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점을 보면 사람이 아니다!"
산속 암자의 황당한 무녀
우리 집 첫 대입 수험생인 큰딸의 대학입시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시험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조바심과 궁금증이 더해가던 중, 아주 용하다는 점장이 소문을 듣게 됐죠. 그런 입소문이 다 그렇듯, 깊은 산 속에 혼자 살고 있는데 신통력이 아주 대단하답니다.
작심하고 찾아 나섰죠.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고, 간신히 사람 한 명 지나갈 만한 산길을 따라 헤매인 끝에, 드디어 그 암자를 찾았습니다.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이 점장이가 나타나지를 않는 거예요.
한참 만에 점장이가 휘청거리며 걸어 나오는데 정말 모습이 참혹해요. 머리는 산발을 하고 낯빛도 거무튀튀하게 그늘져 있더라구요.
어디 편찮으신 거냐고 물었더니, 아 글쎄 이 점장이가 통곡을 하네요. 자기 아들이 서울대 졸업반인데 여름방학에 동해바다 피서 가서 수영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는 겁니다. 너무 원통해서 계절이 바뀌도록 점을 봐주지 못하고 있었다네요.
듣자마자 후회했습니다.
참 딱하고 슬픈 이야기이긴 한데, 솔직히 그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드는 생각이, 생때같은 자기 자식 죽는 것도 어찌 못 하는 사람한테 내가 뭘 물어보겠다고 여기까지 이렇게 힘들게 왔을까 싶으면서, ‘내가 한참 모자란 사람이로다.’ 하며 자책했어요.
남편이 중하냐? 딸이 중하냐?
그래도 이리 힘들게 왔으니 물어나 보고 가자 싶어서, 딸 대학 운 때문에 왔다고 했죠. 대뜸 출생일자를 묻더군요. 딸 생년월일을 말해주니 "그거 말고 엄마, 아빠 출생일자부터 말해!" 합니다. 딸 입시만 물어보러 온 거다 했더니 부모운을 먼저 훑어야 딸 점괘가 나온대요.
그래서 일러주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하기를, 아빠가 내년에 아주 흉악한 운이래요. 운명이 걸려 있답니다. 하루빨리 좋은 날 잡아 액막이굿을 해야만 그 악운을 피할 수 있다나요.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더군요. “아니 저는, 딸 입시 운을 보러 왔으니 딸 이야기만 해주세요.“ 몇 번을 거듭 말해봐도 도리어 돌아오는 건 호통 소리뿐입니다.
"당신 남편 명줄이 걸린 문제가 급해? 딸 대학 가는 게 급해?"
어이가 터지면서 저절로 드는 생각.
'자기 아들 죽는 것도 못 막는 여자가 남의 남편 죽음을 막아준다고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눈먼 돈으로 잊어보겠다는 산골 늙은 무녀의 뻔한 장사수완 아니에요?'
속으로만 그리 따졌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소리 내서 싸울 뻔했다니까요.
'앞뒤 대충 엮어낸 뻔한 점 따위에 내가 휘둘리고 있다니, 하긴... 뻔뻔한 선무당이나 얼빠진 모지리나 다 그게 그거다.'
밀려오는 후회를 누르며 단호하게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온 것도 억울한 데다, 느닷없는 저주를 들은 것 같아 영 기분도 안 좋아 그런지 선뜻 발걸음이 안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헛일 삼아 큰 소리로 말했어요. 내가 내 목소리를 들어도 제법 짜증이 묻어 있네요.
"그래서 도대체! 딸 대학은 잘 간대요?"
어라, 제 짜증은 아랑곳 않고 이번엔 저주가 아니고 덕담을?
"아주 대운이 뻗었어.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은 다 갈 수 있지!"
암자를 내려오는데 딸이 대운 들었다는 말도 크게 신나지 않고, 내 남편 이야기, 정확하게는 내 남편을 향한 저주가 어찌나 마음 상하던지 그 긴 산길을 내려오며 계속 욕만 했답니다.
"내가 다시 점을 보면 사람이 아니다!"
제 머리 못 깎는 중, 제 운수 모르는 점장이
하지만 미련한 자들은 대부분 그 다짐을 지키지 않는다죠? 그걸 끊어내지 못하고, 바로 이어진 아들 입시 때 그 산속의 그 늙은 무녀를 또 찾아갔으니까요. '그래도 딸 대학 운은 맞춘 거니까'라는 알리바이를 만들면서.
저를 기억하더군요. 개과천선을 한 걸까? 이번엔 한술 더 뜨네요.
"우리나라에서 대학 가는 게 아까운 천지대운이야. 전 세계 어디든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맘대로 고르라 해!"
그해 입시. 아들은 시험을 제대로 망쳤고, 남편은 아예 대입 원서도 못 쓰게 했어요. 전 세계에서 제일 훌륭하다는 재수학원에 입학했죠. 종로학원 수석입학.
'그 뒤로 다시는 점집을 찾지 않았어요.'
"참말이지?" 하고 누가 지금 제게 묻는다면... 휴, 사실은 또 갔어요. 그것도 두 번이나. 부끄럽네요.
이번엔 명승 사찰의 큰 스님이었어요. 또 아들 때문이었죠. '진짜 마지막'은 아주 오래 뒤의 일인데 그 암자의 늙은 무녀는 이미 죽고 없더군요. 더 용하다는 또 다른 무녀를 찾아간 적이 있죠. 살면서 처음으로 저 때문에.
점집을 찾아다니던 저를 떠올려보면 참 지우고 싶은 기억이긴 한데... 어쩌다 생각해보면 그 점장이마다 영 못 맞춘 건 아니다 싶기도 하죠.
결국 아이들 학교도 일도 잘 되기는 했고, 남편은... 훗날의 일이긴 하지만 불과 환갑도 못 채운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진단을 받더니, 이번엔 의사가 말해준 여명을 다 하고는 너무 급하게 저를 떠나갔답니다.
그렇지만요. 혹 아직도 점집을 찾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면요. 그거 하지 마세요.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을 들을 때가 훨 더 많아요. 그들만의 영업비밀이겠죠.
열 개 말해서 한 개 맞추는 게 용한 것도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