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침대는 과학이고, 축구는 사기다

거짓말로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법, 페인팅

by 끼우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어릴 적 TV CF에서 박상원 씨가 말했다. 대히트를 쳤던 한 침대 광고가 떠올랐다. 침대가 좋아야 좋은 숙면을 취하고 신체리듬 활성화가 된다. 그만큼 과학적인 기술로 만들었다는 맥락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그 당시 학생들이 침대를 가구로 생각하지 않고 과학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 말은 당시 대유행이었다.



과학이 포괄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축구는 너무나 과학적인 운동이었다. 경기 중, 상대편 할아버지의 속임수에 넘어갔다. 오른쪽으로 가는 척하더니 왼쪽으로 내달려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할아버지가 왜 이리 빨라?’ 거짓말. 그렇게 몇 번을 속고 또 속았다. 이게 바로 축구에서 말하는 ‘페인팅(Feinting)’이었다.


빅뱅의 '거짓말' https://youtu.be/2Cv3phvP8Ro?feature=shared

페인팅(Feinting)이란
가장, 시늉, 공격하는 체하다, 거짓 공격을 하다
라는 뜻이다.
축구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상대를 따돌릴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기술을 칭한다.



수비의 자세, 떨어져 기다리기


수비를 할 때 무작정 공 가진 사람 앞에 바짝 서면 망하는 지름길이다. 공격하는 사람이 금세 수비를 따돌릴 수 있다. 수비수는 1.5m에서 2m 떨어져서 공격수를 바라보고 비스듬하게 서야 한다. 이때 수비수는 상대방이 나갈 방향을 빠르게 따라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뒷다리에 힘에 70%가 들어가도록 자세를 취한다. 그러고는 그 사람이 가는 방향을 따라 같은 방향에 있는 내 다리를 먼저 움직여 달리면 두세 발짝 가는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다.


나는 너무 가까운 수비를 했고 상대편은 날쌔게 나를 피해 갔다. 내 손동작은 마치 영구가 아닌가 생각했다. 띠리리리리리.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축구가 과학이 아닌가. 침대만이 과학이 아닌 것이다. 두 발걸음도 따라오지 못하게 큰 차이를 벌리는 것. 힘과 빠르기로만 배우는 체육이 아니다.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했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 선생님은 우리 학교가 산 위에 있으니 뛰면서 올라오라 했다. 한쪽 다리가 올라올 때마다 대퇴근, 대퇴근, 대퇴근을 외치라고. 뛰어오르면 이 부분이 근육이 올라온다면서. 그렇게 허벅지에 대한 명칭을 외우라 했다. 그렇게 뛰지 못했던 내가 이제 와서 뛰다가 대퇴근이 찢어지지 않았는가.

다음 경기에서 할아버지들이 날 얕보지 못하도록 나도 내달렸다. 수업에 배운 내용을 써먹은 내가 나에게 토닥토닥해줬다. 이 날부터 생각했다. 수업에 배운 내용을 되새기기. 한 번에 하나만 곱씹어서 경기장에서 성공하는 일은 정말 뿌듯하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경기가 힘들지 않았다.



사기를 위해 사기를 친다


며칠 뒤, 수업 시간에 페인팅을 배웠다. 하지만 페인팅이 끝이 아니다. 페인팅을 하고 나서 죽도록 뛰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술은 상대방에게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세 번은 연속으로 당했다)

한 선수가 수비수 한 명을 떼어내기 위해 생각하고 있다. 어떤 페인팅을 쓸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축구는 사기를 쳐서 속이고 달리는 경기였다. 속이면서 경기를 하는 게 정상인가? 스포츠는 정정당당한 승부라 거짓이 없고 진실로만 한다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선의의 거짓말처럼 승부를 위한 사기(士氣, 욕이나 자신감 따위로 가득 차서 굽힐 줄 모르는 기세)가 필요해지는 순간, 우리는 그 사기(詐欺,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나쁜 꾀로 남을 속임)를 페인팅이라는 용어로 치환할 수 있었다. 경기 중 남을 멋지게 속이는 일, 페인팅(Feinting). 나도 페인팅을 잘해보았다고 말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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