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천렵
'천렵', 서울에서도 할 수 있다고?
남편과 함께 서울에 올라온 지 십여 년 만에, 어느덧 우리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 셋을 키우며 살던 시절입니다.
어느 정도 살만해지니 때때로 옛날 생각이 납니다.
고향에서는 젊은 처녀총각이나 가족들에게 최고의 피서가 '천렵'이죠.
공주 금강 지류의 맑은 개천에서 신나게 물놀이하다 보면 배가 탁 고파져요. 그때 투망으로 잡은 민물고기에 온갖 야채를 때려 넣어 끓여 먹는 매운탕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을 만큼 끝내줍니다.
햇빛 쨍쨍 뜨거운 여름 한낮. 맑은 물 헤치기. 바위 위 걸터 모여, 물소리 들으며 땀과 함께 먹는 시원 얼큰한 매운탕. 다시 물살을 향해 몸 던지기. 모든 장면을 모아놓으면, 어지간한 TV 예능 뺨 때리는 '내 고향 천렵'이 완성됩니다.
그렇게 하루의 더위를 잊는 게 피서 맞죠?
70년대 초반의 무척 더운 여름날 저녁. 평소 제 남편을 형님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내는 아래채 부부가 우리 안채를 두드립니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어깨에 웬 투망까지 척 걸치고는 말하길.
"형님, 내일 천렵 갑시다."
안 그래도 옛 생각이 간절했던 참인데, 남편도 한 마음인 게 확실합니다.
"그거 좋지!"
'산동네' 형님, 아우의 의기투합
홍은동 언덕 꼭대기에 우리 집을 짓고, 이어서 안채를 더 크게 지은 다음, 살던 곳은 사랑채로 삼아 세를 주고 있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젊은 선남선녀 부부입니다.
우리 '서울 마을'.
주민끼리는 '우리 산동네'라고 부르는 서울의 묘한 곳입니다. 거의 모두가 시골에서 올라온 청춘 부부와 중년 가족들이죠. 황송하게도, 그중에서 우리 집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원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집이 언덕에서도 가장 높은 곳의 '홍은동 산1번지'라는 문패를 가지고 있는 것도 한몫해 줬답니다. 다 떠나서 위치가 제일 높으니까요.
실향민까지는 아니고 다들 저마다의 고향이 있지만,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나도 성공해 보겠노라고, 타향살이 설움쯤 기꺼이 감수하며 나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전에는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 살던 것도 비슷하고, 상경 사연도 비슷하고, 살고 있는 모습도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묘하게 끈끈한 마음으로 묶여 있는 곳.
저마다 택지 개발이라 이름 붙은 언덕배기 땅을 한 뼘씩 사서, 서로의 집짓기 품앗이를 기꺼이 나눈 '산동네 사람들'.
「홍은동 산1번지」 바로가기
그 사랑채 부부 역시 서글서글한 인상의 호남(好男) 미녀(美女) 한 쌍인데, 신랑은 늘 우리 남편을 마치 친형 대하듯 '형님, 형님' 하며 따르고, 색시는 저를 친정 언니라도 만난 듯 '언니, 언니' 하며 살가워하면, 우리도 '그려, 아우님', '반가워, 동생'으로 화답하는 그런 사이.
천렵은 개뿔이고 끼니조차 못 챙길 위기 상황
다음 날. 그 젊은 아우 부부를 길잡이 세우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는 걷고, 막내는 업은 채, 이제는 서울에 우리 집도 있는 어엿한 서울 시민 가족의 한여름 서울 천렵을 시작합니다.
서울에서는 '바캉스'라고 부른다는 두 가족 연합 피서.
서울 바로 옆 경기 남한강 어디쯤. 제법 큰 하천에 도착했는데,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과연 물 반 고기 반. 정말 고기떼가 새카맣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죠? 아이들은 한창 물놀이에 정신이 없는데, 두 남자의 고기잡이는 영 꽝이더군요.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난 후의 천렵이라 그런 거라고 핑계를 대긴 하는데, 솜씨가 녹슬었나 봐요.
두 남자가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고기떼가 순식간에 도망가 버려요. 두 남자가 투망을 들고 아주 한참동안 땀을 흘렸는데, 결국 체면이고 뭐고 항복을 합니다. 이를 어쩌나... 세상에나, 단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벌써 점심때는 훌쩍 지났고,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옆에서는 삼겹살 구워 먹는 사람들, 매운탕 끓여 먹는 사람들의 맛있는 소리와 내음이 진동을 하고요.
가지고 간 건 큼직한 솥과 쌀, 산더미 같은 채소와 양념뿐. 주변엔 식당 하나 없고, 난감한 심정으로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데,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고기 사세요~"
오래 살거라, 야속한 놈들
아, 글쎄 그 마을 청년들이 민물고기를 잡아 깡통에 넣고 다니며 팔고 있는 거예요. 천렵은 개뿔이고, 어리바리한 일곱 천렵꾼에게 닥쳤던 끼니 걱정의 위기가 극적으로 물러가는 순간입니다.
펄떡펄떡거리는 물고기 떼를 보니 어찌나 반가운지요. 이제 살았습니다.
즉시 넉넉하게 몇 깡통 사서 솥에 들이부었죠. 감자를 시작으로 온갖 채소를 마구잡이로 썰어 넣고, 온갖 양념도 넉넉히 풀어, 솥 한가득 민물매운탕을 넘치도록 끓였습니다.
밥도 잔뜩 지었어요. 늦은 점심이었기에 더욱 맛있을 수밖에 없는 한낮의 푸짐한 강변 밥상을 두 가족이 즐깁니다. 아무리 오랜만의 천렵이더라도 제 손맛은 녹슬지 않았군요. 오늘은 남편들보다 아내들이 빛나는 날입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얼마 만에 두 가족이 그렇게 신나는 여름 천렵을 즐기고 돌아서려는데, 아래채 남자가 다시 뒤로 돌더니 찜찜한 표정으로 천변 물을 바라보며 그러네요.
"형님, 저 새카만 고기떼 보세요. 우리 다시 잡아봅시다."
하지만, 남편의 단호한 한마디.
"우리 같은 촌놈들한테 잡힐 고기가 아니다. 가자!"
그래도 미련이 남는 듯, 한참이나 강 속을 들여다보며 입맛을 다시던 아우님의 마무리.
"서울은 사람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물고기도 깍쟁이네!"
참 섭섭한 도시 고기떼 맞습니다.
서울놈 촌놈 구별 말고 좀 잡혀줬으면 더 좋았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