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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Apr 17. 2023

이래서 우리가 안 맞는 거였구나

좁혀지지 않는 당신과 나 사이의 간극이란

"어쩜 이렇게 나랑 잘 통하지?"라고 생각했던 전 남친. 현 남편이 되어 16년째 같이 살다 보니 느낀 점, "이렇게 나랑 모든 면에서 안 맞을 줄이야!" 1시간 전화통화가 1분처럼 느껴졌던 달달한 연애 시절에는 몰랐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총체적 난국일지 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부러 이렇게 다르게 설계하기도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는 참 다르고, 안 맞는다.


네 아이의 엄마이자 개그우먼인 정주리가 어떤 방송에서 말하기를, 휴대폰에 남편의 이름을 '만병의 근원'이라고 저장했다고 했다. 너무 공감이 되어 박수를 치며 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최근에는 '천벌'이라고 바꿨다고 한다.) 이처럼 남편이라는 존재는 어느 집이나 감당하기 버겁나 보다. 


"어머, 말도 마! 주변에서 다들 사위 삼고 싶다고 줄을 섰었어!"라는 시어머니의 입장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막상 같이 살아보니 죄송하지만 아닌 거 같다고 반박하고 싶다. 언제나 크고 작은 갈등이 늘 우리 부부 사이에 산적해 있었다. 갈등의 원인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서로 다름'에 있었다. 다른 것이 틀리다는 것이 아닌데, 늘 각자의 잣대에서 판단하고 상대방을 비난하기 일쑤였다. 


도대체 뭐가 그리도 달랐을까? 객관적인 스펙이 다른 건 물론이요, 각자 자라온 환경적 혹은 문화적 차이로 인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같은 사건을 맞닥뜨려도 해결하는 방법에서 생각도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이왕 이렇게 된 것, 각 분야별로 어떤 점이 그리도 달랐는지 한번 따져 보기로 했다.




1. 가족 관계

나는 위로 두 살 차이 나는 언니가 있고, 남편은 위로 아래로 각각 2살 차이가 나는 형제들이 있다. 같은 둘째여도 차이는 확연하다. 나의 경우 취향과 호불호가 확고한 반면, 남편은 위로도 치이고 아래로도 치였던(중간에 낀 자의 고달픔) 경험 때문인지 좀처럼 본인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이다.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자라온 환경을 고려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언니와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형제들끼리 그렇게 친밀한 편은 아니다. 물론 이는 남녀의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남편의 삼형제는 공식적인 가족행사를 제외하고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남편이 어머니와는 자주 통화를 하며 딸 같은 아들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 자매와 친정 엄마까지 세 모녀는 주로 평일 오전에 만나는 편이기에, 결론적으로 보면 양가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네 식구가 중심이 되어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우리 집 자매들은 그 흔한 깁스 한번 한 적 없을 정도로 평탄한 나날이었던 것에 반해 남편의 형제들은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앞니가 부러지기도 하고, 종종 형제들끼리 주먹다짐도 일어났을 정도이니까. 고로 비교적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이 대부분이었던 나는 계획적인 편이고 예측 불가능한 일을 싫어한다. 그래서 긴급 상황이 발행하면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한다. 하지만 다양한 변수에 노출되는 게 일상이었었던 남편의 경우 즉흥적이고 무계획인 편이다. 역으로 보면 어떤 변수가 발생해도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잘 대처하는 장점이 있다. 이런 다름으로 인해 주말에 할 일을 정하거나, 여행을 가는 등 뭔가를 계획할 때는 내가 빛을 발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맞닥뜨렸을 때는 남편이 저력을 발휘하곤 한다. (아, 이래서 우리가 부부구나!)



2. 가족 형태

‘두자매 VS 삼형제’라는 큰 차이점과 더불어 ‘외벌이 VS 맞벌이’도 큰 이슈이다. 먼저 '청결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는 것. 설거지나 청소를 웬만큼 깔끔하게 하지 않는 이상 친정 엄마의 기준에 통과되지 못하는 건 기본이요, 옵션으로 폭풍 잔소리폭격이 뒤따랐다. 이토록 엄격한 우리 집에 비해 남편은 집안일을 돕는 자체만으로도 부모님께 큰 격려를 받았다. 시댁에서 남편은 '설거지의 달인'으로 통했는데 막상 설거지하는 걸 보면 과대평가된 실력에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남편은 어린 시절 부모님께 "손 씻어라.", "이 닦아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나는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왔거늘!) 아무튼 그러다 보니 지금도 우리 부부 사이에 청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예상하다시피 주로 치워라, 닦아라 잔소리하는 건 내 쪽이고, 대충과 적당히를 외치는 쪽은 남편이다.


'식사의 의미’에서도 큰 차이를 발견한다. 맞벌이로 부모님들이 늘 시간에 쫓겨 사시는 데다가, 산만한 덩치의 삼 형제의 어마 무시한 먹는 양을 감당하기 얼마나 부담스러우셨을까 싶다. 소풍이라고 가는 날이면 최소한 깁밥 40줄은 기본으로 싸셨다고 하니 우리집과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음식을, 어떤 조리법으로 먹느냐 따위의 논의는 사치였을 테고, 한 끼 한 끼 챙기는 것 만으로도 참 대단한 일 아니었을까? 반면 우리집은 아침식사부터 밥, 국, 반찬이 곁들여진 한차림상이 기본이었다. 친정 아빠가 비행 때문에 새벽같이 나가셔도 무조건 식사는 거르지 않고 챙기셨고, 언니와 나는 아무리 졸려서 더 자고 싶어도 아침밥을 건너뛰고 등교하는 일은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밥심으로 사는 우리 가족은 그래서 늘 먹는 게 화두이다. 아침 먹으며 저녁에 뭐 먹을까 진지하게 토론하고, 요새 어떤 음식이 땡긴다, 엊그제 티비에 나왔던 그 맛집을 가보자 등등 맨날 서로 먹는 이야기다. 물론 친정 엄마는 전업주부로서 감당할 수 있는 과제를 최선을 다하신 것인 거고, 시어머니는 맞벌이 상황에서 나름대로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최선을 다하신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각자 처한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쨌거나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맛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경험했고, 남편은 그 어떤 음식도 군소리 없이 골고루 잘 먹으니 각자의 장점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먹는 주제로 자주 다투는 이유는? 나는 '먹는 일'이 인생의 즐거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로 바쁘고 입맛도 없다는 이유로 내리 며칠을 샐러드만 점심으로 먹는 모습이 영 이해가 안된다. 회사 생활에 점심시간은 직장인의 유일한 낙 아니던가? 무슨 미인대회 출전이라도 준비하는 거냐, 식단만 보면 20대 여대생인 줄 알겠다고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이러한 남편의 환경적 요인을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는 잠을 잘 못 자고, 조명이나 소음은 물론 침구류 등 수면 환경에 꽤나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여행, 수련회 등 자는 곳이 바뀌면 어김없이 잠을 설친다. 고로 집을 떠나면 늘 피로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계절별로 최적의 침구로 칼같이 싹 교체되었고, 침실은 늘 쾌적한 상태였다. 반대로 남편은 이런 면에 있어서는 참 수더분하다. 언제 어디서든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삼형제를 일일이 세심하게 챙기기 힘드셨을 테니 본인이 알아서 제 살길을 찾은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남편은 결혼 전까지 2층 침대를 분리한 연식이 오래된 침대에서, 사계절 같은 이불에, 매트리스도 변변치 않은 환경에서도 잘만 잤다고 한다. 이러한 특훈 덕분인지 심지어 베개가 없이도, 이불 하나 안 깐 맨바닥에서도 잘만 잔다. 종종 남편이 방전된 채로 소파에서 뻗어 있을 때 옆에서 시끄럽게 청소기를 돌려도, 아이들이 싸움 말리느라 소리 소리를 질러도, 세상 모르고 쿨쿨 잔다. 때로는 얄밉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수면권을 확보하니까.


그래서인지 침구류를 새로 장만하려고 하면 괜한 소비 아니냐며 태클을 걸어오고, 햇빛이 쨍한 날 큰 맘 먹고 대대적으로 이불 빨래를 하려고 나서면 “이렇게 날씨가 좋을 때는 밖에 나가 놀아야지 쓸데없이 집안일을 왜 해?”라고 핀잔을 주던 일이 떠올랐다. 아,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 남편 입장에서는 세상 쓸데없는 노동이나 불필요한 지출로 여겨질 수 있었겠구나 싶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3. 주요 거주지역

자라온 환경을 살펴보면, 나는 당시 1기 신도시였던 일산에서 20살 초반까지 살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정 형편도, 학구열도 다들 고만고만한 분위기였다. 물론 일산 내에서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전학을 갈 만큼 먼 거리 이동은 출생 이후 쭉 방화동에 살다가 일산으로 왔던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번이었다. 공부 욕심도 없고, 리더십과도 거리가 멀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주로 강남 8학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치열하게 공부했고, 반장도 꽤 여러 번 했었다. (그나저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만난 걸 보면 공부 시간 대비 효율은 내가 높았던 걸로)


거주지 특성이 학업 분위기를 좌우하기에 입시도 잠시 언급해야겠다. 재수는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의지도 있었지만, 우리 자매는 공부에도 별 관심이 없던 터라 나와 언니는 수학능력시험을 미련 없이 딱 한 번에 끝냈다. 친정 아빠 회사에서 복리후생으로 학비가 100% 지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가장 학비가 낮은 인문대로 진학했다. (여전히 부모님은 아쉬워하신다. 한 명이라도 학비가 제일 비싼 의대 정도는 갔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죄송합니다, 성적이 안 돼서) 당시 한참 어학연수 붐이었지만 부모를 떠나 누리는 자유에 별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 한 자매는 국내 어학원만 다녔지, 해외 어학연수는 갈 생각도 안 했다. 심지어 언니는 학부 때부터 휴학 한번 하지 않고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쭉 마쳤다.


비교적 큰 이슈 없이 단순했던 우리 자매의 대입 이슈와 대학 시절에 비해 남편의 삼형제는 수능만 따져봐도 부모님께서 7년을 내내 뒷바라지하셨다. 대입을 위해 희생된 경제적인 대가도 어마어마했을 터. 형제간 차이는 있지만 재수, 삼수, 편입을 거쳤고 중간에 전공을 변경하기도 했으며, 각각 공대/인문대/미대에 다양하게 진학하였다. 게다가 형제들끼리 돌아가면서 군입대와 어학연수로 휴학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남편은 군 시절 이상하리만큼 보직이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고 한다. 대입에서 시작해서 주제가 좀 멀리 가긴 했지만 아무튼 남편의 삶은 다이내믹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나의 가치관과 규칙 따위는 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남편의 가치관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눈치를 보기 여념이 없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남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기에 이런 일로 자주 말다툼이 시작되곤 한다.


또한 같은 일을 해도 절대로 설렁설렁하는 법이 없이 미련할 정도로 내내 몰입해서 회사 일을 하는 걸 보면 가끔 나는 답답하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일에 몰두하다가 쓰러져서 구급차 타고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으니까. 아니, 월급쟁이가 그렇게 죽어라 일한들 누가 알아주며, 어차피 월급은 똑같은 거 아닌 거냐고. 마치 개미와 베짱이처럼 우리 부부의 스타일은 각각 다르다. 적당히 놀다가, 일할 때 바짝 하는 나와는 달리 점심시간도 아까워하며 몸이 부서져라 올인하며 치열하게 일하는 남편. 책과 문제집이 구멍이 뚫리도록 경쟁적으로 공부했던 그 습관이 남아서 그런걸까? 이제는 몸 좀 사리면서 일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런 다양한 경험이 쌓인 덕분에 남편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어딜 가나 잘 살아남는 스타일로 다듬어졌나 보다. (수많은 이직이 그를 뒷받침하는 게 아닐까?) 부디 그 장점을 살려서 앞으로 우리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핵심 생존 스킬이 되어 주기를!



4. 가족 분위기

남녀 비율을 보더라도 차이는 확연하다. 우리 집은 1:3, 남편네 집은 4:1인데, 여자들의 목소리가 높았던 우리 가족은 주로 평등한 관계를 추구했다. 하다못해 차를 구매할 때도 어떤 색깔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가족회의를 열어 초등학생 두 딸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했으니까. 부모님 의견에 대체로 고분고분하긴 했지만, 종종 거침없이 의견을 내세우기도 하고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따지기도 했다. 비록 얄짤 없이 까이기도 했지만 발언권 자체는 존중받는 분위기였다. 여전히 친정 아빠 말투나 행동 흉내내기는 내 특기이고, 기회만 되면 아빠에게 장난을 치는 게 나의 큰 낙이다. 물론 가차 없이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등짝 스매싱이 날아올 때도 있어서 정신을 단디 차려야 한다.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거니까. 


구성원 각자가 할 말이 많아 종종 4명이 4가지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가기도 하기도 한다. 누군가 그랬다, 치열한 대화 지분 싸움에 자비 따위는 1도 없는 것 같다고. 좋게 말하면 화기애애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없고 시끄럽다. 여전히 남편은 이런 우리의 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대화에 훅 치고 들어오지 못한다. 그저 듣고만 있을 때가 많아, 무관심한 태도인 거 같아서 영 거슬린다.


반면 남편의 입장은 "어딜 감히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끼어들 수가 있어? 우리 집은 상상도 못 해."라는식이다. 그렇다면 남편의 가정 분위기는 어떠했느냐? 우리집과 정 반대이다. 일단 수직적인 관계로 상하관계가 명확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어른의 말이 곧 법이다'라는 통념이 깔려 있다. 고로 부모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곧 반항이라고 여겨졌다. 예의범절도 매우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라, 지금도 시댁에 가면 큰 절을 올리며 부모님께 깍듯이 인사를 드린다.


이처럼 가족 간에 서로 조심스럽다 보니 평소에 최소한의 대화를 나눈다. 한편으로는 삭막함 그 자체였을 것 같다. 그렇기에 시댁에서 나의 수다쟁이 스킬이 빛을 발한다. 특히 아버님과 남편은 여전히 데면데면한 편인데 이럴 때 내가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 나가며 분위기를 이끈다. (물론 남편은 별로 고마워하진 않는다.)   


우리 집은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고, 거절할 때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최적화되어 있지만 부작용으로는 매사에 지적질을 일삼는다는 것. 하지만 시댁의 분위기는 서로 깎아내리기보다 인정과 격려를 많이 하는 훈훈한 편이다. 며느리로서 눈에 거슬리는 게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지금까지 시부모님께 혼나거나 잔소리를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이니까. 늘 상대방을 칭찬하고, 장점을 발견해서 북돋아주는 분위기다.


이 또한 부작용이 뒤따른다. 남편은 이런 이유로 의사 결정이 우유부단한 편이고, 상대방의 비판에 쉽게 위축되고 제대로 삐친다. 다시 말해 쓴 소리 듣기를 영 싫어한다. 그래도 장점으로는 이런 환경적 요인 때문에 남편은 어디를 가도 아내 험담을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담을 언급해 줘서 어쩔 때는 황송하기도 하고 민망할 때도 있다.


식사 시간의 분위기도 차이를 보이는데, 친정의 경우 웬만하면 시간을 맞춰 같이 식사를 했다. 엄마표 손맛의 음식을 신나게 음미하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식사 메뉴, 그날 겪은 에피소드, 근황, 본인 업적 과시 등 주제도 다양함) 행복한 시간 그 차제였다. 이렇게 함께 먹고 마시며 공동체의식이 더욱 끈끈해진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은 ‘식사시간 = 갈등의 근원지’로, 가끔은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밥상에서 날카로운 대화가 오고 갈 때도 있었기에 굳이 함께 먹기보다 따로 식사를 해서 가족을 마주치는 일 자체를 피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아, 그래서 남편이 식사 시간에 화 난 사람처럼 입을 다물 때가 많았구나 싶다. 그런 태도가 영 못 미더워서 "제발 말 좀 해! 애들도 좀 쳐다보고, 핸드폰은 좀 내려놓고."라고 잔소리를 했던 건가보다.




마치 프로파일러로 빙의한 것처럼, 오랫동안 남편과 나의 어린 시절을 곱씹어 보고, 인터뷰도 해 가며 차근차근 짚어보았다. 문화적인 요인, 가정 형편의 차이 등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하며 남편과 나의 다름의 근원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이래서 우리가 안 맞는 거였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들을 깨닫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막상 조목조목 따져보니 남편의 그동안 영 못마땅했던 행동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것 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기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남편에게 화를 일절 안 내거나, 잔소리를 싹 줄이는 등 착한 아내로 돌변하는 기적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한 템포 쉬어 가며, 상대방 입장을 고려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생겼다.


책 <가트맨의 부부 감정치유>에서 “진정한 사랑은 각자의 독특한 재능, 취약성과 별남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라고 말한다. 또한 “오래 지속되는 사랑은 우리가 상대에 관해 알게 된 대부분의 것을 사랑하고 그들이 바꿀 수 없는 결점들을 참을 수 있을 때 온다.”고 했다. 


이를 기억하며 우리 부부 각자가 지닌 고유의 특성을 존중해보기로 다짐해본다. 무작정 상대방의 언행을 반박하며 삿대질하기보다 잠시 왜 나랑 생각이 달랐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앞으로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외치고 싶은 한마디


"여보, 우리 이제 좀 그만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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