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몽 21화

발열팩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by 슬기롭군

처음엔 아무런 기척이 없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작은 봉지.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고, 손에 들어도 아무 느낌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안에는 기다림이 있고, 준비가 있고,
무언가를 만났을 때 비로소 깨어나는 열정이 있다는 걸.


나는 그런 존재였다.

조용하고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지나며
내가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는지조차 잊은 채 살아갔다.

누구에게도 티 나지 않게, 겉으로는 평온하게.
하지만 내 안에는 언제든 불붙을 준비가 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의 손끝이 내게 닿았다.
말 한마디였을까, 따뜻한 눈빛 하나였을까.
작은 충격, 아주 작은 계기였지만
그 순간 내 안의 온도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알았다. 나는 아직 타오를 수 있다는 걸.
나는 누군가에게,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게조차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발열팩처럼.


차가움을 간직하다가, 어떤 만남 하나로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내 열정도 그렇게 깨어났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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