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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Oct 14. 2022

부부 사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종전 선언!

MBTI 궁합 결과를 뒤집어 버리겠다는 오기 발동

MBTI를 믿지 않았다. 아니 지구상의 인구가 79억 7천 명이 넘는데 고작 16가지 타입으로 나누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렇다, 나는 MBTI에 가장 무관심하다는 ESTJ유형이다.) 하지만 'MBTI궁합'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고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툭하면 싸우는 우리 부부의 결과는 빨간색, 그러니까 ‘궁합 최악’이라는 것이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마치 건강이 안 좋아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암 말기 선고를 받은 기분이랄까? 처음에는 "이거 만든 사람 천재 아님?", "생각보다 MBTI가 과학적이네!"라며 감탄했다. 그리고는 "그래 우리 부부가 그럼 그렇지."하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결과를 곱씹어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도 서로 안 맞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만나 분명 사랑을 했었고, 결혼까지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빼박이다. 앞으로 남은 60여 년을 계속 이대로 살다 가는 불행 지수가 몇 단계 레벨 업 될 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MBTI 결과대로 꼭 사이가 나쁘란 법이 있나? 어디 한번 결과를 뒤집어봐야지!'라는 청개구리 심보가 들었다. 약간의 실험 정신, 그리고 오기 발동으로 지금까지의 그렇고 그런 사이를 청산하고 앞으로 남편과 잘 지내기 위해 뭔가 적극적으로 노력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요즘 부부관계의 위기의식이 감돌던 시기였다. 나는 아이들 재우면서 같이 10시~11시 사이에 일찍 잠이 들고 5~6시에 일어나는 패턴으로 아침시간을 길게 쓰는 편이었다. 반면 남편은 저녁에 운동을 하거나 티비를 보며 쉬다가 12~1시쯤 잠들어서 7시 전후로 일어나는 패턴이다. 서로의 생활 패턴이 다르기에 물리적으로 마주칠 시간이 적어지니 세상 편한 게 아닌가! 싸움이 확 줄어드는 건 기본이요, 감정이 상할 일이 없다 보니 괜히 마음 고생하는 날도 확 줄었다. 새벽 기상의 장점인 ‘시간 관리의 효율성’은 둘째 치고, ‘남편과 덜 부딪치게 됨’ 이라는 예상치 못한 추가적인 소득이 있을 줄이야. 서로 대화를 안 할수록, 서로 안 마주칠수록 평화로워진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서글펐다.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사건이 더 있었다. 자녀들이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요새 영 거슬렸다. 뭔가 아빠를 하찮게 여기거나 마치 친구를 대하듯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결국 원인 제공은 나였다. 그러니까 평소 내가 남편에게 대하는 태도나 말투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인식이 전이된 거였다. 이건 전적으로 내 탓임을 인정한다. 알게 모르게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배우고 있었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 안의 서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돈 벌어 오는 가장 아닌가! 


어이없게도 날파리 사건도 한 몫 했다. 우리 집 거실은 산을 마주하고 있어서 여름에는 유독 날파리가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해가 지면 문을 꼭 닫아야한다. 하지만 9월 초쯤이었을까? 여름 더위도 한풀 꺾였겠다, 공기도 좋겠다, 환기도 시킬 겸 캄캄한 밤에 잠시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혹시 몰라 불빛을 보고 날파리들이 몰려올까 봐 거실에 불도 다 껐다. 그런데 30분도 지나지 않아 환기를 마치고 불을 켜보니 아뿔싸! 벌레가 수백, 아니 수천수만 마리가 거실 천장에 붙어있다. 방충망을 뚫고 들어왔을 줄이야. 


난생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에 정신이 아찔했다. 일단 아이들을 안전하게 방으로 대피시킨 후 나는 전기 모기채를 쥐고 온 힘을 다해 날파리를 물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휘둘러봐도 1/100도 소탕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어느새 땀은 줄줄 흐르고 앞이 캄캄했다. 그야말로 초 비상상황. 현 상황의 위기감을 인지한 아이들은 운동 중이던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S.O.S를 쳤다. 당시 나는 남편에게 전화할 심적 여유 조차도 없었다. 오직 1분 1초라도 빨리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 했기에. 얼마 후 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침착하게 그리고 재빠르게 상황을 종결시켰다. 날파리를 처리하던 그 뒷모습이 세상 섹시하고 멋질 줄이야!


30여분 동안 죽어라 달려들어 싸워본 들 내 혼자 힘으로는 전혀 상황이 진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등장으로 참 이상하게도 금세 사건이 해결되었다. 당시 나는 충격과 공포에 질려버려서 집을 버리고 딴 데로 이사 가고 싶었던 심정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직 상환해야 할 주택 대출금이 아직 25년은 더 남았다). 그렇다, 위기를 겪으며 피어난 동지애는 실로 위대했다. 그 후로 남편의 존재감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티비에서 방영 중인 부부상담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로 미워하고 갈등을 겪는 부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배우자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나, 거침없는 언행을 보며 자기반성이 되기도 했다. 내 코가 석자인데, 왜 남의 부부 사이가 나쁜 건 더 안 좋아 보이던 지. 전문가의 솔루션을 통해 갈등이 해결되고 사이가 원만해지면 시청자로서 한시름이 놓였다.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잘 지내는 모습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가족이든 구성원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돌봐 주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자, 삶의 이유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부부는? 우리 가족은? 나의 한없이 부족한 부분을 직시하게 되면서 문제 개선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이렇게 몇 가지 사건으로 촉발되어 <부부 사이 회복하기> 프로젝트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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