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왜 몰랐을까, 평범한 일상이 이토록 축복이라는 것을
공휴일과 주말, 그러니까 남들 쉬는 날에 나도 쉴 수 있는 당연했던 일상이 요새는 꿈만 같다. 뒹굴거리며 늦잠을 자고 출근과 등교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여유로운 일상. 화려한 브런치를 준비해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오늘은 어디를 놀러 갈까, 무얼 해볼까 고민하고, 온 식구가 다 같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있는 어찌 보면 뻔하고 평범했던 주말이 많이 그립다.
늘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특히 설 추석 연휴처럼 길게 쉬는 날이 이어질 때면 더욱 그렇다. "엄마, 내 친구는 이번에 일본 여행 간대, 우리는 언제쯤 갈 수 있어?"라는 딸의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쓰려온다. 예전 같았으면 우리 식구도 황금연휴를 놓칠세라 여행을 떠나고도 남았을 텐데. 이제는 식재료 발주 전쟁을 치르고 각종 매장 용품을 차질 없이 구비해야 하는 이른바 '전투모드'로 돌입해야 하니 성수기 시즌에 여행은 당분간 불가능한 일이다.
최대 생산량을 위해 온 힘을 쏟아 풀가동하다 보면 자연히 체력은 바닥이 된다. 안팎으로 신경 쓸 것은 많고, 에너지는 늘 고갈된다. 수면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삶의 질도 바닥을 친다. 집에서는 골골대며 힘들다는 푸념을 연신 해대는 내 모습이 나 조차도 민망할 정도. 아, 이러려고 강릉에 온 것도, 이러려고 자영업을 시작한 게 아닌데!
익숙하지 않은 일을, 그러니까 처음 도전해 보는 일을 그것도 비 전공자가 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늘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어리숙한 초보 사장은 '이게 맞나?'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랄까(놀랍게도 지금도 그렇지만). 늘 마음속에는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나 수백 번 고민이 된다. 시즌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 막상 그 결과가 예상보다 영 아닐 때도 있어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물론 좋은 결과를 얻을 때도 있긴 하지만 대중의 기호를 파악하고 구미를 자극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아무튼, 카페 운영 초반에는 퇴근 후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동네 편의점 혹은 빵집을 들리기라도 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매장에 갇혀 지내다 보니, 5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의 상점을 다녀오는 일도 마치 큰 일탈처럼 느껴졌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이라도 하고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다 보면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카페 오픈 후 꼬박 1년을 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꼼짝없이 우리 부부가 내내 매장을 지켰다. 물론 지금에 비하면 훨씬 덜 분주했어도 모든 게 서툰 우리로서는 그저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집안 살림이나 식사 준비 등에서 부모님께 큰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내가 감당할 몫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남편, 그리고 부모님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 보는 중간에 낀 입장에서 난처할 때도 많았다. 괜히 나 때문에 부모님이 고생하시고, 긴 세월이 저당 잡힌 것 같아 괴로웠다. 그러니까 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한 번은 정기휴무를 앞둔 날이었다. 다음날 판매할 두부티라미수를 만들지 않아도 되기에 나에게는 꽤나 큰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찬스가 있기에 미친척하고 남편에게 마무리를 맡긴 채 일찍 귀가해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날따라 손님들의 발걸음도 평소보다 덜했기에, 두 시간 정도는 남편 혼자서 손님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제안에 흔쾌히 오케이 해주고 먼저 보내준 남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차가 한 대였기에 걸어서 갔었는지, 자전거로 갔었는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제법 날씨가 쌀쌀했던 초봄이었음에도 집까지 한걸음에 도착했다.
예상치 못한 나의 등장에 학교에 막 다녀온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했다. 해가 아직 떠 있는 이른 시간에 엄마가 눈앞에 나타나다니, 놀랬만도 했을터.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부모님도 내심 좋아하시는 듯했다. 엄마는 저녁식사를 막 준비하려던 참이셨는데, 내가 해 먹을 테니 괜찮다며 엄마의 노동력 투입을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 일단 부모님과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을 보며 오랜만에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동안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런 여유를 누리지 못했을까.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가시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을 쿨하게 거절하시고, 부모님께서는 서둘러 본인들의 처소로 돌아가셨다(우리 집에서 약 10분 거리의 오피스텔에 거주하심).
왠지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아깝다는 생각에, 일단 아이들과는 의기투합하여 집 근처 햄버거 매장으로 향했다. 생각지 못했던 조합, 그러니까 평일 이 시간에 엄마와 함께 외출해서 간식을 먹는 평범한 일상에 이토록 대만족 할 일인가? 아이들은 내내 흥분 그 자체였다. 서로 먼저 이야기하겠다며 나서는 통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남매의 얼굴에는 마치 '나 지금 행복해서 미치겠어요.'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은 제로 게임을 하며 우리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햄버거를 순식간에 먹어치우며 우리는 기분 좋게 재충전을 했다. 이 분위기 그대로 다정하게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집으로 복귀할 줄 알았으나, 그럼 그렇지! 관성의 법칙에 의해 또 엄마 없이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첫째는 먼저 집에 가서 쉬겠다며 유유히 사라졌고, 둘째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겠다며 부리나케 달려갔다는 사실.
이게 뭔가 싶어 조금 허무한 생각도 들었으나 이참에 잠시나마 나도 내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었다. 기껏해야 20~30분 남짓 바닷가 산책이었지만, 엄청난 힐링타임이었다. 이런 자유를 평일에 누려보다니 이게 웬 횡재인가!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첨언하자면, 지금은 주 2회 휴무이지만 이때만 해도 주 1회 휴무였다. 그렇기에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매장에서 다음날 영업 준비로 또 몇 시간 일 하다 보면 하루가 후딱 가버렸다. 그래서 휴일이라고 해서 제대로 여유를 누릴 새가 거의 없었다.)
이 모든 게 남편의 배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두고두고 고마운 마음이다. 나도 아이들도 귀한 시간을 누렸고, 이 행복한 에너지가 또 남편에게도 전달되었으니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지 않을까 싶지만.
예전 같았으면 전혀 기억에도 남지 않았을 법한 별거 아닌 일상. 하지만 이때의 특별했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로가 너무 간절히도 바라고 원했던 순간이라 그랬을까? 이 날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도, 향긋했던 쑥 내음도, 유독 푸르게 느껴졌던 소나무숲도, 아름답게 파도가 춤추던 바다도 모든 게 다 감동이었다. 늘상 마주하던 풍경 하나하나에도 의미 부여가 되었던 걸 보니 어지간히 좋긴 좋았나 보다.
다행히 그 후로 카페 운영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집도 매장 근처로 이사하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모님께서는 다시 서울로, 일상으로 복귀하실 수 있었다. 여전히 우리 가정을 생각하며 노심초사하시긴 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보며 대견해하신다.
어쨌거나 요새는 아르바이트생들과 짐을 나눠질 수 있어서 이전보다 훨씬 형편이 나아졌다. 예전에 비하면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도 훨씬 늘어났다. 아침, 저녁에만 매장에 가기에 낮시간에는 대부분 집에 있을 수 있다. 하교한 아이들을 반겨줄 수도, 간식을 챙겨줄 수도, 집안일을 할 시간도 생겼으니까. 그리고 주말과 공휴일에의 낮 시간에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따로 또 같이 보내는 시간에 점차 서로 익숙해지면서 우리도 이에 맞춰서 워라밸을 조절해가고 있다. 연휴 전후로 웬만해서는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종종 외식 찬스를 쓰거나 대충 먹는다.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돈 쓸 때 돈을 쓰고, 힘을 좀 빼고 산다. 일상에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며 최대한 가족들과 누리려고 애쓴다. 이렇게 삶의 균형을 조금씩 맞춰가는 중이다.
유니폼을 입어야 하기에 맨날 똑같은 옷차림에, 신발은 편한 운동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멋이고 뭐고 질끈 머리를 묶고 일을 해야하는 현실에 툴툴거리게 된다.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폼나게 미팅하러 다니던 직장인 시절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을 하며 버틸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묵묵히 참아내주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아이들에게도 늘 고마울 뿐이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이 은혜이고 축복임을 깨닫는다. 자꾸 불평하지 말고 감사한 것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과연 언제쯤 매일 반복되는 무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믿음직스러운 직원들에게 실무를 위임하고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매장을 넓히고 2호점, 3호점을 내는 날이 올까? 생산 라인을 구축해서 온라인으로 판매를 넓히고 팝업스토어에 진출할 수 있을까? 자녀들이 독립해서 부모의 개입 없이도 알아서 척척 생활하게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언제쯤 주말과 공휴일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될까? 통장 잔고를 걱정하지 않고 사는 날이 올까?
부질없지만 이렇게 상상으로 나마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보기도 한다. 간절히 바라다보면 언젠가는 꿈에 도달할테지. 하지만 막상 이런 날이 온다 한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또 의문이 든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결핍이 있으면 있는 대로 또 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게 순리이지 않을까 싶다.
뻔한 말이지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게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인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지라, 언제 또 어떻게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질지 모르는 일 아니던가.
아무튼 조금씩 나도 철이 들고 성숙해지나 보다. 행복의 기준이 대폭 낮아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무리하게 욕심부리지 말고, 나만의 속도와 방향성을 유지하며 소신 있게 길을 걸으며, 작은 일에도 경탄하며 감사하며 살기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