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 바라기'에서 '엄마 껌딱지'로
종가(宗家), 종녀(宗女)를 만나다
대학을 갓 졸업하면서, 고등학교 교사 발령과 함께 우리 집의 새 식구가 된 며느리.
몇 달을 함께 살다가 며느리의 학교 근처로 신혼집을 꾸려줬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를 가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더군요.
‘우리 집에 새 식구가 또 생기는구나.’
우리 집이 커져 간다는 설렘 속에, 새 식구 또 볼 날만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며느리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제가 과연 직장 생활과 육아, 둘 다를 잘할 수 있을까요?"
안심시켜야죠.
"별 걱정을 다 한다. 내가 있잖니. 할아버지도 있고, 신랑도 있고, 길은 처음부터 있었다. 벌써부터 그런 신경 쓰지 말고 넌 학교생활과 태교만 잘하고 지내면 된다."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요즘처럼 조리원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고, 산후조리는 친정에서 하기로 했어요.
저도 기뻤지만, 우리 가문에 '종녀'가 태어났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제 남편 때문이었는지, 아들이 병원 밖 첫 잠자리는 우리 집에서 하겠다며 며느리와 아기를 데리고 오더군요. 마치 개선장군처럼 기세등등하게.
혹시 이것도 일부 지역의 말로 생각하실까 싶어 덧붙입니다. 종녀(宗女)는 종가의 맏딸입니다. 맏며느리인 종부(宗婦)가 없는 경우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종가의 상징이죠. 흔히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서희'를 많이 떠올리시죠.
출산휴가가 끝난 며느리는 이제 출근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강동구, 아이들 집은 며느리 학교가 있는 은평구.
아기를 자기들 집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고, 우리 집에서 키워야 하는 상황인데, 저도 남편도 각자의 사업장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지라 종일 신생아만 볼 수는 없는 노릇.
온갖 궁리 끝에 동네를 온통 수소문해서 훌륭하다고 소문난 유모를 구했어요. 며느리는 울면서 아기를 두고 집으로 갔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주말 부모가 됐어요. 주중에는, 낮에는 유모가 아이를 돌보고,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 유모 집으로 다시 떠날 때까지는 제 몫입니다. 다들 아시죠? 신생아와 함께 자는 게 육아의 가장 큰 노동이라는 거.
엄마를 밀어내는 손녀, 눈물 속 돌잔치
주말 부모에게 큰 위기가 닥쳤어요. 아기가 엄마 품을 거부하는 겁니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잠시라도 멈추는 법을 잊어버리는 아기였는데, 엄마가 안기만 하면 밀어내면서 울음을 터트리네요.
밤새 잠 못 자는 아기도 울고, 속상한 며느리도 함께 밤새워 울고... 그러다가 결국 며느리 입에서 비명이 나왔습니다.
"이러다 엄마 자리 뺏기겠어요. 제가 교사를 그만둬야 할까요?"
그저 해보는 하소연이 아닙니다. '엄마가 먼저'라는 며느리, 진지합니다.
하지만 안 될 말이죠.
"누가 키우든 네 새끼다. 네 새끼도 네 엄마 자리도 어디 안 도망간다. 우리 독하게 더 해보자."
위로하면서 또 함께 각오를 다졌습니다.
각오는 비장했지만, 우리의 그 다짐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대형 이벤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것도 연속으로.
보통의 경우라면 흐뭇한 웃음이 끊일 새 없어야 할 ‘백일잔치’와 ‘돌잔치’가 연달아 이어졌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흥겹고 화목한 잔치가 아니라 비정한 드라마였어요.
백일잔치 하는 내내, 어미가 아이를 제대로 한번 안아보지도 못했으니 말 다한 거죠. 백일잔치를 아이 울음잔치로 끝낼 수는 없다 보니, 결국 아이 엄마 자리는 온전히 유모가 차지했어요. 백일잔치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엄마 대역의 유모 주연'으로 마쳤습니다.
속사정 잘 모르는 어떤 사람은 그랬대요. 지랄맞은 딸아이가 엄마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그 곱던 엄마가 불과 백일만에 저렇게 나이를 먹어버렸냐고. 엄마가 대역배우라는 건 상상 못 한 거죠.
백일잔치의 슬픈 기억을 며느리가 채 잊기도 전에 '돌'이 됐어요. 당시에 돌잔치는 요즘처럼 가족 모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큰 잔치였습니다.
더구나 우리 가문 종녀의 돌잔치라며 남편은 아들을 시켜 제법 괜찮다는 호텔 연회장까지 예약했어요.
온갖 방법을 다해 봤지만... 결국 그날의 돌잔치에서도... 아이 엄마 자리는 유모 차지였습니다.
식구 판독 못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유난히 낯가림까지 심한 아이가, 자기 엄마를 자기한테서 떼어놓으려 한다고 생각하는지, 유모 품에 찰싹 붙어 아예 떨어지지도 않더군요.
손녀의 선택은 할머니 시집살이
형편이 그런데... 속상한 엄마 마음을 헤아려서 좀 조용히 해주면 좋으련만, 유모는 온 동네에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아이에게 엄마는 자기뿐이라면서. 늘 자기만 찾는다면서. 요즘 늦둥이 딸 때문에 너무 행복하다나요. 지금 생각해도 참... 주책맞고 입 가벼운 여편네 같으니라고.
아, 물론 그때도 지금도 우리와 유모 사이는 아주 좋아요. 다만 그때, 적당히 좀 하라는 말을 유모에게 하진 못했답니다. 그만큼 우리 손녀에게 잘하는 거니까. 그래서 늘 고마웠으니까.
유모의 웃음은 그칠 줄 모르는 가운데, 며느리는 늘 울상이고, 저는 중간에서 양쪽으로 좋은 말만 하지만 속만 태우며 지내기를 한참. 아니, 이럴 수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이가 두 살이 되면서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하더니, 세 살이 되면서 유모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며느리와 유모의 상황이 완전히 거꾸로 뒤집혔어요.
낮에 유모와 있으면서도 종일 엄마만 기다리며 유모에게 엄마 타령을 하고, 나중에는 숫제 유모 품을 거부하는 게 점점 심해져서, 결국 유치원에 일찍 보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번엔 유모가 아이와 눈물의 이별을 하게 됐어요. 전혀 예상 못 하다가 결국 핏줄에게 패배하면서 어쩌면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꼈을지도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히루 아침에 '유모 바라기'에서 '엄마 껌딱지'로 변신한 아기 손녀.
이제는 엄마 없이는 한시도 못사는 아이가 숨만 쉬면 그저 엄마만 찾으니, 며느리가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어구, 내 새끼. 오냐, 내 새끼." 소리를 입에 달고 삽니다.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보기는 좋은데...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며느리도 없이, 유모도 없이, 덕분에 종일 그 아이 키우는 시간이 몇 배가 된 사람은 정작 저였습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말도 할 수 없는 거꾸로 시집살이. "아이가 엄마를 좋아해서 내가 힘들어 죽겠다." 이게 뭔 말인지 누가 알아듣겠어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기억하지만, 며느리 일터 지켜주느라 너무 힘들게 겪어야 했던 첫 손녀살이였답니다.
한편으로 참 신기했죠. 결국에는 제 핏줄 찾아가는 모습이 말이죠. 한 마디 해줬습니다.
"거 봐라, 네 새끼도 네 엄마 자리도 어디 안 도망간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