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대보름만찬
어머니의 화양연화
어머니는 팔순을 훌쩍 넘긴 지 오래십니다.
여전히 욕심이 많으세요. 바깥일도 집안일도.
바깥일이 잘 안되는 건 폰으로 자주 드러납니다.
한 달 이상 지난, 오래된 문자나 톡에, 마치 오늘 일인 것처럼 뜬금없이 대답 혹은 되묻는 문자나 톡을 보내시죠. 그래 놓고는 제게 하소연합니다. 야속한 표정으로, 마치 혼잣말인 양 중얼거리며.
"이 사람들은 왜 답장을 안 한다냐?"
갑작스럽고 맥락이라곤 없는 연락에, 지인들은 "이를 어째..." 하며 당황하고 있는데 말이죠.
컴컴한 새벽에 종종 집을 나서시곤 합니다. 그럴 때면 다섯 시간 정도 혼자 차를 타고 걷고 하십니다. 집으로 돌아오시지도 못합니다. 지하철 갈아타는 걸 계속 실패해서.
이런 걸 '지남력 상실'이라고 한다죠. '배회'라고도 합니다.
새벽 기습 외출 못지않게 저를 난감하게 하는 집안일은 주로 요리입니다.
우리 집은 매우 독특한 곳에 있습니다. 전통시장 골목을 들어와서 걷다 보면 집입니다.
건강한 어머니가 늘 들르던 시장 안 점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잘 들르지 않던 점포까지 챙기면서,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까지 양손 가득 한 꾸러미 사 오십니다.
정체불명의 요리를 자꾸만 하시죠. 집에 큰 그릇이나 볼, 곰솥이나 냄비가 모두 채워질 때까지. 더는 빈 그릇이 없게 되면 제가 어느 날 몰래 버리고요.
이런 건 '존재 이유에 대한 증명 의지'입니다.
제 동생은 그러더군요.
엄마의 화양연화는 '종부의 큰손으로 자식들 배불리 먹이던 그 시절'이라고.
어머니는 충청도 촌마을 5남 3녀 대가족 종갓집의 5대 종부십니다.
완벽한 대보름만찬
어제와 오늘은 정월 '대보름나물'을 잔뜩 만드셨어요.
어제 새벽. 늘 어머니 방문 앞을 지키는 제가 잠시 잠든 틈에, 또 컴컴한 새벽 외출을 하셨고, 위치추적 앱으로 어머니 계신 곳을 확인한 제가 서둘러 모셔 왔는데, 이미 양손에는 바리바리 큼직한 봉투들이 들려 있더군요.
종일 콜록거리며 누워 계시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온갖 나물을 찌고, 볶고, 무치고 하십니다. 대보름 전야에는 꼭 먹어야 한다면서.
달래나물, 무우나물, 당근나물, 시금치, 고구마줄기...
그리고 4개월 전쯤 바짝 말려둔 '묵나물'이 절정입니다.
무청시래기, 가지, 곰취...
찹쌀오곡밥과 냉이된장국까지 만드셨습니다. 건강한 어머니가 늘 하시던 그대로, 빠짐없이 제대로 챙기셨네요.
어머니와 단 둘이 먹을 저녁상 차리는 건 제가 했습니다.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깜짝 놀랐습니다.
정체불명의 요리들, 아니 익숙했던 요리들마저 요즈음 너무 이상해져서 먹기 힘들었는데, 이번 대보름나물 만찬은 예전의 그 맛 그대로입니다. 완벽하게.
어머니가 종종거리는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을 뿐, '부럼'을 사다 디저트까지 챙기는 걸 제가 빠트렸네요. 대보름만찬을 채 완성하지 못한 걸 후회했습니다.
울면서 먹었습니다.
너무나 맛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