어요. 옆집 아주머니가 바리바리 손마다 짐꾸러미를 들고 돌아오는 저를 담 너머로 보더니 말을 건넵니다.


“아이고, 아들 며느리 오니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구먼.”


제가 물었죠.


“혹시 저희 집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주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고개만 가로저으며 돌아서네요.


방에서 어머니와 남편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제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하던 말을 딱 멈추네요. 그러고는 둘 다 제 눈치를 보느라 머쓱해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방을 나와 남편에게 물어봐도 별말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뭔 일이 있긴 있구나’ 싶었지만, 당장 내일 시동생, 시누이들 입힐 설비심을 마무리하려면 바쁩니다.


당시 옷은 요즘처럼 사서 입기만 하면 되는 옷이 아니에요. 시동생들 옷은 기장도 손 보고 단춧구멍도 만들어 달아야 하고, 시누이들 옷은 새로 지어야 하고, 손이 많이 갑니다.


다음 날. 설 차례를 마치고 조용히 혼자 옆집에 가서, 어제저녁 잠깐 말을 나누었던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말을 해 주세요. 도대체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맏며느리인 제가 알아아죠.”


그제서야 설명을 들었습니다.


며느리는 미운 오리 새끼?


“아들이 서울에서 어렵게 돈을 만들어 보내줬다며? 그런데 그 돈으로 아들이 사라는 연탄은 안 사고, 설 준비도 안 하고, 돈을 더 불려볼 요량으로 물건을 사겠다며 읍내 장에 나갔다가, 그만 그 돈을 송두리째 소매치기당한 거여. 그 일 때문에 완전 초상집인 된 거지.”


당시 어머니는 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셨어요. 아들이 보내준 돈으로 나름 투자를 하신 건데 그만 말짱 꽝이 되고 만 거죠.


무엇보다 아들이 힘들게 보내준, 당시로서는 제법 큰 돈을 통째로 잃어버린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에 상실감이 겹치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으셨고, 기어이 병까지 얻어 몇 날을 앓아누으셨다죠.


아줌마가 말을 보탭니다.


“그 돈을 도둑맞고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지내던 어머니가 이제 생기가 나셨어. 아들 며느리 보고 살아났으니 역시 자식이 최고구먼.”


그리고는 신신당부를 합니다.


“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 행여라도 아는 체하지 말어. 그럼 내가 아주 낭패를 보게 되는겨.”


이제야 모든 걸 알게 됐지만 저는 시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영 입맛이 씁니다. 바로 서운함 때문이죠.


‘왜 이 일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몰랐고, 알고도 모른 체해야 하는 걸까? 내가 과연 이 집 식구가 맞나?’


서운함을 곱씹다 보니, 사지 못했다는 연탄이 엉뚱하게 제 속에서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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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다 알고 묻는 거니 이 일의 시작부터 제대로 얘기해 달라고.


그제서야 주섬주섬 설명을 해주는 남편.


“잘못하면 엄니 진짜로 큰일 날 뻔하셨어.” 하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네요.


저한테 말도 없이 송금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시작부터 끝까지 이 모든 걸 저한테는 계속 숨기려 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이 말이죠.


진중하고 무뚝뚝한 남편이기에 평소 남편에 맞서서 큰 소리 못 내고 살아온 저였지만, 이때는 제 서운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다른 집 식구인 거죠? 어머니가 항상 최우선인 당신에게, 아내는 집안일 상의할 상대도 아닌 거구요? 이건 뭐 나 홀로 미운 오리 새끼도 아니고.”


별로 들어본 적 없는 제 뾰족한 말에, 남편 당황했습니다. 허둥지둥 손을 가로저으며 전혀 아니랍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있으면 미리 상의하겠다고도 하고요.


돌이켜보면, 남편과 긴 삶의 초입에 서운함을 넘어 어쩌면 배신감까지 느껴지던 기억입니다. 당시 시댁에서 많은 며느리들이 겪어야 했던 그 시절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요.


그런데... 과연 그 뒤로는 제가 기대했던 만큼 모든 일을 저와 상의했던가?


그때의 서운함도, 그 뒤의 기억도, 지금은 가물가물하네요.


다시 만나는 날, 조목조목 한번 따져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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