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비누

by 슬기롭군

누군가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 묵묵히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비누다.

순백의 색을 가진 비누는 얼룩지고 더러워진 것들을 다시 깨끗해질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남을 깨끗하게 할수록 비누의 크기는 조금씩 줄어들고, 마침내 한없이 작아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간다.


비누의 손길을 거쳐 맑아진 물건들은 한동안 조심스럽게 다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거칠게 쓰이고, 결국 또다시 얼룩을 남긴다. 그 순간 사람들은 잊고 있던 비누의 존재를 떠올리고, 다시 얼룩을 지우기 위해 찾는다.

비누는 늘 곁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지만, 사람들은 깨끗할 때는 그 가치를 잊는다.

오직 더러워졌을 때에야 그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이런 비누 같은 존재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짐을 덜어주고, 마음의 얼룩을 씻어내 주지만, 정작 그 자체는 점점 닳아 사라져가는 존재. 그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새로워지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존재일까.
남을 위해 닳아가는 비누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더러워졌을 때에야 비누를 찾는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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