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연작소설
지독한 불면증을 앓는다던 너는 내 옆에서 얕은 코골이를 할 정도로 잘 잤다
네가 그랬노라고 말하자 너는 잠을 깊게 잤다는 것에 놀랐고,
코를 골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했으며,
내 옆에서 깊이 잠들었다는 것에 불안해 했다
우린 세 번째 만났을 때 같이 잤고 네가 나를 침대로 이끌었다
너의 불면증은 지난 남자의 스토킹에서 비롯됐다
그는 거의 매일 밤 너의 집 창문을 지키고 있었다
너는 집에 들어가기 전 그의 차가 있는지 살펴봤고
집에 있을 때도 이따금 창문으로 그의 차를 찾았다
내가 처음 너의 집에 갔을 때는 더 꼼꼼히 밖을 내다봤다
황사가 심하던 봄의 초입에 너는 목감기에 걸렸다
나는 크고 단단한 배를 사서 속을 파내고 꿀을 채워 40여분 달였다
내가 배숙을 들고 문앞에 서있자 너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배숙만 들려주고 가려고 했으나 너는 미안해 하며 들어오라고 했다
입이 짧던 너였지만 배숙은 한 번에 반이나 먹었다
목과 속이 편해졌는지 너는 네 얘기를 했다
세 번째만에 나는 너의 과거를 알 수 있었다
너는 정신과 의사와 2년여를 사귀었었고 그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그 무형의 지독한 폭력에 너는 불면증을 얻었다
그날 이전 며칠 동안도 너는 몇시간 자지 못했다고 했다
네 얘기를 다 듣고 나니 밤이 깊어졌다
불 끄고 누우면 너 자는 거 보고 가겠다고 했다
불은 꺼졌고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너는 황색 창문을 올려보며 말이 없었다
나는 손으로 네 얼굴을 바로 눕히고 눈을 감겼다
토닥토닥 "그만 자. 저기는 생각하지 말고 아까 먹은 배숙 생각해봐."
작은 미소를 남기고 너는 눈을 감은채 조용해졌다
나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너를 내려봤다
너는 예쁘지만 슬픈 얼굴이었다
"네가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못자겠어"
-그래, 그럼 갈테니까 불은 켜지 말고 그냥 자
"아니, 옆에 누워줄래?"
그날 이후 세 번 더 너의 집에 갔다
세 번째는 너의 집 앞에 있던 벚꽃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질 즈음이었다
우린 그날 남산에 벚꽃구경을 갔고 새로 산 디카에는 네 사진이 백장쯤 있었다
야식을 먹으면서 같이 사진을 보며 웃었다
너는 네 얼굴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표정이 굳어있다는 불만이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어 너를 담았다
쪽지은 뒷머리, 손가락, 손금, 발뒷꿈치
작지만 온전히 네가 담긴 그 부위들을 찍어봤다
너는 좋아했다
같이 눕고 불을 껐다
너는 혼자 잘 때 불을 끄지 않았다
그가 밖에서 너를 지켜본다는 생각에 불 꺼진 방이 무섭다고 했다
"내가 있잖아. 불 끄자"
네 두려움을 나로 덮어버리고 싶었다
입술을 포개고 몸을 섞었다
평소 성격과 다르게 너는 사랑을 나눌 때 솔직하고 과감했다
그날은 더 격정적이었다
작은 어깨는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등에 뚜렷히 새겨진 척추골에는 땀이 흘렀다
작은 엉덩이는 팽창했고
허벅다리에는 놀라울만치 강한 힘이 담겼다
씻고 나왔더니
너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있었다
가로등 불빛은 간유리를 통과해 부드러운 황색이었다
너는 말없이 창문만 보고 있었다
마른 등은 곧게 펴져 고목같았다
가녀린 목은 네 머리를 겨우 받들고 있었다
묶어 올린 뒷머리는 네 목을 더 쓸쓸하게 드러냈다
수척해진 턱선은 고고했지만 황량했다
입술은 닫혔고 코는 외롭게 섰다
눈은 창문에 고정됐고... 동공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가가 너를 안아주지도 못했다
너의 몸이 너무 차가워서 내 심장도 얼릴 것 같았다
겨우 창문에 박힌 눈길을 거두고 너는 씻으러 들어갔다
그사이 나는 옷을 입었다
욕실을 나와서 옷을 입고 앉아있던 나를 보고 너는 놀라지 않았다
"갈게. 잘잘 수 있지?"
너는 얕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밖에 나와서 황색의 가로등 밑에서 네 창문을 올려다봤다
밖에서 보는 네 창문은 어둡고 매말랐다
내 눈은 곧 길가를 더듬었다. 그놈의 차가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겁고 습했다
다음날 나는 평소처럼 연락했고 너도 평소처럼 받았다
그렇지만 만날 약속은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연락만 하다가 너는 그만하자고 말했다
"나 그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너를 만날 수가 없어. 나 이사가려 해. 꽤 멀리 갈 거야."
너는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 '멀리'라는 말에 나는 희망을 버렸다
이사하고 한 달쯤 지나 너는 메일을 보내왔다
"A시에 왔어. 여기는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인데 불을 꺼도 밤 같지 않아. 어둡지만 파도소리가 들려서 낮같아. 여전히 잠을 잘 못자는데 그래도 마음은 편해. 너도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어."
A시는 차로 4시간 거리지만 일부러 몇 년 동안 가지 않았다
이후 다른 연애를 하면서 그 곳을 여행할 일이 있었다
해변에 있는 아파트가 흔치 않기에 쉽게 네가 말한 해변을 찾을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해변에 나가
나는 높이 날아올라 크게 터지는 폭죽을 터트렸다
팡. 팡. 팡
'혹시 보고 있니? 나는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