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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1시간 동안 식당에서 있었던 우리네 사는 이야기

by 구작


동네 시장 내에 맛있는 백반집이 있어요

작은 식당이지만 인기가 좋아 늘 북적이죠

저는 보통 낮에 혼자 가야하기에 점심시간이 지나 한가로울 때에 가요

그럼 반은 들어가고 반은 재료가 떨어져서 돌아나오죠

오늘은 12시 반에 갔어요

다행히 빈 테이블들이 있어 들어갔어요


나 : 혼자인데 앉아도 될까요?

사장 : 그럼요! 저기 앉으셔유


찬모, 홀이모와 함께 셋이서 멸치를 다듬다가 저를 맞으시네요

홀이모 : 이번 멸치는 지난 것보다 안 좋다

사장 : 그래? 그래서 2만5천원만 받드만

찬모 : 거기가 그래도 양심적이여

사장 : 좀 더 줘도 좋은 멸치 쓰면 좋긴 한디

홀이모 : 이 정도도 충분히 맛있지


남자 두 분 식사하시는 옆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뭐가 나올까?'


나 : 막걸리도 한 병 주세요

홀이모 : 자기야 막걸리 있어?

사장 : 있을 건디?

찬모 : 없는디? 사올게

사장 : 어디가서 사올라고?

찬모 : 시장 밖에 마트에서 사와야지

나 : 사러 나가시는 거면 안 먹어도 돼요

사장 : (냉장고를 보며) 여기 하나 있잖애

찬모 : 그려? 하나여?

나 : 하나만 먹을 거라 괜찮습니다

사장 : 그려. 내일 주말이라 먹을 사람 없을텡께 더 사오지 말어 언니

찬모 : 가는 김에 밀가루도 살라고 했지


옆테이블 남자분들이 일어나요


남자 : 오늘 가자미가 맛있구만요. 다네

사장 : 좋지? 그거 강원도에서 직접 가져온 거여

남자 : 오늘 요걸로 밥 다 먹었네

찬모 : 다른 것도 다 비우셨구만


일동 웃음


남자들 나가고 제 상도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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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메인은 다슬기 해장국!

데친 오징어,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그리고 김치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옵니다

젊은 손님 넷

손님 : 지금 되나요?

사장 : 딱 마지막이네~ 저기 앉으쇼


찬모가 제 옆자리에 자리를 마련하는데

손님 : 우리 안에 들어가도 돼요?


주방 안쪽 방 같은 자리를 원하더라고요

찬모 : 네, 그러세요

사장 : 추울 건디?

홀이모 : (멸치 다듬으며 시크하게) 히터 틀면 되제

손님들이 이동하고

홀이모 : 자기야 히터 틀어줘

사장 : 나 틀지 모르는디?

홀이모 : 그래도 해봐, 손님들 춥겄어

손님 : 제가 틀게요

사장 : 히터 틀면 금방 따사지니께 있어봐요


이때 좀 전에 나간 남자손님이 다시 들어옵니다

남자 : 사장님, 내가 이번 달 결제가 좀 늦었어요

남자는 만원다발을 꺼내 사장님께 건넵니다

사장 : 늦었다요? 괜찮아요. 담주에 주면 되제

남자 : 늦으면 안 되죠. 세봐요. 20만원

사장 : 왜 20이여, 18만원만 주랑께

남자 : 밥값 올라잖아요

사장 : 에이, 끊어놓고 먹는 사람에게 올려서 받을 수 있간디

남자 : 괜찮아요 더 받으세요

사장 : 아녀, 2만원 도로 가져가유


남자는 민망한 손으로 다시 2만원을 받아 나갑니다

사장 : (홀이모에게) 원장님이 참 착해

홀이모 : 더준단디 안 받어~

사장 : 어찌 더 받어~ 2년째 대놓고 먹는 단골인디

홀이모 : 좋은 사람이여

사장 : 내가 그래서 원장님 치과만 다닌다니께. 소개도 많이 시켜줘

홀이모 : 좋은 사람이 잘 되야제(그리곤 다시 멸치를 다듬음)


이때, 문이 열리고 손님 셋이 들어오는데

손님 : 오늘 되나요?

사장 : 다 떨어졌어요. 금방 네 분이 오셔서 딱 끝났네

손님 : 다음에 올게요


안쪽 자리에서

손님 : 사장님, 오늘 뭐예요?

사장 : 다슬기해장국인디 이것저것 더 줄게

사장 : (찬모에게) 저기 김 좀 내줘요. 김 좋아하는 사람들이잖여

(손님에게) 계란 여섯 개 했는디 두 개 더 할까?

손님1 : 아니에요, 저는 하나만 먹어도 돼요

손님2 : 다른 찬 많아서 괜찮아요

사장 : 더 먹고 싶으면 말해. 더 해줄 수 있응께

손님1 : 다 못 먹어요. 그만 주세요

사장 : 담에는 자리 걱정 말고 와. 우리 옆에 건물에 자리를 더 냈어. 상 네 개가 더 들어가. 그라니 언제든 와

손님 : 잘 됐네요. 축하합니다

사장 : 다 빚이제. 그냥 돌아가는 손님들에게 미안하더라고


사장님이 냉장고에서 뭘 꺼내다 제 상을 보더니 제게 말을 거십니다

사장 : 밥 더 줄까유?

나 : 괜찮습니다. 많이 안 먹어요

사장 : 잉. 더 필요하면 말해유

나 : 사장님!


사장님을 불러세워 저는 말합니다


"사장님, 제가 이 다슬기해장국 유명한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대사리라고 불렀어요.

설에 고향가서 못 먹고 와서 좀 아쉬웠는데 오늘 여기서 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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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 그려요? 그래서 맛 없어?

나 : 아뇨~ 아주 맛있습니다

사장 : 다슬기 유명한 동네가 어디까?

나 : 구례입니다

사장 : 아, 글구만. 거기 화엄사 있지 않어?

나 : 네 맞아요

사장 : 언제 산악회에서 갔는디 겁나 크드만. (홀이모를 보고) 언니 화엄사 가봤슈? 겁나 큰 절이야.
우리나라 몇 대 절인가 될 걸?

나 : 3대 절로 꼽히죠

사장 : 그래 겁나게 커. 앞에 섬진강도 있고이. (홀이모를 보고) 언니 담에 가봐. 커서 한참 돌아다녜야햐

홀이모 : 난 불국사도 안 가봤어

사장 : 화엄사도 좋당게

홀이모 : 조계사도 안 가봤어

사장 : 거긴 나도 안 가봤어

찬모 : 교회 다녀!


나 : 사장님은 어디 분이세요?

사장 : 나요? 난 고창이유

나 : 고창 좋죠. 보리밭 구경 가봤어요

사장 : 거긴 다 보리밭이여. 그리 크게 해도 보리쌀 없어 못 먹던 시절도 있었쟤

나는 고창에서 중학교까지만 나오고 전주로 갔어

(홀이모 보며)

언니 내가 전주 가서 재미나게 놀았어. 한 3년 돈도 안 벌고 친구 사겨서 놀러만 다녔어

(홀이모, 멸치 계속 다듬을 뿐 대꾸 없고)

놀고 있응께 큰언니가 내려오라는 거여

큰언니가 그때 고창에서 종교서적 인쇄하는 회사를 했어

컸어. 직원이 다섯이나 있었어

전주에서 고창을 버스 타고 갔는디 비가 엄청 오는 거여

가기 싫어서 나도 막 눈물이 나더라고

그때 버스에서 '캠퍼스 잔디에 두고 온 눈물~~' 노래가 나오는 거여

너무 슬프고 서럽드만

안쪽 손님들이 나가는데 밖에 눈이 갑자기 내리더라구요

손님 : 우산 있어요?

사장 : 우산 있제. 몇개나?

손님 : 세 개 돼요?

사장 : 딱 세 개네

손님 :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가져다 드릴 게요

사장 : 암때나 가져와. 뭐시 급하간디

(손님들 나간다)

홀이모 : 언능 가져오라고 해야 또 와서 밥 먹지

사장 : 자주 오는 사람들이야 언니

(홀이모, 다시 멸치에 집중)

사장 : (홀이모 보고) 내가 고창 내려가자 마자 남편을 만났잖아

그때 나 날씬했어


이때, 식당 앞 야채상이 상을 들고 들어옵니다

야채 : (상을 놓고) 날씬했다고?

사장 : 크크 처녀때

야채상이 밥값을 놓고 갑니다

사장 : 됐어, 왜 이래

야채상이 밥값을 테이블에 던져놓고 나갑니다

사장 : (홀이모를 보고) 내가 처녀 때 진짜 날씬했거든

서방 만나서 8개월만에 결혼했잖여

홀이모 : 수제비는 언제 해?

찬모 : 지금 나가서 사올게

사장 : (찬모를 보고) 언니가 수제비 해. 난 수제비 못해


홀이모에게 전화가 오네요. 소리가 커서 다 들려요

여자 : 오늘 올 거여?

홀이모 : 몇신디?

여자 : 2시인데 부산여자랑 영아도 온대

홀이모 : 부산언니 오면 난 안 간다니까

여자 : ~~~~~ 내가 다 해놨어. 그냥 와

홀이모 : 안 가!


전화를 끊으니

사장 : 부산언니랑 놀지 마라니까. 언니 다 배려

홀이모 : 나도 안 할라고 하는디 자꾸 판을 같이 만드네


들어보니 화투치는 모임 같더라구요

'홀이모 노름 하지 마요 ㅠㅠ'

찬모가 들어와서 그네들이 드실 수제비 만들 준비를 합니다

사장 : 언니가 해. 난 수제비 못해

찬모 : 내가 할라고 흔디 뭐가 없네?

사장 : 대충 해 언니야. (주방을 살펴보고) 호박이 없네. 대충해 언니


찬모가 밀가루 반죽을 하고 수제비를 뜨는데

사장 : 얆게 떼내야 해. 두꺼우면 맛없어

(찬모가 떼는 걸 보고)

언니 얇게 떼야 한다고

찬모 : 이게 뭐가 두꺼워?

사장 : 안 두꺼워? 내가 얇게 떼는 걸 못해서 수제비를 못한다고

찬모 : 이 정돈 돼야 해

사장 : (홀이모 보고) 그래서 내가 결혼하고 바로 미국으로 갈라고 했어

찬모 : 넉넉히 해도 되지? 서방 좀 갖다 줄라고

사장 : 많이 햐. 푸짐해야 맛있지

홀이모 : 부산언니는 사기꾼 같어

사장 : 그 언니는 못됐다니까!

찬모 : 상 깔아, 다 됐어

사장 : 수제비가 두꺼운디 벌써 익었을까?

찬모 : 뭐시가 두껍다고 그래!


식당분들의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계산하고 나왔어요

밥 먹는 동안 심심하지가 않았어요 ㅎ



그런데

여기서 반전


제가 한 달 전쯤 갔을 때

사장님이 머리하러 가신다고 나갔거든요

사장님 나가시니까 찬모와 홀이모가 사장님 흉을 보는 거예요

입고 온 옷이 이상하다며,

저런 걸 요새 누가 입냐며,

머리는 또 맨날 왜 볶냐며,

촌티난다며,

궁시렁 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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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는 거 다양해서 참 재밌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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