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고객이해와 관련된 설명들은 대체로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두 방향의 양끝에는 데이터 중심의 고객이해가 있고 직접경험을 통한 고객이해가 있다.
1)데이터 중심의 고객이해
데이터를 중심으로 고객의 윤곽을 그려가는 기업들은 대체로 축적가능한 데이터를 최대한 확보하고 누적지표 뿐만 아니라 코호트 분석을 통한 지표상의 질적 차이를 최대한 가려낸다. 데이터를 세부적으로 분류할수록, 더 깊은 수준까지 확보해갈수록 분석의 수준은 높아지고 예측가능영역도 넓어진다. 좋은 프로세스이다.
단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1.1 데이터의 본질적 한계
데이터, 즉 숫자로 표현된 고객정보는 고객 그 자체가 아니다. (현학적이지만 인간적 요소들은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제한적이다) 특히 의도와 욕구면에서 그렇다. 데이터는 각각 고객의 의도와 욕구,행동양식이 어찌됐건 결과값이 같으면 일단 동일한 값으로 취급한다. 구매 전환률에는 각기 구매를 결정했던 개인들의 동기와 사고과정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다. 재구매율이라는 지표는 다시 구매를 결정한 수많은 사람들의 동기와 판단을 '만족'이라는 간단한 결론으로 이끈다.
물론 다른 지표들과의 인과적 조합과 추론을 통해서 보다 정교한 구분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을 아무리 정교하게 조합한다고 해도 '완결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설령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 과정은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절차를 요구한다.
왜일까? 데이터는 1차적으로 각각 다른 동기와 욕구를 하나의 결과값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전혀 다른 맥락과 사고과정의 결과로 발생한 '구매'라는 행위를 같은 의미층위에서 처리하게 되니 결과적으로 코가 세개 있거나 팔이 네개 있는 '고객의 상(像)' 그려내기 쉽다. 평균이나 통계로 표현된 고객들은 사실 각기 다른 맥락과 욕구 위에 존재함에도 경향성으로 축소된다.
1.2 효율수준 결정의 어려움
만약 경향성으로 축소된 결과값에서 세세한 차이들을 식별해내려 한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추가로 요구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 경우 목표하는 분석수준의 '적당한 선'을 찾는 일이 중요해진다. 데이터로 다루는 현상의 깊이에 따라 요구되는 시간과 노력의 양은 갈수록 늘고,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한계효율은 크게 나빠진다. 때문에 각자 가진 리소스와 과업의 우선가치 등을 고려하여 분석의 적정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2)직접경험을 통한 고객이해
그렇다면 직접경험을 통해 고객을 이해한다면 어떨까? 내가 아는 한 50대 대표는 데이터 뭉치를 보고 있을 바에 직접 나가 고객 한명을 만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일부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일부 맞는 말인 이유는 직접경험을 통해 그린 고객의 상의 행위나 욕구가 적어도 논리든 행위양식이든 일관된 고객일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즉 방금 전까지 나한테 욕짓거리 하던 사람이 헤어지고 나서는 공손하게 안부인사를 남기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한 인간의 행위는 양태가 다양해지는것과는 별개로 욕망의 방향성과 구조는 상당히 일관된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욕망구조와 퍼스낼리티를 보이는 개별고객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객'의 속성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특정고객이 '우리고객'이라는 하는 집단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을까? 직접대면을 통해 일관된 고객상을 그려낸다고 하더라도 대표성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
3) 결론은 순서가 중요하다는 말
현실은 둘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면 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둘 모두 갖추지 못하였거나,둘중 하나가 왜 더 나은 방식인지로 갑론을박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니까 둘중 하나라도 일단 제대로 해보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둘다 고객이해를 위해 중요한 과정인 것은 맞으니 어떤 방식으로 두 과정을 조합할지, 어떤 순서와 절차로 결합과정을 이뤄갈지를 하고자 이 긴글을 쓴것이다.
나는 순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특정고객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음은 이 과정을 통해 얻은 정보로 하나의 일관된 고객의 상을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 그려낸 상은 일종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다른 고객들은 이 기준에 비추어 더 높거나 낮은 고객으로 표현/해석된다.
이 분류과정은 현실의 고객들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염두해야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효과적으로 추려낼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업의 고객이해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객의 모든 속성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속성 중 우리 비지니스모델과 관련도가 높은 속성들을 선별하고 그 속성들을 강화/개선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할 요소들을 가르는 것이 이 과정의 핵심과정 혹은 선행조건이 된다.
이렇게 선별된 핵심속성들을 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데이터다. 일종의 정황증거 내지는 바로미터이다. 만약 이 핵심속성들을 구별하는 과정으로 이 방대한 과정의 각도를 좁혀놓지 않는다면 데이터를 분석하고 축적하는 일의 한계효율은 담보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분석이 필요한지 얼마나 깊은 수준의 분석이 필요한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한계효율의 적정수준을 결정할 수 없다.
대표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그려낸 기존고객이 '우리 고객'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개별특이성이 강할 수 있지 않은가. 때문에 질적차이를 보여줄만한 기준고객들을 초기 단계에 적극적으로 수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기업이 본질적으로는 몇몇 타입의 고객의 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모델을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양태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욕구와 불만의 속성에서만큼은 적어도)
결국 데이터도 중요하고 직접고객을 접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지만 언제, 어떻게가 '정말'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긴글을 썼다. 아무리 대면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눈빛으로 벽을 뚫을 수는 없는 일이고 어떤 데이터를 들고 오더라도 전자기력의 방향을 틀수는 없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