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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Jan 08. 2024

22. 여성축구 발가락 부상자의 신년 하례식

축구장에는 멀쩡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부상자도 꼭 있다

축구장에 가면 골대가 있고, 축구공이 있고, 선수들이 있고..... 부상자도 있다. 축구협회 행사에 가면 꼭 한 명은 깁스를 하고 있다. 그게 나라니. 죽음에도 차례가 없듯, 부상에도 순서가 없었다. 이번에는 나였다. 하늘에서는 축구장에 있는 사람 중에서 무작위로 부상자를 하나 뽑나 보다. 부상자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니 당연히 눈에 쉽게 띄었다. 여성축구인들은 소수여서 축구장에서 연예인으로 통한다.     


      

깁스와 목발을 한 부상자를 위한 환대     


이번 행사는 신년 하례식이었다. 올 한 해 협회가 잘 운영되도록 신년고사와 축구대회 개막식이 함께 열렸다. 회사로 따지자면 시무식과 같다. 신년 하례식은 협회에 소속된 축구회들의 임원진들과 지역 인사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렇게 행사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깁스를 한 채로 목발을 한 아줌마가 들어서니 얼굴을 마주치는 이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어쩌다 다친 거야?”

“뽈 차다가 다친 거야?”

“깁스 위로 수면양말을 왜 안 신고 왔냐.”

경기 중 엄지발가락 골절 됐다고 열 번은 대답했다. 다들 깁스한 경험을 풀어놓으셨다. 하필이면 이날 기온이 영하권이었다. 추위 걱정의 말에 감사했다. 내가 기억하는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말을 건네주시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친 티를 너무 내서 내가 제일 잘하는 축구선수로 오해하겠다는 농담도 들었다. 듣자마자 고개를 연신 아래위로 흔들며 인정했다.           



부상자들의 할 일     

나만 부상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팀에는 지난 대회 때부터 뛰지 못한 골키퍼 언니가 있다. 무릎인대가 파열돼 수술한 상태였다. 대회 내내 목발을 하고 함께 나와서 응원해 주었다. 골키퍼의 역할은 골문을 지키는 게 일 순위이지만 뒤에서 선수들의 위치를 잡도록 소리를 질러주기도 한다.(골키퍼 언니가 말했다. “내가 개처럼 뒤에서 짖어도 이해해 줘”) 지난 대회에서 필드에 5분 있었지만 내가 들리는 목소리는 경기장 밖 골키퍼 언니의 부르짖음이었다. 골키퍼 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그냥 옆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다른 부상자 언니를 보고 배워 목발을 하고도 이번 행사에 참여해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게 해 주셨다.

또 다른 회원은 동영상 촬영을 맡았다. 지난 경기에 필드를 뛰었었다. 물었더니 역시나 무릎 수술로 운동을 못하는 상태였다. 부상자임에도 경기에 와서 다른 뒷일을 도와주려고 온 친구였다. 이렇게 부상자 셋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행사 뒷일을 하느라 필드에서 뛰는 친구들을 잘 살펴보지 못했다.


          

유니폼 반바지를 안 입고 경기에 뛰었다니     


필드로 들어간 회원들은 한파로 인해 몸을 꽁꽁 싸맸다. 겨울 축구장에 들어갈 때는 보통 쫄바지 위에 유니폼 반바지를 입는다. 행사장에서는 그 위에 츄리닝 바지를 한 겹 더 입곤 한다. 그래서 경기출전 직전에 바지를 후루룩 벗고 들어간다. 대부분이 그렇게 츄리닝 바지를 벗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멤버들의 유니폼을 유심히 쳐다보지 않았다. 경기장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나 유니폼 반바지를 안 입고 경기했어.”

신년회 다음 날 전화 통화였다. 한 언니의 폭탄 발언에 너무나 놀랐다. 후루룩 츄리닝을 벗고 들어갔는데 경기 도중에 반바지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경기 끝나고 보니 가방 안에서 유니폼 반바지가 조용히 잠자고 있었단다. 쫄바지가 워낙 두꺼웠고 쫄바지와 반바지 모두 검은색이었다. 언니의 체형이 반바지가 붙어 있겠거니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니 정말 쫄바지만 입고 경기를 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축구협회 회장단 남자들과의 경기였다. 이성들이 보는데 너무나 창피했다고 비밀을 털어놓았다. 웃옷이 Y자는 가리게 만들어서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언니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회원은 유니폼 반바지를 거꾸로 입고 뛰었다고 했다. 우리 유니폼 반바지의 경우 숫자가 오른쪽 아래에 박혀있어야 앞이었다. 그 숫자가 뒤로 달린 채로 뛴 것이다.      



반바지를 안 입었던 거꾸로 입었던 부상으로 필드에 들어가지 못했던 우리는 한 팀으로 뛰었다. 언니와 통화하면서 아침부터 한껏 웃어댔고 비밀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점점 더 친해졌다.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를 점점 맞춰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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