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이 미뤄졌던 강릉 이주 프로젝트가 재기되기까지
많은 이들이 지금도 묻는다. 왜 하필 강릉이었는지. 그리고 서울 근교 지역도 아닌 저 멀리 강원도까지 굳이 가야겠냐고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다와 소나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청정지역, 그리고 교육도 문화도 편의시설도 골고루 잘 갖춰진 도시이니까.
지난 2013년부터 일 년에 최소 두세 번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으로 강릉을 찾았다. 물론 다른 지역도 종종 들리긴 했지만, 강릉만큼 지속적으로 가본 여행지는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인들은 갸우뚱거렸다. 많고 많은 지역 중에 또 강릉이냐고, 질리지도 않냐고 말이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강릉은 완벽함 그 자체예요. 그리고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더 많아요." 그만큼 우리 가족의 강릉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강릉과의 첫 인연은 업무차 출장이었다. 당시 맛집 요리 컨텐츠 포털사의 컨텐츠팀에 근무했는데, 식품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곳곳의 지자체들까지 범위를 넓혀 활발한 업무 제휴를 진행 중이었다. 그 시작이 강릉이었고, 강릉의 맛집과 대표 특산 음식을 홍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담당 공무원이 지역 업체가 아닌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서울의 우리 회사를 선택해 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인데, 이런 사례는 나름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좋은 기회를 준 강릉 관계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회사에도 인정받을 만한 선례를 남겨야 했기에 '내 기필코 엄청난 성과를 보여주리라!'는 각오를 다지며 열정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했다.
그 시절에는 KTX도 없었고, 양양고속도로도 개통되기 전이라 고속버스를 타고 오고 가는 길은 고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이 엄마였기에 당일 출장을 마쳐야만 했고, 평소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발은 기본이요 정신없이 미팅 두세 건을 마치고 밤늦게서야 겨우 돌아오는 고된 일정이었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참 가벼웠다. 잠시나마 볼 수 있는 바다도, 입에 착 붙는 감자옹심이나 시원한 물회등 이곳만의 특별한 음식을 맛볼 때면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강릉의 바다는 내가 그동안 알던 모습과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그동안 서울 근교의 서해안 바다만 주로 갔던 터라, '바다'하면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뒤엉켜 정신없는 분위기가 뇌리에 박혀 있었고, 어딜 가나 주차난으로 여행 내내 험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강릉은 훨씬 쾌적했다.
이렇게 한적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바닷가가 있었다니! 여기에 울창하고 푸르른 소나무숲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이런 황홀한 자연환경이 대체 우리나라가 맞단 말인가? 해외 못지않은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매료시켰다.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연스레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그렇게도 골치 아프던 일도, 마음을 짓누르던 삶의 무게도 강릉에서 만큼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빽빽한 건물숲에서 치열하게 기계적으로 일하던 서울에서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이렇게 멋진 도시인 강릉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일종의 사명감마저 들 정도로 강릉에 대한 호감은 날로 강해졌다.
좋은 건 함께해야 더 값진 것 아니던가. 이후 가족들과 함께 이 핑계 저 핑계로 강릉땅을 밟았다. 여름휴가로, 공휴일 찬스로, 개교기념일 찬스로 등등. 하다못해 평창 여행 후 서울로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에 반나절이라도 강릉을 들렸다.
이러니 '혹시 숨겨둔 남친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의심이 어찌 보면 합리적이었겠구나 싶다.
그렇게 강릉에서 보낸 아름다운 순간들이 좋은 추억들로 켜켜이 쌓여갔다. 까르르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신나는 모래놀이, 소나무숲 산책 등등. 사진으로 미처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그러지 말고 진짜 강릉에서 살아볼까? 아이들 어릴 때 한 1~2년만 이라도."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 근데 당장 회사는 어쩌고?"
"음... 그럼 이번 5월에 공휴일이 많으니까, 미리 여름휴가 다녀온다 치고 좀 길게 머물러보는 건 어때?"
"오 괜찮은데? 여행자 말고 현지인처럼 살아볼 수 있겠다."
이렇게 의기투합하여 지난 2021년에는 8박 9일 동안 강릉에 길게 머물러 보기도 했다. 여유를 가지고 이 동네 저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관광객이 아닌 로컬의 시선으로도 강릉이라는 도시를 탐색해 보았다. 새벽 시장에서 장을 봐 와서 숙소에서 밥을 해먹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거주지도 몇 군데 물색해 보았다. 마치 강릉 이주 예행연습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순탄할 리가 없지.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은 아이들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해변가에서 모래놀이를 했던 게 화근이었는지 고열을 동반한 몸살이 난 것이다.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응급실과 보건소를 드나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혹시 몰라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집콕 신세로 있기도 했다. 헤르페스 구내염에 걸린 첫째 아이는 컨디션이 더 말이 아니었다. 여행지까지 와서 죽을 끓이고, 간병을 하며 밤을 지새울 줄이야.
혼이 쏙 빠질 정도로 혹독한 나날을 보내고 나니 강릉 타령을 하던 우리 부부도,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라며 꼬리를 내렸다. 일상으로 돌아가서 별 탈 없이 평안하게 지내다 보니 한동안 강릉앓이가 쏙 들어갔다.
기약 없이 미뤄졌던 우리의 강릉 이주 프로젝트가 다시 재기되기까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가능했다. 잔인했던 에피소드들도 '그땐 그랬지'하며 웃으며 추억하게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좋았던 기억들만 남게 되는 걸 보니, 역시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에 틀림없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서울생활에 지쳐갈 때쯤, 다시 강릉에서의 찬란했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오랜 세월 검증된, 그야말로 안전빵인 강릉이 있었음에도 탈 서울을 결심한 후에 쉽사리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물론 답은 거의 정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돌다리도 두들겨 건넌다는 심정으로 신중하게 다른 후보지를 물색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도 미련도 없을 테니까.
경기도권은 애초에 후보로 두지 않았다. 서울과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워낙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지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재빨리 서울로 복귀할까 봐도 그런 것도 있다. 결심이 너무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좀 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이 낫다 싶었다. 또 하나, 지인들이 너무 자주 찾아오면 생활에 지장을 받고 불편할 것 같았다. (배부른 소리지만, 나도 남편도 인맥이 넓은 편이다.)
그렇다면 춘천은 어떨까? 고속도로도 잘 갖춰져 있고 itx까지 있으니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성이 훌륭한 곳이었다. 부동산에 미리 연락해서 약속을 잡고 살만한 곳을 들러보기도 했다. 신축 단독주택 단지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고, 예산도 그럭저럭 조건이 괜찮았지만 초중고가 도보 가능 거리에 모여있는 지역을 찾기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물론 아파트를 찾았다면 쉬운 일이었겠지만. 게다가 춘천은 겨울에 워낙 추운 곳이라 기후 조건을 고려했을 때 아쉽지만 탈락.
모든 이들의 로망인 제주살이는? 제아무리 천혜의 자연환경이라 한들, 타 지역인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즉 텃세가 심하다는 이미지가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비행기가 아니면 쉽게 오고 갈 수 없지 않던가. 4인 가족이 일 년에 최소 2~3번 서울을 방문한다고 하면 항공료도 만만치 않을 테고 말이다. 제주는 여행지로는 완벽했지만, 거주지로는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여행을 하며 좋은 기억이 남았던 여수도, 부산도 후보에 올랐지만, 강릉을 대체할 만큼 파워풀하지는 않았다. 그래, 우리의 운명은 강릉이구나.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는데, 괜히 고민한 것 같아 머쓱했다. 자차로든 KTX로든 쉽게 서울을 오갈 수 있는 편리한 교통 컨디션에, 개성 있는 전통 먹거리들은 물론 근사한 카페가 즐비한 매력적인 도시 강릉. 이런 강릉에 살게 된다면 바다도 실컷 보고 여름에는 바다 물놀이도 맨날 즐기리라.
어쨌거나 이제는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으로 강릉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살 집을 구해야 하고, 교회도 알아보고 적응해야 하고, 아이들 전학도 해야 하고, 하다못해 병원이고 미용실이고 다시 개척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당분간 주말 부부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기분도 들었다.
익숙한 삶의 터전을 떠나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과연 우리 가족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