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연작소설
속눈썹이 길었던 네 눈은 웃으면 반달을 그리며 휘었다
짙은 반달 선은 순식간에 상대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너는 그런 눈으로
"난 오빠가 왜 뭘해도 멋있을까?"라고 했다
내 친구들이 있을 때도 서스름없이 너는 나를 칭찬했다
너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그걸 '추앙'이라고 했다
나는 난데없이 이교도 교주가 됐고
처음이자 유일한 신도를 너는 기꺼이 자처했다
만난 지 한 달도 안돼 그런 지경(?)이었기에
나는 속으로 심각한 금사빠니 곧 울겠구나 싶었다
인천에서 서울, 그 먼거리를 너는 거의 나를 보러 다녔다
물론 취업을 위해 다니던 학원과 스터디가 있었지만
너는 퇴근하는 나를 매일 기다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특별한 데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퇴근 후 다니는 내 단골 술집이 주된 장소였다
너는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반달눈을 하고 술집을 찬양했고
그런 술집을 다니는 나를 진실의 눈을 가졌다며 추앙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에 갓 담은 겉절이 보쌈집
24시간 끓인 등뼈에 시래기를 넣어 내놓는 감자탕집
오징어와 콩나물을 매콤하게 볶아먹는 00갈비집
닭을 통째로 참나무 장작불로 굽는 통닭집
갓가지 꼬치구이로 소주가 더 맛났던 이자카야
투박하게 재료와 양념을 했지만 최고였던 닭볶음탕 할머니집
그리고 그런 집들과 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었던 우리집
그렇게 돌고돌며 우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면서 너는 나에게도 쉽게 취했고
낯가지러운 추앙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너는 스터디를 다녀오면 더 술을 많이 마셨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예쁜지
어떤 친구는 외국에서 얼마나 살았고
어떤 이는 외화로 독학해 영어를 얼마나 잘하고
또 어떤 이는 다리가 예뻐 치마가 잘 어울린다며
다이어트 걱정을 하고선 잔에 든 술을 원샷했다
그러면서도 너는 항상 멤버들이 네 에세이에 대해
평가하고 칭찬한 내용으로 술자리를 정리했다
에세이는 네가 준비하는 시험에서 중요했고
다들 에세이 때문에 너는 합격할 거라고
너를 안심시켰다고 했다
그말을 하곤 너는 반달눈을 그렸지만
반달의 모서리는 진동했다
다리가 예쁜 애는 몸 라인 전체가 예쁘겠고
외국에서 살다 온 애들은 네이티브 영어를 할 것이고
네게 예쁘다 했다던 애들도 안 봐도 미인일 것 같았다
그 시험은 에세이만큼 용모가 중요했기에
몇 달 후 시험이 끝나면 그 멤버들은 취직을 했다
그런 날 너는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추앙받는 것만큼
남을 칭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네가 시험결과에 숨어들어가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화를 하면 몇시간 받지 않았고
밤 늦게야 전화를 해 너의 힘겨움을
취하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난 그래도 자신 있어. 에세이에서 실수했거든.
다음 시험에는 이런 점을 더 부각하려구"
너는 솔직하지 못했고
"그래. 이번 심사 포인트는 그것이었나보다.
다음에는 그 포인트로 쓰면 틀림없이 붙을 거야"
나도 같은 태세를 취했다
연거푸 2개 시험에 떨어지자
너의 반달눈은 보기 힘들어졌다
술을 진탕 마셨을 때야 눈웃음이 나왔으나
생기를 담은 눈이 아니라 슬픔이 가득해
언제나 눈 끝은 진동했고 눈물이 터지는 날도 잦아졌다
취한 날 다음에 후회가 진한듯
너는 점점 서울을 멀리했다
인천 그 네 방에서 너는 술을 품었다
복분자 2병.
그게 너의 하루 일과였고
엄마에게 혼나는 날이면 더 늘었다
나도 네 전화를 받아주기 힘들었다
취한 네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야박했다
너는 내게 "해줄 말 없냐"고 물었지만
난 "적당히 먹고 자"라고만 했다
마음이 서지 않은 네게 위로와 빈말은 사치로 느껴졌다
그런 내게 너는 서운했으리라
오랜만에 외출한다던 너는 네 단짝 친구 '팽'을 만나러 나갔다
그녀는 설계? 무역? 뭔가 어려운 일을 하던 친구였고
직장인 2년차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너는 가서 힘을 얻고 왔다고 했지만
그 말을 하는 너는 더 쓸쓸해 보였다
너는 술을 멈추지 못했고
또 응원이 필요하다며 오랫동안 친했던 남자 선배를 만나러 나갔다
저녁으로 시작한 술자리는 11시에 3차
새벽 1시에 4차였다
난 잘테니 늦지 않게 들어가라고 했다
눈을 뜨니 새벽 4시
네게 온 문자는 없었다
전화를 하니 꺼져있었다
아침 8시 전화를 하니 꺼져있었다
12시 전화를 하니 꺼져있었다
오후 5시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았다
오후 8시 전화가 왔다
새벽 4시까지 5차까지 마셨다며
집에 어떻게 온지 기억도 안 나고 종일 잤다고 했다
선배에게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고
그는 언제나 내게 좋은 말만 한다고
그의 말대로 준비하면 다음 시험에는 될 것 같다고
너는 어제의 술자리를 브리핑했다
"그런 말 들으면 좋아?"
-그럼. 난 그런 말들이 필요해
"그런 말들로 채우면 힘이 나?"
-응 힘나. 그래서 더 힘내서 술 마셨어
"너의 어제와 오늘이 뭐가 달라?"
-.......
'술 먹으러 간다고 술약속 준비하던 어제와
술에 취해 종일 잔 오늘이 달라?
내일도 넌 집에 있을 거고
밤이면 복분자를 까겠지
매일이 똑같은데 그런 말이 힘이 돼?
팽 만나 지가 일주일 전이야
달라진 게 뭐야?"
-난 달라졌어 분명. 진짜로 달라졌어.
"난 그게 안 보여. 네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야"
-난 달라졌다구. 내 결심을 모욕하지 마.
나는 유일한 신도를 모욕하는 교주가 됐다
나는 유일한 신도에 모욕당하는 교주가 됐다
너의 찬란한 추앙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화살이 아닌 부메랑을 던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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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오마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