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는 가장 의젓하고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것이 없는 올바른 아이다. 친정엄마는 둘째가 있어서 네가 셋째를 낳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둘째는 침착하고 참을성이 많다.(셋 중에서 유일하게 남편을 많이 닮았다) 생각이 많아서 배려가 깊은 아이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다. 내년에는 임원이 되리라는 흐뭇한 상상을 가져다주는 아이다.
이 날은 막내의 졸업식이었다. 우여곡절의 졸업식이 끝나고 남편과 나 막내는 셋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기로 하고 외식에 나섰다. 막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으러 신장개업한 가게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받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만 수업시간 중에 전화가 오기 때문이었다. 번뜩이었던 건 ‘둘째가 어디 다쳤나?’였다.(첫째는 이미 커서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지와 팬티를 초등학교로
“어머니, 둘째가 지금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못 나오고 있어요. 똥이 많이 묻었나 봐요. 바지와 팬티 좀 빨리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이미 돈가스들은 입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쳐 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발가락 부상이 다 낫지 않았던 나를 대신해 남편이 달릴 준비를 했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외식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집으로 달려가서 아이의 옷가지를 챙기고 황급히 학교로 향했다. 아이는 화장실에서 무한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창피함이 화장실을 꼭꼭 잠그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처리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친구에게 부탁해 선생님께 전달했고 점심시간이 지나는 내내 아빠를 기다렸다.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굳어버린
남편이 닫힌 문을 연 순간 냄새가 진동했다고 전했다. 휴지로 묻어 있는 것들을 닦으려 했지만 이미 굳어버려서 힘들었다고. 하지만 아이가 울지도 않고 침착하게 기다려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 어른이라도 울어버릴 텐데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이런 당황스러움을 대처하는 자세에 놀랐다. 화장실 한 칸에서 말 못 할 두려움을 아이는 다 짊어지고 이겨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 문을 열지 못할 만큼의 감당 크기를 이야기했고 도움을 잘 요청했다. 친구들은 둘째를 찾았다고 했다. 걱정되는 친구들만큼 아이는 어떻게 친구들에게 이야기할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반 친구들에게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점심은 거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집에 와서 샤워를 했고 다시 일정을 끝내려 학교로 향했다.
엄마와 아빠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아이
“둘째가 화장실에서 안 나와서 친구들이 물어볼 텐데 뭐라고 이야기해 줄 거야?”
내가 물었다.
“내가 설사를 많이 해서 나올 수 없었다고 이야기할 거야.”
아이가 최대한 창피하지 않도록 친구들에게 잘 설명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잘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꼭 끌어안아줬다. 이런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담임 선생님께서도 부탁을 받은 친구와 선생님만 이 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약속도 해주셨다.
팬티는 처리할 수 없어 쓰레기로 버렸고 실내화는 세탁했다. 아이의 마음도 굳건하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전달했던 바지와 팬티는 엄마 아빠를 향하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게 기댈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계속되길 바란다. 우리는 언제나 너의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