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rekim Sep 30. 2019

삶의 의미

일과 삶에 대하여

나는 보상과는 무관하게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다. 물론 때때로  내가 받게될 보상의 크기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그 보상의 크기에 따라서 내 태도나 의지를 일부 수정하기도 하지만 그런 상태가 내 기본적 상태는 아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내 대학 친구 하나는 받는 것 이상으로 일하는 태도를 노예적인 근성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 행위가 무엇이든 간에 정성을 다하거나 열심히 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만족감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고 그 만족감을 다른 형태로 보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을 뿐이다.

여기서 오는 만족감이야 말로 삶의 의미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물질적/비물질적 보상으로 치환되지 않는 그 자체로의 가치를 뜻한다.
그 자체로의 가치를 굳게 믿고 그 안에서 정신적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행위의 기반이 되는 영역, 혹은 세계에 대해 깊게 물들어야 한다.

예컨대 내가 좋은 문장을 쓰는 행위 자체를 삶의 의미로 믿기 위해서는 글쓰는 사람들의 윤리,원칙,지향,노력과 행위들에 익숙해져야한다. 즉 글쓰기의 세계에 오랫동안 삶을 바쳐온 사람들의 코드를 내 코드로 내재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며, 그들이 합의하는 좋은 문장의 기준들을 납득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할 것이다. 그 과정에 뇌가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상태가 됐을 때 우리는 의미적 동기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뇌이고 허상이라고? 그렇다. 모든 의미가 본질적으로 허상이다. 인간의 의미는 애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뇌를 잘 훈련시킨 결과로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의미가 절대적 가치를 가져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없이 삶의 번민과 부조리를 견디기가 너무 퍽퍽하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구성하는 것 뿐이다.

학문이든 , 일이든, 가족에 대한 헌신이든, 친구와의 우정이든 간에 그 가치를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삶의 의미의 문제가 일부 해소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구성하는 제반조건들이 내 뇌의 지향 내지는 토대가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토대는 바로  반복된 노출과 학습과정으로 구축된다.

실뜨기,미식,건강관리,픽업아트,댓글달기,커피맛구별 등 모든 행위의 영역에서 삶의 의미는 만들어질수 있다. 삶의 의미는 찾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대체로 그 과정은 뇌를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의미가 이끄는 삶. 이런거 대단한 것 아니다. 신체적 노화를 관리하듯 정신적 안녕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기준과 의미 없이는 불안해하도록 태어난 인간의 숙명을 극복하기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 전략과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