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자전거

남편의 유산 세 번째

by 꼭두

기적의 자전거

남편의 유산 세 번째


골다공증 할머니의 궁상맞은 겨울나기


제 나이 막 환갑을 넘어서던 때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끝나가던 무렵, 그만 독한 감기 몸살에 걸리고 말았어요. 몇 날 며칠을 혼자 끙끙 앓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들더군요.


5대 종가 맏며느리로 시집와 시댁 어른들 모시며, 7명의 시동생, 시누이들 키우는 일을 시작으로, 남편 뒷바라지에 자식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그러다 갑작스레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이제 아이들은 다 커서 자기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데, 문득 쳐다본 거울 속에는 환갑 넘긴 할머니 혼자 덩그러니 있더군요.


아무리 짚어 봐도 나를 위한 생활이라곤 없이 살아왔기에, 이젠 뭘 하고 늙어가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요.


남편이 남겨준 유산, '사교댄스'가 있기는 합니다. 덕분에 평생 지병이었던 멀미도 고쳤고요, 아무래도 저, 욕심쟁이 할미인가 봅니다, 그걸로는 이 쓸쓸함이 채워지지 않는 걸 보면요.


감기 몸살이 너무 길어지자, 아들이 저를 데리고 강동에서 제법 크다는 병원으로 가더군요. 아프다는 사람 끌고 다니며 이것저것 검사를 많이도 하더니 의사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감기가 문제가 아니고, 지금 골다공증이 너무 심각합니다. 정밀 진단부터 하고 치료 방향을 급히 세워야...”


이 말을 곁에 붙어 함께 듣던 아들. 의사의 나머지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두말없이 그곳을 나와 더 큰 서울아산병원으로 갑니다.


훨씬 더 많은 검사를 하더니, 그 의사는 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네요.


“뼛속이 거의 없어요. 지금 남은 뼈가 몇 퍼센트냐면요.”


뭔가 복잡하게 설명을 하는데, 한마디로 제 뼛속이 텅텅 비었답니다.


잘 먹고 잘 쉬는 게 첫째라면서 약 처방을 해주는데, 그 약이 더 심해지는 걸 막을 뿐 치료를 기대하기는 힘들답니다. 평생 조심하면서 살으래요. 걸어 다닐 때도 살살 다니랍니다.


“치료 방법이 없다고요?”


제가 놀라서 되묻자, 치료에 좋은 음식을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뼈를 지키기 위해서는 칼슘과 비타민D가 중요하죠. 우유, 고등어, 시금치..."


아들은 폰으로 메모를 하고, 저는 열심히 따라 외우고 있는데, 의사의 말이 계속 이어집니다.


“운동도 큰 도움이 돼요. 스트레칭과 체조, 걷기, 가벼운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


그러다가 잠시 호흡을 멈추더니 당부하듯 말하네요.


“그런데 자전거는 위험하기도 해요. 혹시라도 잘못 넘어지면 뼈가 부러지기 쉽고 다시 붙기는 힘들거든요. 그래서 비교적 젊은 환자들에게 예방과 치료를 위해 권하지만, 이미 심각하게 증상이 진행된 노인 환자는 아주 조심해서 타야 합니다.”


'아... 그저 집에서 밥이나 먹고 약이나 챙겨 먹으며 죽은 듯 살라는 거네.'


힘없이 병원을 나왔고, 제 궁상맞은 그해 겨울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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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이루어진 위대한 도전


죽은 듯 재미없게 지내다 보니 봄이 오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현관문에 붙은 광고전단 한 장을 봤어요.


‘봄맞이 자전거 강습 부녀회원 대모집!’


가까운 올림픽공원에서 주부들 대상으로 자전거를 가르쳐 준다네요. 내가 주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의사가 자전거가 골다공증에 좋다고 했었지! 그게 떠오릅니다. 그다음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잊어야겠습니다.


어릴 적 생각도 납니다. 매일 오빠가 태워주는 자전거 뒤에 앉아 등하교를 했었죠.


어린 저는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었어요. 오빠에게 떼를 쓴 끝에 간신히 연습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엄마가 그걸 봤고 저는 뒤지게 혼났납니다.


“어디 여자애가 자전거를 타냐?”


조신해야 할 처녀가 자전거를 타면 패가망신한답니다. 참 더는 할 말 없는 시절의 이야기죠.


그 뒤로 다시는 자전거를 배울 기회가 없었고 살면서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는데, 그 광고지를 보는 순간 그 시절 꿈이 다시 꿈틀댑니다. 안타깝지만, 패가망신 내세우며 저를 막아설 엄마도 이제는 안 계십니다.


“안 늦었다. 타고 싶다.”


자전거가 골다공증에 좋다 했던 의사의 말은 좋은 핑곗거리가 됐고,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은 지웠습니다.


그 의사에게, 환갑 넘은 심각한 골다공증 할머니가 자전거를 처음부터 배워도 되겠죠? 물어본다면 아마도 안 된다 할 게 뻔해 보이니까요.


그 길로 전단에 적힌 올림픽공원 강습장에 갔습니다. '자전거 생초짜', 중증의 골다공증 할머니가 젊고 튼튼한 주부들 틈에 끼어 열심히 배웠어요.


넘어지면 더 큰 일 될 수 있다는 의사의 당부가 생생했기에, 넘어질 것 같으면 자전거는 패대기치고 몸만 쏙 빠져나오길 여러 번. 우리 강습소 자전거 다 망가진다는 강사의 핀잔을 여러 번 들었죠.


제가 자전거를 집어던지고, 강사가 눈치를 줄 때마다 전 당당히 말했어요.


"우리 아들이 꼭 이렇게 하라던데요."


드디어 강습프로그램을 모두 수료했습니다. 사교댄스 속성 마스터가 끝이 아니었구나. 제가 운동에도 소질이 있다는 걸 저는 살면서 그때 처음 알았답니다.


어릴 적 꿈을, 환갑을 넘어서야 이룬 저. 자전거 타는 게 어찌나 재밌던지요. 위험하다며 제 자전거 강습을 그렇게 말리던 아들도, 그런 제 모든 모습을 조심스레 지켜보더니, 어느 날 반짝거리는 자전거 한 대를 끌고 들어옵니다.


얼핏 보기에도 좋아 보입니다. 마치 새 운동화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제가 자전거를 살피며 "짐받이도 달고, 바구니도 달고..." 중얼거리니, 아들이 절대 안 된답니다.


저를 위해 가벼운 거 고르느라 엄청 애먹었대요. 가벼울수록 비싸답니다. 단 일 그램도 추가하면 안 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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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다시 찾은 '내 인생의 봄날'


당시 살고 있던 집이 암사동의 한강 변 아파트였는데, 몇 분만 걸어 나가면 한강 둔치의 자전거도로가 연결돼요. 자전거로는 일 분.


자전거가 어찌나 재밌던지 새벽이면 저절로 일어나서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여의도까지 혼자 다녀오는 걸 거의 매일같이 했습니다.


온전히 저 혼자만의 힘으로 처음 여의도에 도착했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답니다.


여의도 도착 직전, 노량대교 아래의 자전거길이 얼마나 울퉁불퉁 오르막 내리막 놀이동산 같은지 아시나요? 해가 막 떠오르는 여의도 한강 변에 자전거를 눕혀둔 채, 천막에서 사발면 아침을 드셔 보셨나요?


왜 그리 맛있고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몰라요.


혼자 오래 타다 보면 좀 적적할 때도 있습니다. 제게 자전거를 가르쳐줬던 강사가 자전거 동아리를 알려주며 가입하면 도움이 된다 했던 게 떠오릅니다.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더군요.


그러던 중, 여의도를 오고 가며 자주 스쳐 지나가던 자전거 동호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저를 붙잡더니 함께 타자더군요. 좋은 코스, 안전 운행, 자전거 응급 수리까지 싹 다 책임져 준다면서요. "좋아요!" 했죠.


그곳에서는 더 신세계가 열리더군요.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마침 우리 집 앞인 한강 둔치 집결지에, 앞뒤로 반짝반짝 빛나는 라이트를 켠 수십 대의 자전거가 모입니다. 알록달록한 헬멧과 형광색으로 빛나는 복장을 갖춘 회원들.


제일 앞 선발대의 지휘 아래 회원들의 자전거가 뒤를 잇고, 제일 뒤로는 안전을 담당하는 후발대가 따라붙습니다. 떼를 지어 달리는 자전거는 또 다른 맛이에요. 그 행렬이 얼마나 장관이고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걸 '팀라이딩'이라고 부르더군요.


팀라이딩의 꽃은 주말 '맛집라이딩'입니다. 미사리로, 양수리로, 팔당으로 맛집을 찾아갑니다. 덤으로 따라붙는 시원한 바람과 좋은 경치를 즐기며.


한바탕 땀을 흘린 뒤에 모여 앉으면, 뭘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지 안 해보신 분들은 정말 모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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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名醫)인 우리 남편은 내 수호천사


그러기를 거의 일 년, 진짜 놀라야 할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골다공증 중증 진단 후, 삼 개월마다 한 번씩 아산병원에 들러 골밀도 검사라는 것과 함께 약을 처방받는 정기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주치의가 호들갑을 떨며 제게 말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뼈가 거의 다 채워졌습니다. 이 연세, 이 중증에... 이건 정말 드문 사례예요. 도대체 뭘 하신 겁니까?”


그제서야 그동안의 자전거 생활에 대해 자세히 말했습니다. 자전거를 처음부터 배웠고, 거의 매일 한강에서, 야외에서 살았다고. 위험해서 안 된다 하실까 봐 미리 상의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까지.


의사가 어이없다는 듯 저를 쳐다보다가 크게 웃더군요.


“아무튼 잘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약을 안 드셔도 될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이건 '기적'입니다!”


집에 와서 이 얘기를 했더니 아들이 만세를 부르며 소리칩니다.


"자전거는 정말 위대한 운동이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 자전거야!"


기특하더군요. 아들이 아니라 자전거가.


그 궁상맞았던 겨울의 골다공증 진단이 내 자전거 인생의 시작이 된 셈이고,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그때가 자전거로 다시 찾은 '내 인생의 봄날'이었습니다.


무모했을지도 모를 때늦은 도전 덕분에 다시 돌아온 청춘의 힘은 대단했다지요. 그 뒤로 띄엄띄엄 몇 년마다 검사를 해봐도, 위험한 수치가 아니라서 더는 처방이 필요 없다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으니까요.


제 남편이 이런 저를 보면 뭐라고 할까요?


사교댄스로 체력을 다지게 한 후, 자전거로 결실을 보게 한 게, 다 자신의 깊은 뜻이었다고 자랑하지 않겠어요? "멀미도 없애고 골다공증도 고쳐줬잖아. 맞지?"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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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는 말이네요. 충분히 잘난 척해도 됩니다. 알고 봤더니 우리 남편 명의(名醫)였네요. 살아있을 때 숨겨놓았던 것들, 지금에서야 유산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는, 제 '수호천사'였어요.


요 몇 년, 망할 놈의 코로나와 다시 시작된 아들의 잔소리 때문에 너무 오래 집에 갇혀 살았습니다. 따뜻한 새봄이 오면, 먼지 쌓인 채 묶여있는 자전거 바퀴에 바람 빵빵하게 채워 넣고 퇴촌의 '털보바베큐'로 달려가야겠습니다.


등갈비와 생삼겹 바비큐 뜯으러. 달리면서 쏟아낸 땀은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동치미 국물로 채우면서.


"명의 남편! 같이 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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