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17 꽈리고추 멸치볶음 이혼

by 구작

멸치볶음에 반찬투정을 하다가 우린 이혼했다

견과를 넣어 멸치볶음을 해 상에 올렸는데

젓가락을 갖다대다 말고 나는

"난 꽈리고추 멸치볶음이 더 좋은데"라고 말했다


"난 견과 넣은 게 좋아. 먹고싶으면 사다 먹든가"

-사다 먹을 거면 왜 못 그러겠어

살 수 있으면 마누라도 사겠다


너는 밥그릇을 던졌다

거실 바닥에 팽겨처진 밥그릇은 팽이처럼 돌았다

구심력을 발휘하며 사위를 밀어내는 그 팽이를 보자니

서로 엉키지 못하고 끝없이 밀어내는 우리 같았다

우린 이혼하자는 말도 꺼내지 않고

자연스레 헤어졌다


손가락만한 틈이 댐을 허물듯

나비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반찬투정은 백년해로 약속을 단 3년만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손가락 틈은, 나비 날개짓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나는 바로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너는 일을 택했다

나는 주말에 쉬고 싶었지만

너는 트렌디한 카페 나들이를 원했다

나는 저녁에 같이 운동하고 싶었지만

너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좋아했다

나는 좋은 차를 사고 싶었고

너는 집을 먼저 사길 원했다

나는 국이 있었으면 했고

너는 밀키트로 충분하다고 했다

나는 네가 세련된 펌이 어울린다고 했고

너는 생머리를 고수했다


이런 건 사실 그러려니 하면 될 일이었다


너는 승진 욕심에 직장에 매몰됐고

나는 매너리즘에 집에서 우울했다

너는 내 문제를 바로 잡으려 했고

나는 내 단점을 숨기려 했다

너는 편하게 자고 싶어했지만

나는 널 안고 싶었다

너는 유튜브를 보며 웃었고

나는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

너는 전화기를 붙잡고 재잘거렸고

나는 게임으로 새벽을 보냈다

너는 네 입맛대로 상을 차렸고

나는 내 입맛을 포기 안 했다

너는 견과류 멸치볶음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좋아한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회사 가까이 오피스텔을 얻었다

3년만에 혼자 사는 건 제대한 기분이었다

매일 술을 마셨고 매일 새벽까지 게임했다

머리는 흐트러지고 피부는 푸석해졌지만

입맛은 좋았고 머리는 가벼웠다


자유에 자유를 더해 답답한 해방감이 몰려들 때였다

혼밥 혼술이 지겨워 집에서 먹는 라면이 맛있을 때였다

풀옵션 오피스텔 관리비가 아까워질 때쯤

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곡도 아닌 하얀 쌀밥이어야 했다

시장에 가서 쌀을 사고

반찬가게에 가서 김치를 샀다

3팩을 사면 5천원이라는 말에

계란말이와 메추리알 장조림,

그리고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샀다

밥을 앉히고 반찬을 접시에 담았다

하얀 밥에 김이 모락모락 일렁이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하얀 밥에 계란말이 하나

또 밥 한 술에 장조림 한 알

그리고 밥 한 술에 꽈리고추와 멸치 한 점

연거푸 뜨거운 밥을 먹으니 콧물이 흘렀다

손으로 코를 훔치고

다시 꽈리고추와 멸치를 밥에 올렸다

우걱우걱

꽈리고추와 멸치는 밥과 잘 씹히지는 않았다

달콤하며 짭쪼름한 그 맛에

한참을 씹어 넘겼다

또 콧물이..

'젠장, 혼자 밥 해먹는 홀애비가 추잡하게'

우걱우걱

쓰윽

주루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생각났다


내가 그날 "바쁜데 반찬도 하고 대단한 걸"

이라고 했다면 우린

같이 주말에 예쁜 카페에 가고

같이 유튜브 보며 웃고

같이 집 보러 다니고

같이 안고 잘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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