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접 놋그릇

우리 종가 재산1호

by 꼭두

시접 놋그릇

우리 종가 재산 1호


점점 사라져가는 옛 시골 살림


저는 오래되거나 유행이 지나 안 쓰게 된 물건을 잘 버리는 성격입니다.


지나간 사진조차 잘 챙기는 편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것 중, 옛날 물건이나 기록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시골 살림이 희귀해진 게 온전히 제 책임만은 아니에요.


충청도 종가 맏며느리로 시집살이 3년 만에 서울로 올라올 때만 해도, 제가 친정과 시댁에서 쓰던 살림들을 제법 챙겨왔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장손인지라 제사도 함께 모셔 와야 했기에, 제사 살림이 꽤 따라오게 됐구요.


안 쓰는 물건을 잘 버리는 성격이라고는 해도, 그 시골 살림의 흔적들을 꽤 오래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듬잇돌과 맷돌 등, 서울에서는 거의 쓰지 않으면서도 엄청나게 무거운 그것들을, 여러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늘 이고 지고 다녔죠.


251112「엄니」시접놋그릇1.jpg


지키려는 어미, 버리려는 자식


그런데 아들과 딸들이 크면서 옛날 물건 간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더군요.


나만 잘 버리는 줄 알았는데 자식들은 제대로 한술 더 뜨더라구요. 아이들이 크고 나더니, 이사를 할 때마다 나중에 보면 뭔가 옛 살림들이 사라지고 없어요.


처음 몇 번은 자식들이 저하고 버리자, 안된다, 말씨름을 제법 했는데, 나중에는 말도 없이 버리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그나마 몇 점 안 되는 옛 물건들이 남아나질 않네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같이 웃기도 했지만, 뭔가 없어질 때마다 마음 한켠이 허전하긴 했죠.


남편을 먼저 보내고,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아들 내외와 집을 합쳐 제법 큰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이사 며칠 전, 제가 친정아버지 제사 때문에 고향에 다녀왔는데 이미 이삿짐을 다 꾸려놓았더군요.


이사를 오고 새집 구경, 아들이 새롭게 꾸며준 내 방 구경에 정신을 쏟다가 뒤늦게 살림들을 살피는데, 아, 이번엔 뭔가 많이 허전합니다.


다듬잇돌도 없고, 맷돌도 없고... 그나마 남아있던 묵은 살림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잘했다, 아가야"


‘얘들이 혹시?’ 하면서 허겁지겁 제사 살림을 찾았습니다.


아들 제 놈도 대를 이을 장손이라 그랬는지, 다행스럽게도 제사 살림은 빠짐없이 잘 챙겨서 가지고 왔더군요. 그제서야 안도의 숨통이 트였습니다.


제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제일 중요하게 찾은 건, 놋그릇 한 개였습니다.


우리 종가에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시접 놋그릇’. 제사상 차릴 때 숟가락과 젓가락을 담아놓는 시접 그릇 아시죠?


시어머니께서 생전에 제게 유언처럼 신신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종가 재산 1호인 시접 그릇이다. 보기엔 그저 낡아버린 옛날 그릇 같아도, 인간문화재가 손으로 두드려 만든 방짜유기야. 다 버려도 이 시접 놋그릇만은 꼭 간직해야 한다."


아마도 버리기 좋아하는 며느리가 불안해서 특별히 부탁하신 말씀이었겠죠.


"어머니. 우리 종가 시접 놋그릇 잘 있습니다. 지금도 제사 때마다 상에 올리며 어머니 모습과 그 말씀 꼭 떠올리고 있답니다."


"잘했다, 아가야".


251112「엄니」시접놋그릇4.jpg 오늘도 우리 장손이 곱게 지키고 있는 우리 종가 재산 1호 시접 놋그릇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