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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Jun 11. 2024

31. 경기 전 감독님의 시험에 속지 말았어야 했다

20240611 아줌마 축구 후보선수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하여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평소에 보던 얼굴들과 평소에 못 보던 얼굴들이 함께했다. 취미반과 선수반이 만난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축구 시합이 치러졌고 우리는 금요일 밤부터 그 지역에 도착해 있었다. 아이 엄마로서 2박 3일간의 외박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빠에게 온전히 아이들을 맡겼어야 했고 내 할 일을 미루고 나온 죄책감이 앞섰다. 팀에서는 이럴 때 바깥공기를 쐬고 하는 거라고 좋게 이야기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달랐다. 그래서인지 경기장에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남자들의 축구 경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이들도 축구복을 입고 엄마 손을 잡고 엄마 팀을 응원하는가 하면, 엄마가 뛴 경기를 본 아들이 “엄마”를 외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가 보지 않자 축구복 유니폼 등에 붙어있는 엄마 이름을 더 크게 불러 엄마를 뒤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숙소 주변에는 선수인 엄마와 아이들이 붙어있는 경우를 왕왕 보았다. 축구를 선택해도 육아까지 함께 이어지는 아줌마의 축구, 바로 여성 축구 시합 풍경이었다.      


    



부족한 실력은 팀에 피해를 주는 일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함을 아는 자들은 시합에 나가는 일이 팀에 피해를 주는 일이라 여겼다. 내가 경기를 뛰지 않음이 팀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뒷일을 열심히 챙겼다. 나가는 선수들을 위해 얼음을 사서 부어놓고 물과 간식을 정리하는 정리반이 되었다가 입었던 유니폼을 세탁하고 건조하기도 하는 세탁반이 되기도 했다. 더운 열기를 식히도록 경기를 뛴 선수들에게 물수건과 얼음물을 건네주는 스텝이기도 했다. 경기하는 도중에는 경기에 더 잘 뛰도록 선수 이름 하나하나 외쳐가는 응원단을 맡기도 했다. 스텝이 따로 많지 않은 이런 여성 축구에서는 후보선수들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왜냐. 후보인 나도 경기장에 발을 디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후보선수는 들어갈 대비를 항상 해야 한다     


후보선수는 계속 옆에서 몸을 달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나는 포기했다. 전 날 10분 정도 들어간 경험이 있어서였기도 했지만 옆에서 도울 일이 있었고 어차피 시합에 나갈 수도 없다는 내 생각이 컸다. 점수 차이가 커야 들어갈 수 있는데 점수는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몸을 풀었던 후보들은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있는 자리에서 계속 어필을 하는 게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감독님 눈 안에 들기는 참 어려웠다. 10년이 넘도록 사회생활과 단절하며 육아만 바라본 내가 알랑방구를 떠는 일이 한심해 보였다. 축구장에는 나가고 싶었으나 아첨은 하기 싫은 나의 생각은 경기장으로 가는 일과는 점점 거리가 멀게 만들었다. 하지만 축구단과 관련된 다른 사무적인 처리들은 내가 이 단체에 나름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 도움들이 후보선수로서의 자리로 이어진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는 출전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결국은 내 잘못이었다. 실력도 안 되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욕먹는 일이 끔찍이도 싫었던 거다. 못하는 내 실력을 들키기도 싫고 여기서 따로 시간을 내 더 노력하기도 싫었다.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육아한다는 핑계로 노력은 이게 최선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었다.           



짜장면 먹으라면서요     


감독님은 오전 시합이 끝나고 오후 경기가 있기 전 짜장집에서 이것저것 열 그릇 이상을 배달시켜놓고는 여러 일을 하고 있는 후보선수들에게 먹으라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코치님도 얼른 먹으라고 거들었다. 그래서 음식처리반의 느낌으로 먹었다. 그리 배고픈 시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오는 소리는 짜장면 먹은 사람은 시합에 못 나간다는 말이었다. 시합 중에는 먹는 거 아니라고 늘 이야기해오긴 했지만 강요 비슷한 강요로 먹으라고 해놓고 먹고 나니 시합 안 뛰고 싶다는 이야기로 알겠다고 말하니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을 시험했다는 데에 기분이 상했다. 물론 못 뛰게 하는 일이 미안해서 그런 시험으로 명분을 만든 셈이었다. 핑계에 내가 놀아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시험을 피해 간 이들은 경기를 뛰었다. 시키는 대로 한 사람들은 결국 그날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착한 나는 더 이상 싫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이기적인 인간인데 남들이 보면 한없이 착하다고 평가한다. 밖에서 화를 들고 와 집안에서 푸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힘들다. 40살이 되면서도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남들에게도 이기적으로 살고 싶었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견해다”

라고 에픽테토스가 말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나라는 인간이 경험해 온 색안경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일 뿐이었다.  



감독님께 의지를 보여야 했다     


축구 선수 후보로서의 자세는 감독님의 눈에 띄도록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공든 탑을 만들어놔도 경기 당일 몸을 가열하지 않고 미리 포기해 버리면 윗선에서도 눈치를 채고 아예 넣지 않게 되는 것이다. 축구선수로서의 할 일은 해놓고 몸도 풀어놓고 노력을 끝까지 하고도 감독님이 넣어주시지 않을 때, 그때는 감독님께 물어보려 한다. 그래서 내 다음 경기의 목표는 감독님의 시험에 빠지지 않기다. 또 후보선수로서의 자세를 잊지 않고 또 다음 경기까지의 남은 기간에 실력을 키울 예정이다. 우리 팀은 결승에 올랐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상대팀은 우리가 상대하기엔 너무나 높았다.         




몸도 마음도 밖에서도 안에서도 이리저리 치여서 얼마나 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건 꾸준함은 그 무엇도 이길 수 있는 큰 힘이라는 걸, 나는 믿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 꾸준함이라는 것. 툴툴 털어버리자. 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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