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댄스

남편의 유산 두 번째

by 꼭두

김지미 댄스

남편의 유산 두 번째


천막극장 안 '딴 세상', 선녀 같았던 '김지미 댄스'


시집을 가고, 이제는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정신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우리 마을에 '가설극장'이 찾아왔습니다.


그 시절에 극장이란 건 적어도 읍내에는 나가야 볼 수 있었고, 그 대신에 작고 외진 촌마을까지 순회하는 천막 가설극장이란 게 있었답니다.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가설극장이 들어서요. 예고도 없이 천막극장 공사가 시작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죠.


이틀 정도면 천막극장이 완성돼요.


공사하는 동안, 나팔수가 길목마다 북을 치고 다니면서 상영될 영화를 광고하는데, 세상에나... 이번엔 자그만치 최무룡과 김지미가 나오는 영화네요. 당시에 막 전성기를 시작한 우리나라 최고의 두 인기배우였죠.


드디어 천막극장이 열리던 날. 저도 남편과 함께 자리에 앉았습니다. 무려 60여 년 전의 일이라, 하도 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아들의 도움을 받아 한참을 찾아보니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라는 영화였네요.


정말 화려한 영화였어요.


전 가 본 적도 없는 서울의 파고다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김지미. 역시 실제로는 한번 구경해 본 적도 없는 ‘바’라는 곳에서 높은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


스크린 속 모든 것들이 제게는 완전 '딴 세상'이더라구요.


지금 영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에도 영화 줄거리보다는 화려한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면서 가슴이 설레이고 황홀했던 기억만 떠오릅니다.


가장 제 가슴을 뛰게 했던 장면이 나옵니다.


김지미가 파티장에서 댄스를 추는 장면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춤이었어요. 잘생긴 남자와 어여쁜 여자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기는데, 요즘 말로 정말 끝내주더군요.


사람이 아닌 듯 보였어요. 김지미의 손짓과 발짓은 마치 도시에 나타난 선녀 같았죠. 영화는 끝났고, 전 반쯤은 넋이 나간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조금 전 구경한 '딴 세상'과, 강렬했던 '김지미 댄스'의 기억만을 남긴 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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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당이 말해 준 '제 명줄 지키는 방법'


영화는 딴 세상일 뿐, 제 세월은 속절없이 홀러갔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삶에 지쳐갔고,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한없는 약골이 되고 말았죠. 특히 멀미 고생이 아주 심했어요.


차를 타면 차멀미, 배를 타면 배멀미, 어쩌다 비행기를 타도 비행기멀미. 하다못해 길을 오래 걸어도 길멀미를 하더니, 나중에는 바람만 심하게 불어도 바람멀미와 어지럼증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답니다.


서울이라는 객지에 살면서, 여행은커녕 시댁 명절이나 경조사 챙기러 다니는 것도 초주검을 각오해야 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네요.


제가 많이 심각해 보였나 봐요. 옆 집 친한 친구가 아주 용하기로 소문 자자한 무녀를 알고 있대요. 아무래도 제 명줄을 그 무녀에게 물어봐야겠답니다.


펄쩍 뛰었죠.


"이 사람아. 내가 다시 점장이를 찾아가면 사람이 아니라고 다짐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어. 웬 두메산골 암자의 늙은 무녀에게 이미 두 번 당했고, 그래서 그 뒤로 명승 사찰의 법력 높다는 큰 스님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놈도 결국 땡중이더라고."


못을 박아야 합니다.


"내 그 뒤로 다시는 점집을 찾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십 년 넘게 점이라면 근처에 얼씬도 안 하고 살았다니까? 다 부질없는겨."

「점」 바로가기


친구, 안 물러섭니다. 정작 네 운수를 본 적 있냐면서, 없었다면 딱 한 번만 물어보재요. 이대로 친구 초상 치를까 봐 무섭다며 숫제 통사정을 하네요.


하아... 저 원래 귀가 얇다 못해 습자지 수준인 사람입니다. 여자의 마음이 바람 앞 갈대라면, 저는 이미 들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마른 풀잎이고요. 특히나 신통력 대단한 점장이 얘기라면 더욱더.


이제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합니다. 얼핏 듣기에 일리가 있어요. 게다가 내가 아는 그 무녀와 땡중은 이미 둘 다 죽고 없다네요. '늘 남편과 새끼들 운만 물어봤었지. 그렇담 이번엔 내 명줄을 한번 물어봐?'


결국 못 이기는 척 친구와 함께 그 무녀를 찾아갔네요. 스스로의 약속을 깨는 대신 이번이야말로 내 생의 마지막 점이라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무녀가 제 얼굴 한번 '휙' 보더니 망설임 없이 '툭' 던지는 말.


"기생 팔자네!"


어이가 없네요.


'아, 또 당하는구나.'


이번엔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있나요. 앙칼지게 되물었죠.


"지금 뭐라고요?"


그 무당 숨도 안 쉬고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갑니다. 고객이 이렇게 반응할 때 매뉴얼이 이미 다 있다는 듯.


"꼭 기생을 하라는 게 아니고, 끼가 넘치고, 재주를 많이 가진 여자이니, 그걸 다 펼치고 살아야 행복하게 명을 누릴 수 있다는 거야! 그걸 누르고 살면 몸이 아프고 삶이 팍팍해! 지금 많이 아프지? 계속 그렇게 일만 하고 살다간, 원래 네가 타고 태어난 명줄 지키기도 힘들어. 굿 하라고도 안 할게. 네 병은 굿으로도 못 고쳐!"


그럴듯한 얘기긴 한데... 전 왜 만나는 무당마다 제각각 맘 내키는 대로 떠드나 몰라요.


제가 처녀 때 제 혼인 점을 보러 간 울 엄니는, 제가 "일만 하는 팍팍한 팔자"라는 소리를 듣고 와서 "그러니 앞으로 '요조숙녀'로 살아야 한다!" 하셨는데, 이 무당은 내가 "흥을 펼치고 살지 않으면 명을 재촉한다"고? 그럼, 이젠 '자유부인'으로 살아야 하나?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기획사 오디션이라도 봐야 함? 더구나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을 두고?

「하이힐과 수놓기」 바로가기


그 자리를 일어서며 아무리 생각해도 개운치가 않아요. 무당끼리 입이라도 좀 맞춰주면 좋겠어요. 괜히 그곳에 데려간 친구에게 푸념만 했네요.


"저 점쟁이 미친 거 아냐? 내가 지금 화류계 데뷔할 때야?"


어지러운 사교댄스, 집요한 남편의 부탁


무당을 만나고 온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친구끼리 모여 제 문제를 두고 오래 고민한 끝에 해결책을 찾았다네요. 화류계 데뷔하지 않고도 길이 있답니다. 어서 일어나라더니 저를 어떤 문화센터에 데리고 가더군요. 프로그램은 ‘사교댄스’.


매끈한 바닥 위에서 미끄러지듯 춤을 추는데, 처음 배워서 그런지 참 신기하고 재미는 있더라구요.


다음 날 또 갔죠. 그런데 이번에는 저를 빙글빙글 돌리는데 순간 어지럼증이 세게 몰려왔습니다.


'아 참, 나 멀미하는 여자지. 나는 이것도 안 되는 거야.' 싶고, 아픈 남편을 두고 내가 춤이나 배울 때인가 생각에 바로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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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달랐어요.


며칠 후, 병원 침상에서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가, 댄스를 배우러 갔는데 어지러워서 안 하기로 했다 하니, 아무 말 없이 제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던 남편이 며칠이 지나 제게 아주 진지하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평생 일만 하고 사느라 그런 걸 누려보지 않아 그런 거야. 나 떠나고 나서 더 힘든 세상 살다가 나 금세 따라올 생각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거 다 하면서 건강하게 살아야지. 그 친구한테 다시 가겠다고 연락해.”


“안 떠나면 된다 했잖아. 하다 하다 이제 별소리를 다 하네.”


제가 퉁명스럽게 답하면서 거절했지만 원래 한 고집 하는 남편, 참 집요하더군요.


“몇 날 며칠 생각한 거야. 사실 나 이렇게 빨리 가는 거 억울해. 내 못다 한 명 당신이 이어받아 두 배로 오래 살아야 해. 그래야 내가 안 억울하지.”


말문이 막힌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더 할 말을 고를 수 없다는 게 슬펐죠.


그리고 며칠 후, 저를 문화센터에 데리고 갔던 친구가 우리 집에 들어오네요.


저 모르게 남편이 부른 거였어요. 제 앞에서 그 친구에게 남편이 부탁합니다.


“이 사람 거기 다시 데려가서 춤 잘 추게 해주세요.”


그 표정이 너무 진지했어요. 저도 친구도 그만 폭소를 터트릴 정도로. 친구가 바로 날을 잡더군요.


약속한 날이 되자 남편이 또 저를 재촉합니다.


“오늘 가기로 한 날 맞지?”


하는 수 없이 대충 옷 걸쳐 입고 슬리퍼 끌고 그곳을 또 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을 보더니, 강사가 정색을 하며 하는 말.


“사교댄스란 말 그대로 사교입니다. 사교에는 예절이 필요하고요. 반드시 정장에 구두를 신으셔야 합니다.”


솔직히 말했죠.


“사실 저는 어지러워서 이거 못 하겠던데요.”


강사도 우리 남편 못지않게 진지합니다. 포기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호언장담을 하네요.


“약으로도 못 고치는 어지럼증은 사교댄스 제대로 배우면 반드시 치료됩니다.”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요. 사교댄스 빙글빙글 돌다 보면 이 지겨운 어지럼증이 고쳐진다니 기대도 하게 되고, 무엇보다 남편이 그토록 바란다는데 시키는 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정장에 구두 신고 열심히 따라했습니다.


남편이 남겨준 '작은 기적의 유산'


돌이켜 보면 남편이 확정진단을 받고 난 후 처음부터 제게 그리 말했어요.


“당신이 내 명 다 이어받아 살아. 그래야 내가 안 억울하지.”


비록 남편의 '마지막 승부'가 잘 안 풀리고 있긴 했지만, 팍팍했던 서울살이 끝에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던 즈음에, 우리가 받아들여야 했던 남편의 진단이었죠.


객지에서 우리가 누렸던 문화생활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맛집 외식과 짧은 여행 몇 번뿐, 아직 우리가 함께할 것들이 아주 많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저는 남편을 떠나보낼 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떠날 준비가 안 된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투병 생활 내내 아픈 자신 돌보기보다 늘 날 가엾게 쳐다보며 말했어요.


“나 만나 뭐 하나 제대로 누린 것 없는 당신. 나 없는 세상, 당신 혼자 어찌 사누?”


그저 제 걱정만 가득이더군요. 그럴 때마다 난 “안 떠나면 되지!” 하며 별스럽지 않게 대꾸했답니다. 다들 그러시듯 저는 ‘기적’을 믿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간절히 바랐던 ‘남편의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간신히 환갑을 보낸 후, 이듬해 설을 앞두고 젊은 남편은 거짓말처럼 떠났습니다.


허망한 마음에 한참을 쓸쓸하게 살던 어느 날. 문득 남편이 간절히 당부했던 마지막 부탁이 생각나더군요.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해 했던 사교댄스 따라 하기. 그저 시키면 하는 정도로 다니다가, 아픈 남편 두고 내가 뭔 짓인가 생각이 수시로 들다 보니 그것도 시들해져서 한동안 문화센터를 멀리했었어요.


다시 문화센터를 찾았습니다. 춤추는 사람들 보면 '흉하다' 하던 저였는데, 이번엔 달랐어요. 강사가 놀라고, 사람들도 놀라고,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르게 제가 댄스를 배우더라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했습니다.


강사의 주선으로 지역의 제법 큰 무대에서 왈츠와 탱고를 추게 된 순간, 거짓말처럼 아주 오래전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아, 내가 지금 그때 봤던 선녀 댄서 김지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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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세상 사람인 줄만 알았던 김지미보다 지금 내가 못 할 게 뭐야. 하나도 안 부럽네!' 그랬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이어졌어요. 제 오랜 지병 멀미가 사라졌습니다.


차, 배, 비행기, 어떤 걸 타도 멀미가 없더라구요. 길을 아무리 오래 걸어도, 바람이 제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조금도 어지럽지 않았습니다.


젊은 새댁 때 고향 촌마을 천막극장에서 본 '딴 세상' 선녀 '김지미 댄스'를 저도 출 수 있게 됐기 때문일까요? 저를 기생 팔자라며 '끼와 흥'을 펼치면 명줄이 길게 열릴 거라던 점장이 말이 맞았던 걸까요?


둘 다 아니죠.


제게는 기적이죠.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평생 지니고 살아왔던 멀미를 고치다니... 비록 ‘남편의 기적’은 없었지만, ‘내 명을 이어받아야 안 억울하다’던 남편이 제게 남겨준 ‘작은 기적’이 맞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저는 남편의 당부대로, 남편이 남겨준 유산으로, 남편 명까지 잘 이어받아 아주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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