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불행의 시작, 산 장어
큰딸 사돈댁이 충청도 예산입니다.
그곳 예당저수지의 장어가 유명하다고 하죠. 어느 날, 마대자루 한가득 장어를 담아 서울 우리 집으로 보내왔어요. 멍게 한 자루도 함께요.
귀하고 몸에 좋은 거라고 특별히 보내주신 건데, 문제는 제가 산 장어를 처음 봤다는 거죠. 저도 남편도 식당에서 누가 해준 것만 먹어봤지, 산 장어를 요리해 본 경험도 전혀 없었고요.
신경 써서 보내주신 좋은 거라니 잘 해 먹고 감사 인사도 드려야 하는데... 도대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걱정만 한시름이었답니다.
그런데 제 고민을 들은 동네 지인이 별걱정을 다 한다며 마치 비법을 가르쳐준다는 듯 제게 말하길.
“큰 솥에 장어를 넣고 푹 고으세요. 버드나무 가지를 가지고 시계방향으로 젓다 보면 곱게 가루처럼 되는데 그걸 면 보자기로 짜서 국물을 마시면 남자한테 최고의 보약입니다. 참 쉽죠?”
그럴듯하더라구요. 구세주 같았어요.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게 불행과 부부싸움의 시작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지인 참 야속한 양반입니다. 그렇게 잘 알면 지가 해주던가, 아님 전문가한테 맡기라고 했어야죠.
어이없는 남편
운 좋게 버드나무를 찾았고 즉시 실한 가지로 골라 몇 개 꺾어왔어요. 큰 대야에 장어 한 자루를 쏟았습니다. 용감했죠. 그리고 곧바로 혼비백산했습니다.
크고 힘 좋은 장어 50여 마리가 대야에 담기기는커녕, 온 집안을 튀어다니며 휘젓는 거예요. 급기야 부엌을 넘고 거실을 지나 안방까지...
여기도 저기도 시커먼 장어가 꿈틀꿈틀거리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도저히 수습할 엄두가 나질 않네요.
넋을 놓고 한참을 질려있는데 마침 퇴근한 남편이 집에 들어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여보, 이거... 이거... 이것 좀 어떻게 해줘요”
그런데 이 광경을 본 남편, 수습해 주기는커녕 “으악, 이게 뭐야”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냥 돌아서서 나가버리네요. 어이가 없더군요.
장어 전쟁은 냉전으로
벽에 몸을 붙인 채 오돌오돌 떨다가 정신을 좀 차려보니, 이 난리를 수습할 사람은 이제 나뿐이라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속이 깊은 큰 들통 두 개를 가져다 놓은 후, 면장갑과 고무장갑을 두 겹으로 끼고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부엌과 거실 구석구석 한 마리 한 마리씩 잡아가며 통 속으로 밀어 넣으면 또 튀어나오고. 다시 잡아서 또 욱여넣고.
미끌미끌해서 잘 잡히기를 하나, 정말 죽을 맛이었죠. 안방 장롱 밑까지 기어들어 간 놈들을 그 망할 버드나무 가지로 쑤셔가며 꺼내서 잡아넣고.
족히 두세 시간은 넘는 전쟁을 치르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들통을 누른 채 있다 보니 슬슬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어찌나 남편이 야속하던지요.
분을 삭이고 있는데 술에 완전히 푹 젖은 얼굴로 남편이 돌아옵니다. 불평과 잔소리 안 듣겠다고 아예 작정하고 수를 쓰는구나 싶더군요.
다음 날 아침, 어지간히 술이 과했던지 배를 감싸 쥐고 힘들어하는 남편을 향해 폭풍 잔소리를 쏟아냈습니다. 평생 큰소리만 치지, 이럴 때 남편 노릇 남자 노릇 하나 해주는 게 없다고. 어찌 그걸 나 몰라라 할 수가 있냐고.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남편도 같이 소리를 칩니다. 나도 그건 해본 적 없다면서, 왜 그렇게 미련한 짓을 했냐고.
결국 남편은 콩나물국 해장은커녕 쓰린 배를 움켜쥔 채 빈 속에 출근을 했고, 제 화와 야속함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죠. 그렇게 장어 때문에 시작된 우리 부부의 냉전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래 갔습니다.
산 장어와 전쟁 금지
그리고 한 달쯤 후, 남편과 저는 함께 손을 잡고 그 들통을 드디어 불 위에 올렸습니다. 그동안 가끔 들여다보면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려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 들통을 말이죠.
한참을 끓이면서 그 빌어먹을 버드나무 가지로, 열심히 시계방향으로 저었지만, 가루가 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더군요. 역시 무책임한 사람의 근본 없는 비법이 맞았어요. 비린내는 또 어찌나 심한지.
그래도 어쩝니까. 어찌어찌 죽 비슷하게 만든 후 하라는 대로 면보에 짰죠. “여깄슈, 남자 최고의 보약” 하고 남편에게 바쳤습니다. 나중에 남편 왈, “그거 며칠에 걸쳐 다 먹느라고 나 정말 힘들었어.”
남편도 저도 한동안 장어라면 보이기만 해도 도망을 쳐야 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고 비싸서 못 먹는 그 귀한 장어를 말이죠. 오히려 함께 보내온 멍게는 맛있게 먹었어요.
저와 남편의 고향 충청도 공주는 유통 구조 때문에 바다 해산물이 잘 안 들어와요. 그러다 보니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뒤로 멍게에는 제대로 재미를 붙였답니다.
아무튼 여러분, 산 장어는 직접 요리하겠다고 덤비지 마세요. 불행해집니다.
큰 부부싸움을 할지도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