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라는 단어에 애정이 첨가되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이다.
흔히 쓰는 반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조합어는 겨우 반려자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반려자, 반려견, 반려묘 등등 반려라는 단어에 붙일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하긴 무슨 단어든 만들기 나름 아닐까?
고양이든, 강아지든, 나와 공감을 나눌 수 있고 나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면 - 짝이 될 수 있다면 반려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겠지?
얼마 전 거제에 사는 삼촌에게 포토 메시지가 왔었다.
매번 보내오는 사진이 거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찍은 음료 사진이라 '또 무슨 염장을 지르시려고?', '또 심심하시군.' 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염장질 사진이 아니었다.
꽃이 근사하게 핀 천리향 사진이었다.
삼촌은 사무실에서 1년을 키워낸 꽃이라며 나에게도 키워보길 권했다.
"난 뭐든 못 키워. 고양이도 못 키우고, 식물도 못 키우고, 남자도 못 키워. 똥 손이야."
"그럴수록 극복해봐야지.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 먼저 손이 안 가는 걸로 도전해봐."
고양이, 식물, 남자 중에 손이 젤 안 가는 게 뭘까?
고양이, 식물, 남자 순일 텐데..
내 경험상 남자가 제일 손이 많이 간다. 여담이지만 내 주변의 남자들은 손이 많이 가는 남자들 뿐이라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남자면 다 좋지 않나 하겠지만 정말 싫어하는 남자가 있다. 손이 많이 가는 남자는 절대 사양이다. 아무튼 내 몸뚱이 하나 잘 키우는 걸로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며칠 후 큰 택배 상자가 도착했고, 난 그 후로 아침마다 불멍이 아닌 꽃멍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자기 일쑤였던 내가 요즘은 꽃멍을 하며 잠을 깨운다. 어제보다 더 핀 꽃들을 살피고, 시든 꽃잎들은 떼어주며, 마음을 정화시킨다.
'짝이 되는 동무'
내 몸뚱이 하나 잘 키우리라 했던 내가 향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잎도 떼어주고 아침마다 눈 맞추며 애정을 주며 반려 식물을 키우고 있다.
그러면서 그냥 그랬던 반려라는 단어에 애정이 첨가되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애정을 주는 무언가에 반려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어 졌다.
요가는 나의 반려운동, 맥주는 나의 반려주... (헛소리는 그만!)
주말에 정샘을 만나기로 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 만나질 못했다.
걱정이 되었는지 정샘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프지 마라, 나 늙어서도 만나 놀 사람은 너 밖에 없다. 아프면 못 논다."
애정표현에 서툰 나의 반려자, 정샘.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