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유, 엄니"

귀천(歸天)

by 꼭두

"잘 가유, 엄니"

귀천(歸天)


그날


"애비야, 자전거 바람 잘 채워놨지?"


어느 날, 뜬금없이 제게 저렇게 말씀하시네요. 세상 근심 없는 표정의 어머니가.


어머니 스스로 말하시길, 어머니 노년에 열린 '인생의 봄날'을 함께 했던 자전거지만, 얼마 전 호되게 넘어진 후 고생을 꽤 하셨죠.


팔순을 넘긴 지 오래되신 어머니. 그 무렵의 노인들이 '낙상' 끝에 영 잘못되는 걸 종종 보았던 터라, 이후로는 "자전거 이제 그만 탑시다. 아차 잘못되면 엄니도 저도 큰일 나요." 하며 자전거 해방선언을 했고, 어머니도 그러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가끔 "나, 잠깐 시장 다녀오면 안 될까? 자전거 끌고." 하실 때마다 저와 제법 말씨름을 하곤 하셨죠.


그런데 이번엔 좀 많이 다릅니다. 말투도, 표정도.


뭔가 가슴 한켠이 철렁하는 느낌이 들었고, 애써 '아닐 거야' 하고 넘어갔지만, 제 서늘한 느낌은 점점 현실이 되더군요. 적지 않은 분들이 부모에게서 겪는 전형적인 '치매' 초기 증상이 이어졌습니다.


먼 기억은 또렷한데 가까운 기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상실'과 '왜곡', 결국 '섬망'에 이르는. 모든 과거를 0.1초 단위의 프레임으로 저장하는 비상한 능력의 어머니셨기에 차마 믿기 힘든 변화였죠.


그럴 때마다 별일 아니라는 듯 표정관리하지만, 제가 대신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2년여.


2023년 11월 11일. 그해 빼빼로데이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제게 뭔가 말을 건네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자 답답함에 애가 타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 하지만 열리지 않는 입.


'뇌경색'이었습니다.


약속


삼시세끼 챙겨드리는 기약 없는 간병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오래전 몰두했던 '자폐' 공부에 이어, 이번엔 '치매' 공부를 해야 했죠.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이었고 갈 길은 멀어 보였습니다. 이 길을 먼저 걸었던 분들의 작은 역사를 보면서 내심 각오도 많이 다졌죠.


기습 외출과 배회, 물건 사들이기와 요리.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십니다.


'절대 혼자 나가지 마시라.'

'걷다가 어딘지 모르겠으면, 딱 그 자리에 멈춰서서 내게 전화하시라.'

'제발 아무것도 사지 말고, 어떤 요리도 하지 마시라.'


저와 숱하게 싸웠지만 소용없더군요. 밖에서나 집에서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어머니의 뜻은 꺾이지 않고 반복됐죠. 그러면 또 싸우고요.


제 일상 중에서 가장 힘든 건 어머니의 식사였습니다. 온갖 궁리 끝에 뭘 해드려도 드시는 양과 횟수가 점점 줄었어요. 옛 어른들이 '밥숟가락 놓으면 때가 된 거다.' 하셨던가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라는데, 불안감을 감추기 힘든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어쩌다 만나는 두 딸이 "엄마 치매 맞아요. 요양원 갑시다." 하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셨죠.


"니 어미 치매 걸릴 때까지만 살아보고 말해라."


요양원은 말도 못 꺼내게 하셨고요.


아주 오래전, 제가 어머니께 해드렸던 약속을 기억하셨던 걸까요?


"누구나 자기 살던 집, 자기 자던 방에서 죽고 싶지 않겠어요? 그게 아닌 건 전부 '객사'가 맞아요. 제가 두 눈 뜨고 살아있는 한 엄니는 절대 그런 일 없게 할 거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요양원' 같은 건 구경도 안 하게 해드릴게요. 이 약속 지키기 위해, 엄니보다 제가 먼저 갈 일 결코 없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오히려 특이한 건, 아들 앞에서는 말이 바뀌십니다.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어쩌다 '치매'가 됐다니? 나 요양원 갈란다."


마지막 밥상


그날도 궁리하다 보니 아침 식사가 늦어졌어요. 아직은 일어나지도 않으셨지만.


맛있게 잘 즐기시던 참조기를 떠올리고는 부침가루 고루 뿌려 바삭하게 굽고, 묵은지 청국장 지지고, 갓 지은 새 밥과 함께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어요.


놀랍게도, 정말 오랜만에 남김없이 비우시고는 기분이 좋아지셨습니다. 덩달아 기분 좋아진 아들이 내친김에 말했죠. "욕실에 뜨거운 물 받아드릴테니 몸 좀 담그실래요?"


평소 자주 즐기시던 찜질방 못 가게 한다고 늘 불만이셨던 어머니. 기어이 몰래 나가셨다가, 두 시간 넘도록 헤맸지만, 항상 가던 곳 찾지를 못해 돌아오신 후, 그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너무 좋아하시네요. 함박 웃으시며 하는 말.


"그럴까?"


원래 한번 몸을 담그면 최소 세 시간은 기본이십니다. 욕실 문 바로 앞에서 틈날 때마다 아들이 물어요.


"어때요?"


"너무 좋구나!"


2025년 1월 18일 늦은 오후.


불꽃처럼 사셨지만, 새 봄꽃을 다시 보지는 못하고 떠나가신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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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


30년 전, 아버지가 걸었던 귀향길 따라 어머니도 고향 마을로 돌아가셨죠.


손자까지 셋, 평소에는 단둘이 살던 우리 집. 처음 한 달은 집에 있는 모든 조명을 다 켜고 지내야만 했어요. 무서워서? 싶었는데 알고 보니 외로워서. 지금도 어머니 방은 제가 수시로 정리하면서 사실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배웅을 마치지 못한 느낌. 10개월이 넘었지만 저는 아직도 붙들고 있었나 봅니다. 어머니의 회고록을 마치는 지금, 비로소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통 속 피란과 학교가 그저 재미있던 소녀도

'기차를 보고 싶어요' 소리치며 선생님을 조르던 소녀도

보릿고개 산나물길 호띠기 불며 걷던 봄처녀도

노적가리 높게 쌓인 집마당 초례청의 수줍었던 각시도

몰래 받은 남편의 찐만두에 행복 겨웠던 색시도

남편 퇴근골목 리어카호떡 맛을 잊지 못하던 아내도

첫 무교동낙지의 매운맛에 정신 못 차리던 아내도

어머니날 깜짝밥상과 브로치에 행복해하던 어머니도

남편의 유산으로 탱고를 추고 자전거를 타며, '내 인생의 봄'이 왔다고 행복해하던 어머니도


아름다웠던 소풍 마치셨으면 이제 모두 편안히 돌아가십시오.


원래부터 계시던 그곳으로.


"잘 가유, 엄니."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모신 후, 맏상주가 모두에게 드렸던 감사 인사의 일부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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