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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ㅡ 잎 이후 2



잎이 떠난 뒤에도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무언가가 끝났다는 말은
언제나
우리의 언어일 뿐

가지들은 여전히
이전에 걸려 있던 것들의
무게를 기억하고,
그 기억은 말이 아니라
자세로 남아
나무를 지탱한다

어쩌면 이 나무는
수백만 번의 계절을 지나며
같은 방식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별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여기서는
한 그루의 형태가
조금씩만 달라졌을 뿐

살아 있다는 것은
계속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도
그 자리에
몸을 남겨 두는 일일 것이다
설명하지 않고,
증명하려 하지 않으면서

그래서 나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머무름이
의미가 되는 순간을
조심스럽게 피하면서,

다만 한 번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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