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몽 28화

동굴 속의 횃불

각자만의 작은 불빛

by 슬기롭군

깊은 동굴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방이 어두워서, 어디가 벽이고 어디가 길인지조차 분간되지 않을 때.
그럴 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손에 쥔 작은 횃불 하나뿐이다.
그 불빛은 아주 가까운 곳, 고작 몇 발짝 앞만을 비춘다.
빛이 퍼지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아서, 조금만 멀어져도 금세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 어둠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벽일 수도 있고, 절벽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자꾸 망설이게 된다.
이 길이 맞는 건지, 계속 걸어도 괜찮은 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늘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조심스럽게 실행에 옮기는 이유는
바로 이 두려움 때문이다.


빛이 닿지 않는 저 너머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끝에서 우리가 무엇이 될지를,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고 불안하게 살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딱, 한 걸음.
기껏해야 두세 걸음 앞까지.
횃불의 불빛이 닿는 만큼만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멈춰 서기보다는 계획을 세운다.
어둠 속을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그 작은 불빛 아래에서 현재의 위치를 살피고,
내딛을 수 있는 한 걸음을 생각한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한 의지를 담아 발을 내딛는다.
때로는 그 한 걸음이 두려울 때도 있다.
무언가에 부딪히거나, 발을 헛디디게 될까 봐.
하지만 그것이 삶이 주는 방식이기에
나는 그 불안 속에서 용기를 꺼내 든다.


삶은 거대한 동굴 속을 걷는 것과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작은 횃불을 들고 있다.
그 불빛이 아주 작다고 느껴질 때도,
그 빛마저 꺼져버릴까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빛이 닿는 만큼씩만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어둠이 걷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멀리까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계획을 세운다.
두려움 때문에, 준비하고 생각하고 또 멈춰 선다.
그리고 그 준비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삶은 늘 불확실하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빛이 닿는 만큼만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빛이 닿는 만큼만 보이더라도
그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길 끝 어딘가에는
아직 만나보지 못한 나의 세상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27화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