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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우 Jun 20. 2024

32. 축구공과 내 발밑에 N극 자석이 있다

20240620 공을 분명 받았는데 내 발밑에 없다

“금일 오전부터 극심한 폭염이 예상되오니
가급적 외출 및 야외활동을 자제하여 주시고,
충분한 수분섭취 등 건강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전부터 울려대는 안전 안내 문자에 시큰둥했다. 급변하는 날씨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날씨가 어쩌든 운동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날씨 앞에 장사는 없었다. 강한 땡볕에서 쉽게 지치는 건 불가항력의 힘이었다. 운동장에 나가도 1시간 이상을 지속하기는 힘이 배로 들었다. 그래서 수박을 먹기도 했고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 전 아이스크림의 섭취로 뛰는 내내 갈증을 유발했고 앞으로 운동 전 아이스크림은 절대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글도 쓰기 싫어졌고 그 핑계로 주말 물놀이용품만 챙기기 바빴으며 애들의 구명조끼에 자수를 새기기에 집중했다. 자수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에게 유튜브는 선생님이 되었고 갑자기 재미를 느껴 무작정 작게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하는 손 놀이는 참 재밌었다. 가끔은 그런 일도 필요한 날이 있다. 이런 손놀이는 복잡한 생각들을 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었다. 그리고 그런 날은 바로 오늘이었다. 그래도 뭐라도 써볼 겸 생각 없던 시간을 거쳐 축구하는 내내 무엇을 했나 생각하는 시간을 꾸역꾸역 만들었다. 항상 반성에만 그치는 나여서.     



받은 공은 어디로 갔을까


더위와 싸우는 요즘 아이들과 축구 경기를 많이 하면서 잘못된 버릇들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을 받을 때 내 발밑에 공이 없다는 점이다. 내 생각 속의 나는 분명 발을 뒤로 빼고 발목에 힘을 뺏다. 하지만 밖에서 보이는 나는 공을 발로 차고 있었다. 공을 차 냈다면 앞으로 치고 달려야 하는데 나는 제자리에서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쳤지만 공을 저 멀리 앞서 나가 상대방 수비수에게 빼앗기기를 반복했다. 경기 중에는 공을 빠르게 처리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코발로 쳐서 우리 편이 받지 못하는 빠르기로 공을 멀리 보내버리기도 했다.



공에는 자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내 발 인사이드에는 N극의 자석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저 축구공에도 N극이 달려있었다. 너의 발끝에는 가기 싫다는 NO의 대답을 가진 축구공이다. 서로 미뤄낼 수밖에 없는 사이. S극이 되고 싶었다. Superstar가 되길 바랐다. 나에게 오늘 공을 받을라치면 이미 멀리 가버려서 내가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아니면 받아도 내 공이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한 경기에 열 번을 이렇게 반복되다 보니 더위의 몸과 마음의 의지가 함께 지쳐버렸다.      



못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최근 영화 범죄도시4에서 활약한 박지환 배우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오디션에서 탈락이 잦아 무명 생활이 길었다. 그래서 자신의 영상을 찍어보았고 형편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막걸리를 먹고 영상을 찍었는데 자신의 연기에 감탄했고 그 뒤로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했다. 나는 내가 나오는 영상을 보기 차마 힘든데 배우들은 밥 먹듯이 자신의 영상을 보는 것에 대단함을 느꼈다.  

남들도 다 하는 일을 나만 못해서 되겠나 싶은 마음에 축구 경기 영상을 찍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내가 생각했던 움직임과는 정반대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경기 영상을 찍고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내 걸었음을 인지했다.



축구 경기를 영상으로 찍어보기


경기 중에는 걸어 다니기 일쑤였고 수비를 하러 내려가지도 않았으며 공을 받으러 우리 편에게 마중 나가지도 않았다.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빼앗길 공을 염려해 공격적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대비하고 있어야 할 나의 잔발(잔걸음)은 이미 망부석이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수비는 편하게 나에게로 들러붙었다. 그러면 우리 팀 동료는 나에게 공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우리 팀이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맨투맨(수비할 때 필요했다)을 하지 않았어야 했고 공이 나에게 올 것 같다고 공을 등지고 앞으로 뛰는 행동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하고 집중하는 축구하기


감독님이 말했다. 열심히 하는 건 알겠다고. 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뭘 하냐고 집중해서 하나라도 제대로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나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그날은 남편도 같은 소리를 했다.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생각은 언제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걸. 생각을 하면서 축구를 하라는 소리를 경기 중에는 왜 인지하지 못할까. 게으른 마음가짐은 집중하지 못해 실수하는 반복이었다. 실수도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나는 이제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느꼈고 더위의 모든 짜증의 기운을 모아 남편의 잔소리를 요리조리 피했다. 알고 있다고 늘 말하지만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지 못해 반복되는 실력에 나는 또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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