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회고록
세 세대 회고록 『세 사람의 날들』 1부 『어머니의 날들』을 마칩니다.
27일간의 기록
어머니에게 기억이 쌓이기 시작한 '소녀의 하루'부터, 기억이 사라지기 직전 '할머니의 하루'까지, 어머니가 회고하는 87년 본인의 생(生)을, 아들인 제가 모두 40개의 에피소드(話)로 기록했습니다.
어머니의 회고 40화 외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제가 어머니를 회고하는 글 두 개를 포함하여 총 44화로 『어머니의 날들』을 마칩니다.
브런치북에 담을 수 있는 글 수가 30화로 제한되기에 별 의미 없이 22화씩 두 개의 북으로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제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서둘러 시작하고 쫓기듯 이어갔기에, 처음 매거진으로 글을 올린 11월 5일부터 12월 1일까지 매일 적게는 한 개에서, 많을 때는 세 개까지 글을 올렸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브런치 시스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그저 브런치가 허락한 구석에서 나홀로 기록하는 글쓰기였기에, 읽어주는 사람 거의 없이 조용히 쌓이며 묻혀온 글들입니다.
그런데, 제 글을 하나라도 읽어 본 분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을 때,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 글이 팔순 노인이 직접 쓴 글이 맞냐는. 어쩐지 아닌 것 같다는.
'글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는, 그제서야 늦은 알림글을 올렸습니다.
매거진 『엄니의 세월』에 올라오는 모든 글은, 87세 노인이 자신의 생(生)을 회고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팔순 본인의 시점(視點)이고 따라서 화자(話者)도 본인이지만, 그 구술을 글로 기록하는 건 아들인 제가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요.
한 줄 요약드리면, 어머니의 회고록을 아들이 구술대필한다는 거죠.
87년 생(生)의 빙의
그러자 이번에는, 어머니의 회고록이 마무리돼 가던 즈음.
지난번과 반대되는 질문을 또 받게 됐습니다. 이 글이 아들이 직접 쓴 글이 맞냐는. 그러기에는 어머니의 감성이 너무 고스란히 잘 느껴진다는.
제가 한집에 살았던 세 세대의 회고록을 쓰려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던 단 한 명이 있었습니다. 어떤 형식일지 미리 알고 있던 그 후배도 막상 글을 읽더니 그러긴 했어요.
"이거 어머니가 쓴 거예요? 아님 형이 쓴 거예요?"
그 후배는 한마디로 '헷갈린다'는 거였고, 질문을 준 분은 '아니, 엄마의 삶을 이리 실감 나게 감정 이입되어 쓸 수 있는 아들이 있다고?' 딱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글을 쓰면서 내내 느꼈던 건 어머니의 87년 생에 빙의(憑依)되는 것. 그것도 40화 내내 일정하게 어머니만의 표현과 감성을 고르게 유지하면서. 그게 '참 힘든 일이구나'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흔히들 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죠. 이번의 경험으로 보면 '대필은 거의 1.5의 창작' 같습니다. 최소한 제게는 더 힘들었어요.
'더'라고 말씀드리는 건 '번역도 해봤는데'는 아니고요. 나 아닌 사람에 빙의해서 그의 말을 그의 글로 기록하는 게, 제가 일인칭 시점의 제 글을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렵더라는 말입니다.
그 힘들었던 기억이 다 씻겨 내려갈 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힘든 일을 제가 아주 잘 해낸 거 아니냐는 생각에. 두 번째 질문은 극찬으로 들렸거든요.
덧붙여서 그럴 수 있었던 걸 말씀드립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현재, 저는 63세의 예비 노인입니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겉으로는 그냥 노인이고요. 저는 제 생에서 2년 미만을 제외하고 어머니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60년 넘는 세월을요.
어머니가 가장 오래 함께 산 사람이 아들이고 아들 또한 그렇다 보니, 저는 어머니의 어법과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고요. 또한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저도 함께 겪은 일들이기에 모든 기록을 어머니의 글로 재구성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제가 태어나기 전과 제게 기억이 쌓이기 전 어머니의 생은 어머니의 구술에 조금 더 의지하긴 했지만요.
삶과 과거를 기록하는 모든 글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게 미화(美化)라고 합니다. 특히, 회고록이 가장 그렇답니다.
모든 기록을 담담하게, 있던 그대로의 사실과 당시 느꼈던 가장 솔직한 단어와 감성으로 적는다는, 제 스스로 정한 1세대 회고록의 원칙을 지키며 어머니의 87년을 잘 기록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배웅과 소망
아직 남아있는 어머니의 구술이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를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신 지 10개월이 넘었지만, 뭔가 어머니를 채 보내드리지 못했다는 마음 한구석은 아마도 부족함이었나 봅니다.
어머니의 세월을 이만큼이라도 되새김질하고 나니, 이제는 어머니 배웅이 가능해진 듯싶습니다. 어머니 아들인 제 이야기와 제 아들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기에, 어머니의 남은 구술은 영원히 묻어두겠습니다.
제게도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쫓기듯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브런치북으로 옮기는 이유는 어차피 더 이상 교정의 기회가 없어서입니다. 또한 제 소망은 결국 '종이책'이기에, 제 글 하나라도 유료로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
운이 좋아 종이책이 혹 나오더라도, 이곳 브런치의 '전자책' 『세 사람의 날들』도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라고요.
부족한 글 함께 지켜봐 주신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2025년 12월 1일
꼭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