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바람이 추억을 불러오고

어린날의 기억

by 슬기롭군

기분 좋은 밤바람이 분다. 여름의 열기를 밀어내고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 서늘한 기운이 마음을 스친다. 그 바람에는 묘하게도 그리움이 함께 실려 오는 듯하다. 가을의 밤바람은 언제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빠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던 길. 넓고 든든한 등에 얼굴을 파묻고, 옷에 배어 있던 담배 냄새를 맡으며 졸음에 겨워 있던 순간들. 그때는 몰랐다. 언젠가는 그 냄새마저 그리움이 될 줄을.


골목길을 비추던 주황빛 가로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희미해졌다. 불빛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아빠와의 기억도 멀어져 갔다. 아빠의 걸음에 맞춰 흔들리던 리듬, 담배 냄새와 함께 스며들던 온기,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바람 속에 남아있다.


이제는 다시 맡을 수 없는 아빠의 냄새,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빠의 넓은 등. 그러나 골목길 끝으로 사라져가는 가로등 불빛처럼, 그 기억들도 조금씩 멀어져 간다. 바람은 여전히 내 곁을 스치지만, 아빠의 등 위에 업혀 있던 나는 이제 기억 속 그림자처럼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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