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 돌보기
내가 아무리 축구에 열정적인 축구하는 어린이(축린이, 축구를 막 시작한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 돌봄이다. 우리 가족에서 내 역할은 엄마다. 아이가 아프면 워킹맘이 휴가를 쓰듯이, 나 역시 스케줄이 리셋됐다. 워낙 잘 아픈 아이들도 아닌데 아프고 나면 축구를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생긴다.(그래도 방학에 아파주어 고마웠다)
아이들이 유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전처럼 힘든 편은 아니다. 다만 내가 옆에 있어 안정감을 찾을 뿐이다. 축구를 하루 이틀을 쉬고 나면 나만 도태되지 않는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어쩔 수 없는 결석이다. 말이 결석이지 아이 수발하기 바쁘다. 병원에 함께 다녀와야 하고 삼시 세끼 밥을 챙겨야 하며 시간마다 아이의 약 복용을 체크한다. 학원을 빠진 진도를 집에서 보충해야 한다.
새벽이면 중간에 일어나 아이가 고열이 나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귀에 대고 온도를 측정한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꿈 인지 현실인지 구분 못하는 새벽이라도 해열제 교차복용도 생각해야 한다. 식사 양이 줄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과 간식을 준비해둬야 한다. 이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내 체력이 고갈됨을 느낀다. 아이가 하나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꼭 한 아이가 다 나아질 즈음 다른 아이가 시작된다. 아이가 많은 집의 병 패턴이다. 그래서 소아과 VIP가 되곤 한다.
그럴 때면 멍하니 SNS에서 말하는 축구 기본기 영상을 흘려 넘기면서 눈으로 공부했다. 나가서 운동할 수 없음에 아쉬운 마음을 그렇게 달랬다. 여자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의 역할이 먼저고 축구하는 나는 뒷전이 된다. 결혼 10년이 넘어서야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사나 생각했는데 여전히 엄마의 삶이었다. 현재 내가 다니는 여성 축구 안에서도 학부모들이 있다. 가끔 안 나오는 집들은 아이가 아파서다. 축구장에 나와서도 핸드폰을 수시로 체크한다. 갑자기 아플 수 있는 아이의 상황이 언제든 생기기 때문이다. 전업주부 엄마들은 언제나 아이들의 비상대기조다.
어떤 친구는 아이를 갖기 위해서 축구를 쉬기도 한다. 수정체가 자궁에 붙었을 때 축구하다가 뛰면 수정체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게 의사의 말인지 알 수는 없었다. 축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로막는 것,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들이 아프기 전까지. 축구를 할 때 내가 됐다가 다시 엄마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오전 9시가 돼서도 고민하고 있었다.
“엄마 축구 가고 싶어?”라는 아이의 물음에
“엄마 축구 안 갔으면 좋겠어?”라고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응. 안 갔으면 좋겠어.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
“알겠어. 엄마 오늘은 축구 쉴게.”
‘엄마는 축구장 가고 싶어’, ‘네가 아파도 엄마는 운동하고 싶어’
라는 말이 마음 속에서 수없이 메아리쳐도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아이가 상처 받을까봐. 아직은 내가 돌보아야 하는 내 아이니까. 그 뒤에도 나는 계속 축구는 할꺼니까. 축구를 오래한 날들이 모래사장처럼 커진다면, 두 달에 한 번쯤 빠진 횟수가 작은 모래처럼 작아지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아이들도 건장한 청년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고 있겠지.
(덧붙이기)))))))))
+글을 쓰는 지금도 얼른 쓰라고 보채는 세 아이다. 어제부터 시작한 젤다 게임을 엄마와 하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아파도 게임할 힘은 있나보다. 퇴고 해야하는데.... 방학이라는 핑계로 조금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