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26도. 봄의 변덕은 땡볕으로 더 뜨겁게 축구장을 데우고 있었다. “우리 마누라가 이 날씨에도 축구한다고 나보러 미쳤대”라며 큰 소리로 선수들끼리 이야기 중이었다. 나는 여자이지만 내가 축구를 해보니 이해가 됐다. 땡볕에서도 축구는 할 수 있다. 그렇다.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 참가하는 축구장에는 날씨보다 뜨거운 노장 선수들의 열정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 운영진으로 서 있었다. 분명 그늘에만 있었는데 얼굴이 탔다. 봄의 햇살이 이렇게나 무서운 날이었다.
축구에 미친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축구대회
6월 2일 축구대회가 열렸다. 각 지역 자치단체 장의 직함을 걸고 하는 축구대회는 각 축구협회의 큰 행사 중 하나다. 이 축구대회는 지역에 소속된 축구회와 축구단들이 출전 자격이 주어지며 지역의 체육회가 주최하고 지역의 축구협회가 주관한다. 우리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축구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잔치다(이른바 축구에 미친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다).
축구경기기록관을 해보다
운영진들도 여러 직책이 있겠지만 나는 오늘 경기 기록관으로 참여했다. 경기 기록관이란 통계와 수치를 기록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모든 스포츠 경기에는 이런 운동경기기록관이 있다. 나는 축구경기 기록관으로 축구장 앞에 서 있었다.
각 지역마다 기록관을 하는 사람들의 출처가 다르겠지만 내가 속해 있는 지역에서는 대대로 여성 축구에서 대회 기록관을 배정했다. 때문에 여성축구에서 몸담고 있다면 기록관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사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주말 하루를 온종일 시간을 빼는 일은 아줌마인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여성축구에 들어온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기록관을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도 아이들 때문이었다. 어찌어찌 못 나가는 회원들이 많아져 나에게까지 기록관 일이 밀려왔다. 하는 수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었다.
노년부 축구경기에 배정
내가 배정받은 장소는 보조구장으로 쓰인 중학교였다. 보통의 축구장 크기보다는 작아 60대분들이 뛰기에는 알맞았다. 이 축구장에서는 노년부 60대의 다섯 경기가 열렸다. 토너먼트식 경기로 오전 10시부터 전/후반 25분씩에 쉬는 시간 10분으로 진행됐다. 하나의 축구장에는 심판 여섯 명과 진행요원 세 명이 배치되었다. 심판은 세 명씩 두 조로 나누어 번갈아 가며 경기에 들어갔다. 진행요원의 한 명으로 배정된 나는 기록관으로 이번 경기 운영에 함께했다.
축구 운동경기기록관의 하는 일
기록관의 할 일은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각 팀의 선수명단을 받아 출전선수 명단과 실제로 뛰는 선수가 같은지 확인해 검인(왼팔에 도장을 찍는 일)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경기보고서 작성이다. 경기보고서에는 팀명, 팀의 상하의 옷의 색, 전/후반 점수, 득점자, 교체자, 경고, 퇴장을 시간과 등번호 선수명을 함께 기록한다. 경기보고서는 심판보고서와 내용이 일치해야 한다. 서로 함께 시간과 선수를 체크하며 도와가며 작성한다. 또 마지막으로는 교체선수 명단이 들어오면 실제로 그 사람이 맞는지 다시 확인한다.
찾아가는 검인 서비스
여성축구대회에서 검인을 받으러 나갈 때 나는 얼마나 떨렸는가. 교체선수로 투입되던 그 순간을 기억했다. 하지만 운영진으로 본부석에 있을 때는 편안했다. 이기고 지는 전쟁터에 들어가지 않아서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인생은 로맨스라고 누가 그랬나. 선수명단과 출전선수 명단을 확인할 때 보통은 선수들이 본부석 쪽으로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60대 어르신들이라 본부석에서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운영진은 직접 선수들이 있는 곳에 가서 확인했고 심판들도 장비 착용이 적합한지를 가서 체크했다. 축구에서도 웃어른을 향한 배려에 이곳이 한국임을 다시 상기시켰다.
가장 흔하지만 함께 하는 운동, 축구
운영본부의 진행요원이 기록관 일이 처음이라 서투른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차근히 하나씩 설명해주셨고 하는 일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총 다섯 경기로 경기 기록지는 총 다섯 장을 작성했다. 축구장에서 오며 가며 만난 분들의 반가운 얼굴들을 보았다. 또 뜻하지 않게 동네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여자가 축구 경기에 참석했다는 일도 신기한 일인데 본부석에 앉아 있으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뭐 어찌 됐든 세상은 어떻게든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혀 있었다. 모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은 인원이 함께하는 운동이 축구라서,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다치면 상대편 우리 편 할 것 없이 파스 스프레이를 달려와 가져다준다.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들이 모여 하나가 된다.
심판도 사람이다
경기가 하나씩 끝나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짐과 함께 심판진들과도 친분도 나름 두터워졌다. 경기장에 선수들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심판 셋이서 축구장 가운데에 서 있다. 경기를 빠르게 진행하고 싶어서였단다. 가끔은 옐로카드를 놓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심판에게 본부석에 있는 심판이 카드 챙기라고 잔소리도 했다(옐로카드가 두 장이어서 이미 하나 들고 있었다고). 근엄했던 심판들의 겉모습과는 달리 심판도 사람이었다.
한 심판분은 단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에게 여성 축구심판을 해보는 일을 권유했다. 경기를 뛰는 체력과 달리기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쉰이 넘어서 심판 자격증을 땄고 오늘과 같은 대회에 하루 오면 일당 12만 원을 받는다고 일러주었다(대회마다 받는 돈의 액수는 다르다 했다). 돈을 생각하면 못 할 일이지만 그래도 축구가 좋아서 심판일을 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되는 것도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나의 기록관 일당은 7만 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체험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자기 팀을 욕하면 진다
경기에서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일수록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욕설이 오고 가기도 했다. 항상 말리는 사람들이 있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와중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심판도 있었다. 자기 팀을 욕하는 팀은 이기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경기의 법칙 중 하나였다. 팀워크가 중요했다. 어떤 팀들은 동점이 되어서 추첨으로 승패를 가르기도 했다. 두 개의 흰 봉투를 하나씩 뽑아서 승리하는 방식도 보았다(다른 구장에서는 입장식의 인원수 미달인 팀이 지는 형식으로 승패를 정하기도 했다. 이는 대회 규정마다 각각 다르고 몇 강까지 적용하는지의 여부가 달랐다).
팀 전원이 경기장을 나가 경기가 종료됐다
다섯 번째 게임이 진행 중이었다. 점수가 1대 1 상황에서 누군가의 발에 맞고 골키퍼 옆 라인으로 공이 나갔는데 심판은 코너킥을 선언했고 그 과정에서 골이 들어갔다. 그랬더니 한 분이 내 발을 맞고 나갔는데 어떻게 코너킥이냐 골킥이라며 우기다가 자기 분에 못 이기고 경기 도중 경기장을 나가 버렸다. 그 팀은 단체로 경기를 자체적으로 종료했다. 심판들은 대회 규정에 따라 10분을 기다렸다. 이후에도 선수들이 돌아오지 않자 운영 본부에서는 대회 규정에 따라 징계 처리를 할 계획이라며 심판들을 옹호했다. 사상 초유의 축구 경기를 직접 보았다. 내가 심판이라면 어땠을까. 심판이 뒤에도 눈이 달리지 않아서 다 못 볼 수도 있는데 심판판정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나도 억울한 팀이었으면 심판에게 욕을 퍼부었겠지...). 덕분에(?) 경기는 일찍 종료됐고 나도 예정 시간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